친구의 손을 잡기

천 명의 지인 세 명의 친구

by 진저

어렸을 때 본 광고 중에 백혈병에 걸린 친구를 위해 삭발을 하고 나타나는 장면이 있었다. 친구처럼 똑같이 머리를 민 친구는 서로 마주보면서 말없이 따뜻하게 웃었다.

누군가를 위로하는 방식은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상대의 마음을 헤아리고 같은 위치에서 공감해주는 것만큼 큰 위로가 되는 게 있을까? 말로 하는 위로는 누구나 할 수 있지만 직접 행동으로 하는 위로는 드물다. 그런 위로를 줘 본 사람도, 받아본 사람도 많지 않을 것이다.

우정이라는 단어를 생각하면 떠오르는 학창시절 선명한 기억이 하나 있다.

여중에 다닐 때 한쪽 팔이 마네킹인 친구가 있었다. 지금 생각하면 의수인데, 우리는 그저 마네킹 손이라고, 사려 깊지 않게 지칭했다. “한쪽 팔이 마네킹인 걔”라고. 우리 중학교의 가을겨울 교복은 평범했다 상의 소매가 길어서 눈 여겨 보지 않으면 그 친구가 팔이 없다는 게 별로 튀지 않았다. 문제는 여름이었다. 여름 교복 상의가 분홍색 블라우스였다. 우리들은 몸에 꼭 맞게 블라우스를 한 치수 작은 것으로 사서 입고 다녔다. 반소매도 길이가 어정쩡하면 팔뚝이 두꺼워 보인다면서 짧게 줄이기까지 했다.

친구는 짧은 소매를 입을 수 없었다. 그래서 어디서 구했는지 교복이랑 색깔이 비슷한 분홍색 남방을 입었다. 자기 몸보다 큰 사이즈를 골랐다. 소맷단은 손등을 완전히 덮을 정도까지 내려와서 손끝만 살짝 보였다. 다른쪽 손은 희고 부드러웠지만 좌우 균형을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이 긴 소매에 가려져야 했다.

친구가 그렇게 한쪽 팔을 잃은 건 아주 어릴 적이었다고 했다. 직접 묻는 애들은 없었는데 입에서 입으로 전해 내려오면서 전교생 모두는 사연을 알고 있었다.

어릴 적 농촌에 살았던 친구는 볏짚 써는 작두가 신기해 보였는지 손을 쑥 집어넣었단다. 크고 시끄럽고 신기한 장난감처럼 보였던 걸까? 놀란 아빠가 기계 가동을 멈췄을 때는 이미 늦었다. 천진난만한 한 작은 아이의 호기심은 어깨 아래서부터 팔이 절단되는 비극을 낳았다. 형편이 넉넉지 않았던 부모는 제대로 된 의수가 아닌 길거리 상점 쇼윈도에 세워져 있을 것 같은 마네킹의 손 같은, 조악한 의수를 그 자리에 끼워 주었다.

그래도 친구는 밝은 성격이었다. 무서운 얘기를 해주겠다며 교탁 앞에 서서는 분홍색 소매로 가려진 의수를 탕탕 쳐가면서 숨을 참다가 내뱉은 주인공에게 귀신이 달려오는 소리를 냈을 때 우리 모두는 뒤집어지며 비명을 질렀다.

그러던 어느 날 체육시간이었다. 체육선생님은 다 함께 손에 손을 잡고 큰 원 대형으로 서라고 했다. 얼추 옆 사람과 나란히 하면서 원을 만들고 있을 때였다. 원이 그려지다가 뚝 끊긴 지점이 있었다. 친구의 오른쪽이 뚝 끊겼다. 우리는 마네킹 손을 잡을 용기가 차마 나지 않았던 것이다. 발랄하던 친구의 얼굴은 분홍색 남방보다 더 붉게 물이 들어갔다.

모두의 눈이 원의 끊어진 부분으로 향할 때 한 명이 그쪽으로 빠르게 움직였다. 그리고 덥석 그 딱딱한 손을 잡았다. 그리고 말했다.

“자, 됐다!”

잠시간의 침묵은 끝났고, 우리는 다행이라는 듯이 다시 웃으면서 잡은 손을 오른쪽 왼쪽으로 움직였다. 빨개졌던 친구의 양 볼도 다시 자연스러운 연분홍빛을 되찾았다.

시간이 꽤 흘렀지만 지금 그 둘은 아직도 친구로 남아있지 않을까? 혹시 그렇지 않다고 해도 팔이 불편했던 친구의 기억 속에서 소중한 순간으로 남아있을 것 같다.

친구는 그런 것 같다. 아무렇지도 않게 덥석 손을 잡아주는 것. 쓸쓸함이 엄습할 때 “내가 너 바로 옆에 있을 거야.”라고 구태여 말하지 않아도 든든하게 느껴지게 하는 것. 생색내지 않고 손을 잡고 웃어주는 친구. 그리고 자신의 손을 잡아주지 않았던 우리 반 모두에게 다시 밝게 웃으며 스스럼없이 대해준 그 속 깊고 꿋꿋했던 친구를 보며 열네 살의 우리는 한 뼘씩 성장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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