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교의 역사

천 명의 지인 세 명의 친구

by 진저

나는 집 근처 여자중학교에 다녔다. 교실이란 공간에서 싹튼 우정은 질투, 시기, 집착 이런 끈덕끈덕한 감정들과 늘상 함께했다. 내 생각엔 아마 그 시기를 지나는 우리들이 처음으로 엄마의 그늘에서 갑작스럽게 벗어나면서 다른 애정 상대가 필요했던 것 같다. 아이들은 둘씩, 넷씩 짝을 지어 다녔다. 세 명, 다섯 명… 이렇게 홀수로 무리가 지어지면 한 명이 소외감을 느끼는 일이 생겨서 결국 관계가 파투 나기 일쑤였다.


친구에 대한 자신의 기질을 알려면 학창 시절을 떠올려 보면 그 유형이 대충 가려진다. 남자들은 어떤지 잘 모르겠지만 적어도 내 경험상 여학생들은 확실하다. 단짝처럼 둘이 다니는 걸 좋아하는 친구가 있고, 대여섯 명까지 우르르 모여 다니는 애들도 있다. 몇몇은 그런 무리와 일부러 거리를 두기도 하고, 누군가는 따돌림을 당해 원치 않게 혼자가 되기도 한다.

나는 대체로 단짝 친구를 따로 두지 않았다. 그렇다고 그룹을 지어 노는 것은 더더욱 좋아하지 않았다. 자발적 외톨이었다고 생각하지만, 내 편의에 의해 철저하게 각색된 기억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학창 시절에는 두 명씩 열 맞춰 서라고 할 때(왜 학교 다닐 때 뭣만 하면 그렇게 짝짓기를 시켰는지 모르겠다) 애매해지는 순간들이 꽤 많았다. 친구들 사이에 인기가 없진 않았는데 짝이 없을 때마다 “어, 네가 왜 혼자야?” 이런 말을 들었다. 어정쩡하게 친한 친구들만 있었기 때문에 누군가의 1순위는 늘 아니었던 것이다.

그래서 외로울 때도 있었다. 단짝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적도 있다. 하지만 나는 십 대 때부터 대단히 재밌는 것보다는 내가 상처 받지 않고 평화로운 상태가 더 좋았다. 애늙은이 같은 발상이다. 나는 십 대였지만, 십 대 소녀의 치밀하고 집요한 감정싸움의 도가니에 휘말리고 싶지 않았었다.


중학교 때 나와 단짝이 되길 원했던 한 친구는 그런 내 무심함에 상처를 받고 어느 날 절교 선언을 했다. 나란 친구에 대해 애착이 있었기에 상처도 그만큼 더 깊었을 것이다. 사실 그 친구 앞에서 나는 우리의 우정이 일방적으로 기울어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잔인할 정도로 갑의 지위를 톡톡히 누렸다. 친구는 내가 등교하기 전 내 책상 서랍 위나 사물함 속에 인형이나 꽃, 편지를 넣어두었다. 나는 너와 친구로 더 지내든 아니든 알바 아니라는 듯 다른 친구와 더 다정하게 수다를 떨어댔고, 친구는 그걸 꽤 괴로워하며 교실 저 쪽에서 지켜봤다. 그리고 결국 더 이상 견디기 힘들었을 것이다. 친구는 편지로 절교를 선언했다. 첫 번째 절교 선언이었다. 마음이 조금 쓰였지만 그것은 친구의 상처를 헤아렸기 때문이 아니라, 내가 근본이 악독한 사람인 건 아닌지 스스로가 의심됐기 때문이었다. 참 잔인했던 때였다.


두 번째 절교는 대학생 때다. 이때부터의 절교는 사실 시기를 특정할 수 없을 정도로 일어났다. 연애에 몰두하게 되면서 자잘하게 맺은 친구 관계들이 계절이 바뀌며 낙엽 떨어지듯 맥없이 떨어져 나갔다. 선언이랄 것도 없이. 남자 친구를 통해 알게 된 새 친구들은 남자 친구와의 이별 이후 한 세트처럼 멀어졌다. 연락을 계속하는 것이 왠지 전 남자 친구에 대한 미련이 있는 것처럼 느껴질 수 있겠다 싶었다. 실제로 건너서 듣는 소식에 마음이 싱숭생숭해질 때도 있었기 때문이다. 고등학교 이후에 만나는 친구 관계는 농도도 옅어지고 쉽게 끊어졌다. 나에게 상처를 주는 사람을 구태여 작은 상자에 몸을 욱여넣듯이 애써서 만남을 지속하고 싶은 생각이 없었다. 그렇게 내 주위엔 적당히 친한 지인 수준의 친구들만 늘어갔다.


세 번째 절교는 연인과의 이별에서 받은 상처보다도 더 컸다. 왜냐하면 내가 더 깊은 우정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깊이는 연인과의 이별 이후에야 또렷이 알 수 있듯이 절교 이후에야 알게 됐다. 숱한 절교의 경험 이후에 처음처럼 깊은 상처를 남기는 절교라니. 평화롭게 비무장지대를 산보하다가 갑자기 지뢰를 밟아버린 기분이랄까. 사소한 말(사소하다는 건 전적으로 나의 입장일 뿐이겠지..)로 멀어진 관계는 예전으로 돌아가지 못했다. 결국 무언의 선언이라고 볼 수밖에 없는, 시선 피하기 방식으로 나는 십여 년간 친했던 한 동갑의 친구와 절교하게 됐다.

그 뒤로 나는 절교한 친구가 잘 지낸다는 말을 건너서 들을 때마다 속으로 부아가 나기도 했다. 내가 아직도 신경을 쓰고 있다는 것은, 내가 을이었다는 거다. 그런 생각에, 슬픈 생각이 들기도 했다. 이런 기분은 나에게 첫 번째로 절교 선언을 한 친구도 그때 나를 보며 느꼈을 감정이지 않을까.


한 박자 늦게 인간관계의 진리를 깨닫는 요즘, 친구의 소중함을 더 느낀다. 노력해서 만나는 관계가 아니라 제멋대로의 방식을 그대로 껴안아주면서 수다를 떨 수 있는 아주 소수의 내 친구들이 말이다. 전투적으로 각자의 조직에서 살다가 오래간만에 만나기만 하면 숨겨둔 소녀적인 성향을 부끄럼 없이 꺼내놓으면서 웃을 수 있는 친구들 말이다.

인연은 끊임없이 움직이면서 변화하는 것이지만, 이 한 줌의 내 편만은 인생에서 동행하고 싶다. 그 수가 점점 줄어서 곤란해질 지경이라 나도 더 이상은 양보할 수 없다. 그래도 끊을 사람은 끊어야 하고, 끊어질 사람은 결국 끊어지는 것이지만. 내가 안전 운전한다고 교통사고가 절대 안 난다는 보장이 없는 것처럼, 내가 애쓴다고 사람 인연이란 게 다 이어지는 게 아니란 걸 알고 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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