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살 같은 관계에도 너그러워지기

by 진저


어릴 적 나는 골목 가장 안쪽에 있는 주택에 살았다. 일 층에 사는 집주인은 학교 교감선생님이었다. 우유부단한 배우자를 둔 덕분에 생활력 ‘만렙’이 된 엄마는 애가 넷이나 된다고 솔직하게 말하면 세를 안 내줄 것 같아서 ‘있는지 없는지도 모를 얌전한 초등학생 딸 둘과 순둥순둥한 어린애 하나만’ 있다고 속여서 겨우 세를 얻었다. 동생들은 4살, 5살로 연년생이었다. 똑같은 바가지 머리에 옷까지 돌려 입으면 몇 달은 눈속임할 수 있다는 생각이셨을까.

하지만 “누구나 그럴싸한 계획을 가지고 있다. 한 방 얻어맞기 전까지는.”이라고 한 타이슨의 명언처럼 엄마의 입주 작전은 허무하게도 금세 발각됐다. 비슷한 또래들이 집집마다 포진해 있고, 어느 집 저녁 밥상에 뭐 올라갔는지도 궁금해하던 시절이었다. 딱한 사정에 못 이긴 건지 이웃들 눈치가 신경 쓰였는지 몰라도 주인집은 다행히 우리 식구를 쫓아내지 않고 계약기간 동안 살게 해 줬다.

그런 어른들의 신경전을 몰랐던 나는 그새 옆집 동갑내기 J와 친구가 됐다. 골목에 자리 잡은 집들은 다닥다닥 붙어있었다. 나와 J는 서로의 이층 집으로 스파이더맨처럼 멀리 뛰며 이동했다. 모든 비밀을 공유했고, 서로의 신세를 한탄(?)했다. 하교 후 신발도 안 벗고 가방을 집 안에 던져놓고 J네 집으로 점프해 갔다. 잠자는 시간을 제외하고는 몸의 어딘가가 단단히 붙어있는 쌍둥이처럼 우린 늘 함께였다.


내가 이 친구와 20년이 훌쩍 지난 지금까지도 깊은 우정을 나누고 있냐 하면, 그렇지 않다. 연락처도 모르고 이젠 그 아이의 성이 김 씨였는지 박 씨였는지도 헷갈린다. 그 소중한 우정은 내가 그 골목에 살았던 기간인 딱 삼 년간만 유지됐다. 한두 번 내가 그 골목을 찾아간 적은 있지만 각자 다른 중학교로 진학하면서는 우린 서로 까맣게 잊고 지내게 됐다.


이렇게 ‘자연 소멸’된 우정은 우리 인생에서 좋은 추억으로 남는다. 어린 시절 동화 같은 장면들이다. “즐거운 추억이 많은 아이는 삶이 끝나는 날까지 안전할 것”이라고 한 러시아 대문호 도스토예프스키의 소설 속 문장도 생각난다.

하지만 이후 내 삶의 시간이 흐르면서 그런 순도 백 퍼센트 우정은 딱 그때뿐. 두 번 다시 오지 않았다. 특히 성인이 되어 만난 인연들은 한순간에 칼날로 돌변했다. 그리고 예리한 상처를 남겨서 나를 아프게 했다. 일방적인 절교에 남보다 못한 원수 사이가 되는 비극도 종종 벌어졌다. 어느샌가 갑과 을로 정리되는 관계도 수두룩했다. 난 냉정한 갑이 되기도 했고, 반대로 누구 앞에선 을이 됐다.


그렇게 상처를 주고받다 보니 우정은 이십 대 중반부터 인생 순위에서 점점 밀려났다. 대학에 가고 취업을 하면서는 인생을 어떻게든 책임지기 위해 아등바등 살았다. 여유가 있을 때에는 친구보다는 연애에 올인했다. 그게 이십 대의 숙제 같은 거였으니까. 회사에 들어가서는 근무 시간 동안 책가방 뒤집어 먼지 털어내듯 에너지를 소진했다. 쉬는 날이면 스마트폰만 겨우 쥐고 보면서 시간을 흘려보냈다. 결혼을 하고 업무에도 요령이 생겼을 때, 나는 가족과 ‘진짜 친구’ 몇 명만 잘 챙기면서 살아가야지 싶었다.


요새는 친구란 말 자체가 이미 유행 지난 촌스러운 단어가 되어버린 느낌까지 든다. 서점 자기 계발서 코너에 가 보면 자신을 괴롭히는 관계들의 싹을 단번에 잘라내 버리라는 조언이 넘쳐나고 있다. 그게 바로 자신의 삶을 사랑하는 거라고. 관계에 너무 끙끙대지 말라고. 성공한 인생 멘토들의 말이 쿨하고 똑똑해 보인다. 주위를 봐도 피곤만 남는 친구들보다 SNS 팔로워 관리하는 게 더 낫다는 사람들도 있다.


나도 쭉정이를 털어내고 ‘진짜 내 편’만 골라내고 싶었다. 그래서 친구 중에 자기 시간 날 때만 연락하는 이기적인 구석이 있는 친구를 골라냈다. 내 부탁을 안 들어줬던 친구도 멀리했다. 위로나 격려 대신에 무신경한 말을 툭툭 내뱉었거나 남의 편을 들고 나를 제멋대로 평가했던 친구들도 인성 미달로 멀리했다. 말이 그럭저럭 통하고, 나와 비슷한 환경에서 비슷한 수준의 일을 하는 사람들과만 연락하고 만나서 듣기 좋은 뻔한 말들만 주고받게 됐다. 그러다 보니 싸울 일이 없었지만, 동시에 쓴소리 하나 해주는 이도 없었다. 그렇게 한 명 한 명 내 기준 밖으로 밀어내다 보니 어느새 절친이라고 자신할 만한 친구는 단 한 명도 꼽지 못했다.


‘인맥 다이어트’를 하면 할수록 내가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다는 불길한 확신이 들었다. 내가 그동안 단단히 잘못 생각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친구는 본래 타인이다. 몇 년 동안 하루도 안 빠지고 만나다가도 어느 순간부터 한 번도 안 만나게 될 수도 있는 사이다. 본래부터 불공정하고 불안정하다. “남들이 안 볼 때 몰래 내 다 버리고 싶다”고는 하지만 그럴 수도 없는 가족과는 근본부터 다른 관계다. 나는 그걸 친구의 속성으로 받아들이는 데에 적지 않은 시행착오를 겪었다.


어려울 때 힘이 되는 친구가 진짜 친구다?


이런 기준 앞에서 나를 포함해 우리 모두는 ‘필패(必敗)’할 수밖에 없다. 결정적일 때 우리는 언제나 혼자다. 친구는 결정적일 때 나를 구원해주는 존재가 아니다. 어려울 때 힘이 되어 주지 않았다고 진짜 친구가 아닌 것은 아니다. 그때는 그저 혼자서 견뎌야 하는 순간일 뿐이다.

무슨 일이 생기면 틀림없이 나타나는 홍 반장 같은 해결사 친구는 없다. 오지랖이 넓은 동시에 시간적 여유와 경제적 풍요로움, 연민의 감수성 등등… 의 까다로운 조건들이 동시에 충족되는 희귀한 사람들을 친구로 둘 확률은 로또 당첨 확률과 비슷하다. 내가 누군가의 로또일 확률도 0에 수렴한다.


‘친구의 정의’를 타이트하게 정해놓고 나머지는 군살 빼듯이 다이어트한다면 우리는 어쩌면 인생의 여러 성장의 기회들을 놓치게 된다. ‘회복 탄력성 resilience’이란 심리학 용어가 있다. 불행한 사건이나 장애에 부딪쳐 나락으로 떨어졌을 때에 다시 튀어 올라서 원래 위치보다 더 높이 도약할 수 있게 하는 힘을 말한다. 실패의 순간 우리는 회복 탄력성이 있어야 버틸 수 있다. 우리를 다시 일으키는 근력은 결국 별것 아닌 것처럼 보여도 두터운 관계의 힘에서 나온다.

‘너그럽다’의 사전 정의를 찾아보니 '감싸서 받아들인다'는 뜻이다. 당장은 쓸데없는 군살처럼 보이는 관계에도 너그러워질 때 우리의 회복 탄력성은 커질 수 있다. 타인을 단칼에 끊어내는 것보다 타인에 너그러워지는 것이 더 큰 용기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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