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시대의 여행
나는 우리 동네 상권에 꽤 불만이 있다. 음식점이 드물어서다. 편의점이나 세탁소, 미용실 정도가 그나마 명맥을 유지하고 있을 뿐 걸어서 십분 거리 안에 그 흔한 김밥천국도 없다. 아파트 정문 상가 절반은 몇 년째 공실이다. 그런데 넉달 전쯤 빈 상가에 인테리어 자재들이 들어오더니 내부 공사가 시작됐다. 작은 커피숍이 입점했다가 얼마 못 버틴 그 자리에 말이다. 나는 분식집이 들어오길 속으로 염원했고, 가게 간판이 걸리자 내 눈을 의심했다.
랍스터라니!
동네 식당으로 전혀 어울리지 않는 메뉴였다. 랍스터라고 하면 특별한 날에 레스토랑이나 뷔페에 가서 먹을까말까한 고급 해산물 아니던가. 의아한 내 마음과 달리 그 곳은 개업 준비에 한창이었다. 그 앞을 지날 때마다 휴가 때 가본 발리나 푸켓 해변에서의 씨푸드 레스토랑과 시원한 바닷바람, 칵테일, 라이브 밴드의 음악을 떠올리며 우아하게 랍스터를 먹는 장면을 상상했다.
참고로 나는, 여행을 많이 가본 편이 아니다. 돌아다니는 걸 좋아하는 성격도 아니다. 그저 여름휴가로 일년에 한 번 정도 동남아 여행을 가는 게 내가 감당할 수 있을 만큼의 사치와 여유일 뿐이다. 한국에서라면 엄두도 못 낼 랍스터를 동남아에서 ‘가성비’ 좋게 누릴 수 있었다. 어쩌면 우리 동네 랍스터 가게 사장님은 나와 같은 ‘가성비 우선주의자’들을 노리고 가게를 열었을지도 모른다. 집 거실에서, 혹은 집 바로 앞에서 삼만원대에 랍스터를 먹는 것은 가성비 측면에선 꽤 현명한 선택이니까.
금요일 저녁. 나와 남편은 개업축화 화환이 여럿 놓인 그 식당에 들어갔다.
생맥주 오백 두 잔부터 시켜놓고 메뉴판을 천천히 정독했다. 그 사이 카운터에서 배달 주문 콜이 울렸다. 침을 꿀꺽 삼키며 랍스터 요리 장면을 눈 앞에서 관람할 생각에 기대에 찼다. 일단 구경부터 하자! 그릴 앞에서 성대한 불쇼가 펼쳐지길 기대했다. 우리가 서빙 받은 미지근하고 김빠진 생맥주가 복선이었을까. 주인은 냉동실에서 꽁꽁 언 랍스터를 꺼냈다. 어……어?
우리는 냉동랍스터에 크게 실망하고 가리비관자구이와 파스타를 주문했다. 주인은 다시 냉동실 문을 활짝 열었다. 그러곤 큼지막한 대용량 비닐봉지에서 관자 몇 개를 꺼냈다. 꽁꽁 언 관자들은 전자레인지로 직행했다. 차라리 안 봤으면 쫄깃쫄깃하다며 맛있게 먹었을지도 모르겠다. 애석하게도 그 가게는 좌석 여덟 개의 바 형태 가게여서 주방을 안 볼 수가 없었다. 우리는 조용히 메뉴판을 닫았다. 맥주를 서둘러 마시고 추가 주문 없이 식당에서 나왔다.
나같은 ‘실망 고객’이 대부분이었는지 그 식당은 내내 파리만 날리는 듯 했다. 얼마 뒤에 가게 앞에 ‘L.I.V.E.’ 라고 쓰인 현수막을 내걸었다. 나는 남편에게 말했다.
“이젠 라이브 공연까지 하나 봐!”
하지만 내가 그 단어를 오독했다는 걸 곧 알게 됐다. 가게 앞에 작은 수조가 놓였고, 거기엔 집게를 끈으로 묶은 랍스터 몇 마리가 있었기 때문이다. 현수막에 쓰인 라이브는 라이브 음악이 아니라 생물(生物)을 의미했다.
날이 점점 더워지자 식당은 팥빙수와 오렌지주스까지 팔기 시작했다. 지방 소도시에서 김치찌개까지 파는 패스트푸드점을 실제로 봤다는 친구의 말이 생각났다. 아참, 내 지인은 와인바를 열었다가 장사가 안 돼서 해물파전까지 팔았었지. 팥빙수 메뉴를 내건 입간판은 소리없이 사라졌다. 대신 이번엔 두 시간 제한시간을 두고 ‘생맥주 한 잔당 구백원’으로 낮춰 판다는 포스터가 내걸렸다.
평소라면 가성비 좋다며 갔겠지만 그즈음의 우리는 그 식당에 관심이 시들해졌다. 대신 조금 더 먼 술집으로 가서 소주를 여러병 마셨다. 내가 6월에 낸 신간 에세이가 전작에 비해 이상하리만치 반응이 미지근했기 때문이다. 기대가 컸던지라 초반 반응에 맥이 탁 풀렸다. 출판사 담당 편집자가 말했다.
“작가님, 죄송해요. 요즘 사람들이 재테크 책에만 관심을 보여서요.”
베스트셀러 코너를 주식, 코인, 부동산 서적들이 점령했다는 말에 서점에 나가봤더니 그건 영 틀린 말이 아니었다. 나조차도 올해 생전 처음으로 주식계좌를 만들고 주린이가 되었으니, 주식 할 만한 사람은 몽땅 다 하고 있는 거다. 랍스터 가게 주인의 풀죽은 얼굴이 상심한 내 얼굴과 오버랩됐다. 이게 전부 다 코로나 때문일까. 랍스터집 사장도, 작가인 나도 위기에 처해 있는 이유가 말이다.
해동된 지 오래된 생선처럼 흐물흐물해진 내게 남편은 그렇게 계속 우울해 할 거면 강릉이나 제주도 같은 곳으로 여름휴가를 일찍 떠나자고 제안했다. 나는 시큰둥했고, 여행은 미뤄졌다. 그 대신 우리는 동네의 여러 골목길을 걷거나, 공유자전거를 타면서 돌아다녔다. 이 동네로 이사온 지 오 년이 넘어서야 찬찬히 동네를 거닐며 가게 하나하나를 살펴보게 된 것이다.
그게 시작이었다. 동네 탐방 한 달이 지나자 점점 재미가 붙었다. 걸어서 한 시간 거리까지 다녔다. 가게의 흥망성쇠도 보였다. 어떤 가게가 갑자기 장사가 잘 되면 이유를 궁금해했고, 개업집 오픈발이 떨어지면 덩달아 표정이 어두워졌다. 그간 스쳐갔던 동네 풍경들도 온통 새롭게 보였다. 동네 온갖 소문의 진원지로 추정되는 오래된 미용실, 이렇게 장사에 무신경한 걸 보면 건물주가 분명한 아구탕집, 새로 생긴 과일가게를 지키고 있는 꽤 잘생긴 청년사장, 건어물 가게에 버젓하게 올라앉아있는 초고도 비만 고양이, 낮술 손님이 제법 많은 맥주체인점, 매번 시켜 먹었는데 여기 있었는지 몰랐던 중국집. 이런 가게들을 남편과 하나하나 구경하며 대화의 소재로 삼았다.
집에 있기엔 더워지면서 나는 더 자주 동네를 걸으며 신선한 기분을 얻었다. 혼자서도 슬리퍼를 끌면서 동네를 처음 보듯 구경하며 다녔다. 그렇게 짧은 여행을 마치고 집에 돌아오면 무탈한 하루의 일상에도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월든》에서 헨리 데이비드 소로우가 독자에게 건넨 메시지를 기억해냈다.
우리는 길을 잃고 세상을 잃은 뒤에야 비로소 자신을 찾기 시작한다.
자신이 있는 곳을 깨우치고, 자신과 세상이 무한한 관계를 맺고 있음을 깨닫는다.
낯선 세계를 접하는 것이 여행이라면, 내가 사는 동네를 느리게 걸으며 낯설게 보는 것도 엄연한 여행이었다. 코로나 시대를 겪으면서 어쩔수 없이 많은 것들을 음미하게 된다. 속도가 붙어있을 때는 음미를 할 수 없지만 지금은 가만히 그 자리에 있어야 하는 시기 아닌가. 지금은 낯익은 것들을 낯설게 바라보기에 딱 좋은 때다.
그렇지만 최고로 좋은 건, 이런 제약이 끝나는 것이겠지. 팬데믹이 없었다면 한때 잘 나갔던 여행사 사장님이 이 동네에 난데없이 랍스터 식당을 열지도 않았을 테고, 나도 이보다는 조금 더 나은 성적표를 받아들 수 있었을 지도 모른다.
여기까지 글을 쓰다가 노트북을 덮었다. 이 글을 어떻게 끝맺을지 고민이 됐기 때문이다.
그날 저녁, 혼자 동네 산책을 다녀오던 길에 발견했다. 랍스터 식당이 옆 상가까지 공간을 넓히고 있었다. 생맥주 구백원 전략이 드디어 통한 걸까. 사장은 땀을 뻘뻘 흘리며 열심히 페인트칠을 하고 있었다. 그러고보면 나 역시도 한없이 침울해만 한 건 아니었다. 어느새 정신을 차리고 다음 책을 구상하고 있었다. 우리는 내내 실패하고 있는 것 같아보여도 거기서 뭔가를 배우며 단단해지고 있었다. 2021년, 시간은 흐르고, 우리는 지금 힘을 기르고 있다.
**위 글 전문은 코리안리 웹진 여름호에 실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