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아노의 습관
피아노는 여러모로 인생 첫 악기로 제격이다. 관악기, 타악기, 현악기 중에서 플루트나 색소폰 같은 관악기는 아무렇게나 불면 소리조차 제대로 나지 않을뿐더러 헛심을 쓰다가 금세 숨이 턱까지 찬다. 산소 부족으로 편두통까지 올 수 있다. 북이나 드럼 같은 타악기는 어떤가. 진입장벽이 높지는 않지만 싫증이 나기 쉽다. 소리가 커서 집에서 연주하기도 곤혹스럽다. 현악기는 정말 아름다운 소리가 나지만 연주자에 따라서 소리가 천차만별. 한순간에 호러영화에 어울릴만한 소음이 된다. 이웃에 사는 초보자의 지독한 바이올린 소리에 시달려본 사람은 무슨 말인지 잘 알 것이다.
이런 악기들과 다르게 피아노는 일단 손가락으로 누르기만 하면 일단은 제대로 된 소리가 난다. 더듬더듬 한 음씩만 눌러도 그것대로 듣기에 거북하지가 않고, 은은한 맛이 있다. 피아노를 치면 우리의 입이 자유롭다. 피아노를 치면서 수다를 떨 수도 있고 노래를 부를 수도 있다. 문득 피아노가 현악기인지 타악기인지 궁금해서 백과사전에서 검색해보니 건반을 눌러서 현을 때린다고 하여 ‘타현악기’로 분류되어 있다. 현악기의 아름다운 소리에다가 타악기의 심플한 연주법의 장점을 겸비한 악기의 왕답다. 여기에 빼놓을 수 없는 장점 한 가지 더. 피아노는 한 자리에 고정이 돼 있어서 공간에 대한 기억과 함께 남는다는 것.
피아노에 관한 첫 기억은 내가 살던 골목 어귀의 피아노학원이라는 공간이다. 초등학교 때 다녔던 그곳은 피아노 소리는 종종 끊겨도 아이들 말소리만큼은 끊이지 않았다. 유리로 된 미닫이문을 옆으로 밀면 ‘드르―륵’ 소리와 함께 명랑한 소리들이 정신없이 쏟아졌다. 검은색 필름지를 붙여서 밖에서는 안이 안 보였는데, 안에서는 안쪽을 보려고 기웃대는 바깥사람들이 잘 보여서 뭔가 견고한 아지트 같은 느낌이었다.
안에는 두 대의 피아노가 있고, 두 계단 올라가면 피아노 선생님 가족이 사는 큰 단칸방이 나왔다. 그 방 한쪽 벽에 피아노 한 대가 더 있었다. 선생님이 잠깐 자리를 비우면 방 안에서 피아노를 치고 있는 친구 옆으로 가서 놀았다. 콜라에 치아를 넣으면 녹아내린다는 말이 어른들이 만든 괴담인지 알아내기 위해 엿 먹다 빠진 친구의 송곳니를 콜라에 담가서 피아노 위에 올려놓고 정말 치아가 줄어들었는지 등원할 때마다 가슴 졸이며 관찰하던 기억이 난다.
그 공간이 마냥 좋기만 한 건 아니었다. 거기에도 오금이 저리는 체벌이 있었다. 건반을 잘못짚으면 투명한 삼십 센티미터 자로 손등을 정말 세게 맞았다. 까딱 잘못 피해서 손가락을 맞으면 눈물이 핑 돌게 아팠다. 피아노 연습은 별의 다섯 귀퉁이를 칠하며 셌다. 선생님은 기분이 좋으면 별 대신 꽃을 그렸고, 나는 이파리 다섯 개를 색연필로 꼼꼼하게 칠했다.
원생으로서의 나는 착실한 편이었다. 친구들이 가장 지루해하는 하농Hanon 연습곡이 가장 좋았다. 하농 연습곡들은 계단을 밟아서 저 끝까지 올라가고야 마는 것처럼, 같은 멜로디를 한 음씩 높여가면서 치는데 그걸 치다 보면 내가 어떤 분야의 장인이 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지루한데, 동시에 뿌듯했다. 하농으로 손가락을 푼 다음에야 비로소 화려한 체르니로 넘어갈 수 있다는 기대도 있었다. 근력을 기르고 손가락을 쫙 뻗어야지 비로소 피아니스트가 된다. 주입식 연습곡이었지만, 하다 보면 반드시 그것을 틀리지 않고 치는 순간이 왔기 때문에 더없이 정직한 시간에 나는 천진스럽게 몰입했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하농은 일종의 습관이자 운동이었다. 생각하지 않고 움직이는 시간이었다. 운동이란 건 생각하지 않고 몸이 저절로 움직이도록 단련하는 것이다. 친구 H가 복싱장에 갔다. 두세 달 동안 하는 거라곤 기본 스텝과 원투 훈련뿐이었다. 단순한 동작 반복에 질려서 관장에게 지겹다고, 다음 동작을 알려달라고 졸랐다. 관장은 한쪽 팔을 뻗으면 다른 쪽 팔이 자동으로 나갈 때까지 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게 복싱이라고. 그래야 두드려 맞으면서도 주먹을 날릴 수 있는 것이라고. 골프나 테니스 같은 다른 스포츠도 마찬가지라고 한다. 연습을 할 때는 이래저래 생각을 하지만 실전에 가면 아무 생각 없이 해도 그게 몸에 배어서 습관이 되도록 한다. 무엇을 하기 위해 다른 부분에 대한 신경을 끄고 하나에 몰두하는 것이 진짜 자기의 것이 된다는 얘기다.
습관이 습관이 되는 길은, 생각 없이 하는 것이다. 처음에는 생각이 없지는 않을 것이다. 왜 해야 하는지 스스로 묻게 되고, 어떻게 하는 게 맞는 것인지, 내가 꼭 해야 하는지 의심하고 회의감을 갖게 된다.
당연히 지루할 수밖에 없다. 오로지 반복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러다 어느 순간 마음의 무게를 초월하는 지점이 선물처럼 찾아온다. 그게 습관이다. 그리고 그 지루한 반복이 고통이 아니라 견딜만한 것으로 여겨진다면 그것은 내가 기꺼이 가질 자격이 있는 것이다. 내가 스스로 결정한 이 지루한 시간을 생각하면, 지금의 내 모습이 여기에 있다. 내 삶의 문제들을 고통을 피하지 않고 견뎌야지만 내 삶에 집중하는 것이다. 아무 생각 없는 시간. 그것의 힘을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