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는 얼굴 하나 없는 도시

서울 서바이벌 가이드

by 진저

“나 서울에 있는 대학 갈래.”


고3이 되자마자 나는 선언했어. 광역시였지만 서울에 비하면 작은 도시였고, 부모님은 군 단위 시골에서 온 분들이셨어. 아마도 그날 밤 부모님은 회의에 들어갔을 거야. 중간중간 깊은 한숨이 거실까지 새어나왔을 수도 있고. 나중에 알았지만 아빠는 지방 국립 교대나 사범대에 가면 충분히 안정적으로 살 수 있다며 반대했지만, 엄마의 생각은 달랐대. 우리 딸이 하고 싶다는데! 기왕이면 서울에 가서 공부도 하고 거기서 취직, 결혼까지 하면 좋을 것 같았대. 등록금에 학비, 생활비까지 생각하면 당장 돈을 어떻게 마련해야 할지 걱정이지만 어찌어찌하면 되겠지 싶었고.


그 다음날부터 나는 온갖 교과서와 문제집 표지마다 네임펜으로 크게 영어로 “IN SEOUL”이라고 쓰기 시작했어. 서울에 살지 않는다는 건 왠지 재밌는 일이 펼쳐지는 무대에 한번 오르지 못하고 평생동안 관객으로 사는 것 같은 느낌이랄까. 서울에 가면 내 삶이 확실히 좋은 쪽으로 ‘리셋’될 거란 생각이었어. 거기서 뭘 해야 될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뭔가 대단한 목표 하나를 세운 것만 같았지.


가서 뭘 할지는 다음 문제고, 일단은 티비에 나온 맛집에 매주 갈 수 있고, 세련된 서울남자와 영화같은 사랑을 할 수 있고, 놀이공원을 갔다가 길거리캐스팅을 당한 스타들의 데뷔 일화처럼 나 자신도 깜짝 놀랄 기회를 만나 인생이 수직상승하는 것도 상상했어. 부끄럽지만. 뭐, 어렸으니까. 통계를 보니 서울과 수도권으로 주거지를 옮긴 사람이 2017년 1만6천 명에서 3년 만에 8만8천 명으로 늘었다는데, 그 중에서도 청년층인 20~30대가 가장 많았다니, 나만 그런 건 아니겠지?


지방 거주 학생 상당수는 누구나 한번씩 서울로 가는 것을 동경하게 돼. 부모님의 영향권에서 벗어나고 싶은 마음까지 뒤섞여 있지. 하지만 서울에 오고 나면 그 이후에 일어나는 위험 요소들에 대해서는 누구도 자세하게 알려주지 않아. 도대체 어떤 일이 생기냐고? 스마트폰 없이 완전히 낯선 곳에 떨어진 적 있어? 돈도 없고, 아는 얼굴도 하나 없어. 구질한 옷을 입은 몸뚱이 하나만 있는데 복잡한 미로 한가운데에 뚝 떨어져버린 아득한 기분이랄까.

저마다의 일생에는, 특히 그 일생이 동터 오르는 여명기에는 모든 것을 결정짓는 한순간이 있다.

―장 그르니에, 《섬》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