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연말에 정리하는 독서 연말결산이 3년째다.
꾸준히 늘어나고 있는 나의 독서량. 2019년과 2020년엔 비슷하게 35권 웃돌게 읽었는데, 올해는 조금 과감하게 42권을 읽는 목표를 세웠고 마지막에 겨우 채울 수 있었다.
목표를 달성하긴 했으나, 생각보다 꽤 힘든 일이었다.
1. 상관없는 거 아닌가? - 장기하
2. 자기결정 - 페터 비에리
3. 다정한 매일매일 - 백수린
4. 달러구트 꿈 백화점 - 이미예
5. 살고 싶다는 농담 - 허지웅
6. 어린이라는 세계 - 김소영
7. 정원 가꾸기의 즐거움 - 헤르만 헤세
8. 예술의 쓸모 - 강은진
9. 사람의 마음을 읽는 UX디자인의 힘 - 김동후
10. 규칙없음 - 리드 헤이스팅스, 에린 마이어
11. 이상하고 자유로운 할머니가 되고 싶어 - 무루
12. 인디펜던트 워커
13. 달까지 가자 - 장류진
14. 삶을 읽는 사고 - 사토 다쿠
15. 공간의 미래 - 유현준
16. 좀머 씨 이야기 - 파트리크 쥐스킨트
17. 명랑한 은둔자 - 캐럴라인 냅
18. 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19. 내 마음을 나도 모를 때 - 양재진, 양재웅
20. 없던 오늘 - 유병욱
21. 피프티 피플 - 정세랑
22. 호랑이를 덫에 가두면 - 탠 켈러
23. 더 좋은 곳으로 가자 - 정문정
24. 밝은 밤 - 최은영
25. 기획자의 독서 - 김도영
26. 여름은 오래 그곳에 남아 - 마쓰이에 마사시
27. 여름의 빌라 - 백수린
28. 직업가로서의 소설가 - 무라카미 하루키
29. 다른 방식으로 보기 - 존 버거
30. 일터의 문장들 - 김지수
31. 역사의 쓸모 - 최태성
32. 작별하지 않는다 - 한강
33. 완전한 이름 - 권근영
34. 나는 착한 딸을 그만두기로 했다 - 아시쿠라 마유미, 노부타 사요코
35. 아주 보통의 행복 - 최인철
36. 그래서 브랜딩이 필요합니다 - 전우성
37. 예술가의 손끝에서 과학자의 손끝으로 - 김은진
38. 그냥 하지 말라 - 송길영
39. 슬픈 세상의 기쁜 말 - 정혜윤
40. 남의 나라 흑역사 - 위만복
41. 인간으로 사는 일은 하나의 문제입니다 - 김영민
42. 계절산문 - 박준
어린이라는 세계 / 김소영
올해 주변에서 책 추천해달라고 하면 무조건 이 책을 우선적으로 추천했다. 김영하 작가의 북클럽 책으로 선정되어 읽게 되었는데, 어린이 독서교실을 운영하는 작가가 바라본 아이들의 순수함이 잔뜩 묻어나와 너무 좋았던 책. 올해의 베스트 도서로도 뽑힌 듯 하다. 어린이를 대하는 우리가 당연하게 여기며 했던 태도와 생각들도 다시 한번 들여다보게 만드는 책.
이상하고 자유로운 할머니가 되고 싶어 / 무루
읽으면서 좋은 영향을 주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이 계속 떠올랐던 책. 그리고 작가처럼 흘러가는 것, 내 힘으로 되지 않는 것들에 연연해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줄 아는 사람이 된다면 참 좋겠다고 읽는 내내 나를 다독여준 올해의 베스트 에세이였다.
없던 오늘 / 유병욱
애정하는 작가가 있다는 것, 그리고 그 작가의 신간을 두근거리며 기다릴 수 있다는 것은 참 행복한 일이다. 정말 좋아하는 작가 중 한분인 유병욱 작가의 신간. 역시나 너무 좋았다. 코로나 시국에 우리가 잃어버린 것도 많지만 얻은 것이 있다면 무엇이든 '음미'하는 태도라는 말이, 한동안 코로나 블루에 휩쌓였던 내게 작은 다독임이 되어 너무 좋았다.
밝은 밤 / 최은영
김애란 작가 이후에 선호하는 한국 작가가 또 생긴 듯 싶다. 이전에 쇼코의 미소와 내게 무해한 사람에 이어, 흡입력 있게 읽은 한국 소설. 작가 만의 특유의 분위기가 묻어나서, 흡입력 있게 하루만에 읽은 소설이었다.
그냥 하지 말라 / 송영길
우리가 하는 모든 행위에는 이유가 있음을, 데이터 기반의 흐름으로 풀어낸 책이었는데 두께보고 걱정했던 것에 비해 흥미롭게 읽을 수 있었다. 데이터 외 사람의 행위라든가 트렌드에 대해 간단하게 접근하고자 하는 사람에게 추천. 회사에 강연 오셨었는데 인원 제한으로 직접 듣지 못해 너무나 아쉬울 따름.
슬픈 세상의 기쁜 말 / 정혜윤
코로나를 겪으면서 가장 많이 느끼게 된 불편함 중 하나는, 내가 당연하게 생각하고 있던 것들이 당연하지 않아졌다는 것이다. 당연한 것들도 소중하게 바라보고 애틋하게 대할 줄 아는 작가의 이야기들이, 읽는 내내 마음을 따습게 만들어줘서 좋았던 책이었다.
인간으로 사는 일은 하나의 문제입니다 / 김영민
어려움 가득한 정치 얘기일 것이라는 편견에 비해, 술술 읽혀내려가던 책이었다. 그렇게 치열하게 서로를 헐뜯으면서도 공동체 생활에서 결코 피할 수 없는 정치에 대해 다양한 시각을 풀어낸 책으로, 정치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다면 춴하고 싶다.
스스로의 기분이 어떤지를 잘 살피는 일이 행복에 이르는 지름길이라고 여긴다. 그리고 무엇보다, 인생에서 좋은 기분보다 중요한 것은 별로 없다고 생각한다. (상관없는 거 아닌가? - 장기하)
서퍼는 바다 위에서 즐겁다. 바다에 의해 좌지우지되면서도, 작게나마 나름의 역할을 하며 재미를 찾는다.(상관없는 거 아닌가? - 장기하)
타인은 어디까지나 타인에 불과하며 그들이 우리를 평가할 때 우리 자신과는 아무 관계도 없는 오직 그들만의 문제인 수만 가지 요인에 의해 그 평가가 왜곡되고 부정적이 된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자기 결정적 삶은 이러한 낯섦도 견뎌낸다는 것을 뜻합니다. (자기결정 - 페터 비에리)
어린이가 가르쳐 주어서 길을 아는 게 아니라 어린이에게 무엇을 어떻게 가르칠지 고심하면서 우리가 갈 길이 정해지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어린이를 가르치고 키우는 일, 즉 교육은 이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의 몫이 된다. (어린이라는 세계 - 김소영)
어린이를 온전히 마주하는 경험은 결국 우리 안에 오랫동안 꽁꽁 숨겨 둔 가장 작고 여린 마음들을 다시 꺼내 들여다보고 천천히 헤아리는 시간이라는 걸. 어린이를 대하는 우리의 시선과 태도와 마음, 그 모든 것들이 결국 우리 자신을 향해 있다는 걸. (어린이라는 세계 - 김소영)
그리고 씨앗을 뿌리고 수확을 할 때, 땅 위의 모든 피조물 가운데 유독 인간만이 이런 순환에서 빠져 있고, 무한한 순환에 만족하지 못하고 자기만의 개인적인 특별한 무언가를 가지려 하는 것이 참으로 기이하지 않은가, 생각하곤 한다. (정원 가꾸기의 즐거움 - 헤르만 헤세)
재즈는 개인의 자발성을 강조한다. 연주자는 음악의 전체 구조를 알고 있지만, 경우에 따라 즉흥적으로 흐름에서 벗어나 혼자 흥에 겨워 연주할 자유가 있으며, 이로써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놀라운 음악을 창조해 낸다. (규칙없음 - 리드 헤이스팅스, 에린 마이어)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상처도 후회도 없다. 그러나 성장도 없다. 성장은 언제나 균열과 틈, 변수와 모험들 사이에서 생겨난다. 간극을 메우고 틈을 좁히고 서로 어긋난 것들 속에서 균형을 맞추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동안에야 비로소 우리는 조금 자랄 수 있다. (이상하고 자유로운 할머니가 되고 싶어 - 무루)
그냥, 인생 자체가 그랬다. 태어나면서 지금까지 시간이 지날수록, 해가 지날수록, 한살 더 먹을수록 늘 전보다는 조금 나았고 또 동시에 조금 별로였다. 마치 서투른 박음질 같았다. 전진과 뒷걸음질을 반복했지만 그나마 앞으로 나아갈 땐 한땀, 뒤로 돌아갈 땐 반땀이어서 그래도 제자리걸음만은 아닌 그런 느낌으로. (달까지 가자 - 장류진)
소성적인 건 단순히 사회의 흐름에 몸을 맡기는 것도, 무턱대고 부화뇌동하는 것도, 더 나아가 세상의 눈치를 보면서 유행을 좇는 것도 아니다. 최대한 객관적으로 상황을 받아들이고 적절하게 대응할 수 있는 유연한 상태에 자신을 놓아두는 것이다. (삶을 읽는 사고 - 사토 다쿠)
내가 원하는 답이 오지 않더라도 실망하기보다는, 나에게 그런 기대치가 있었다는 것을 알아차리는 계기로 삼아보세요. 처음에는 어려울지 몰라도 점차 부드럽고 유연하고, 건강한 관계를 맺어나갈 수 있을 것입니다. (내 마음을 나도 모를 때 - 양재진, 양재웅)
음미는, 지금 내게 없거나, 곧 빼앗길 위기에 처한 것들 앞에서 자주 시작된다. '지금 이것이 당연하지 않을 수 있구나'에서 시작된다. 당연했던 것들을 너무나 많이 빼앗겨버린 우리. 그래서 우리에겐 그동안 없던 능력이 하나 생기고 있는 건 아닐까? 그것은 '음미력' 아닐까. (없던 오늘 - 유병욱)
턴테이블은 굉장히 낯선 물건이었다. 부모님이 그걸 사왔을 때는 약간 의아했지만 어떻게 다루는지 배우고 나니 깨끗하지 않은 소리가 오히려 매력적이라는 걸 깨달았다. (피프티 피플 - 정세랑)
우리가 하는 일이 돌을 멀리 던지는 거라고 생각합시다. 어떻게든 한껏 멀리. 개개인은 착각을 하지요. 같은 위치에서 던지고 사람의 능력이란 고만고만하기 때문에 돌아 멀리 나가지 않는다고요. 그런데 사실은 같은 위치에서 던지고 있는 게 아니에요. 내 세대와 우리의 중간 세대가 던지고 던져서 그 돌이 떨어진 지점에서 다시 주워 던지고 있는 겁니다. (피프티 피플 - 정세랑)
듣고 싶은 말을 최대한 수집하기를. 어른이 된다는 건 자신만의 관점을 가지고 그에 어울리는 선택을 해나가는 일인데, 이 레이스는 너무 혹독해서 처음에는 호기롭게 시작했어도 어느새 남들 사이에 묻혀 편하게 갈 궁리를 하게 된다. 둘러가더라도 목적지는 잊지 않으려면 언젠가 한번쯤 들었던 호의의 말, 진짜라고 믿고 싶은 말을 눈에 띄는 곳에 두어야 한다. (더 좋은 곳으로 가자 - 정문정)
정작 덕후에게 중요한 질문은 '왜 입덕하였나'가 아니라 '왜 탈덕하였나'가 된다. 간절했던 마음이 끝날 때 스스로에게 이렇게 물어보면 자신을 이해하고 과거의 나와 화해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그때 나는 삶을 견디기 위해서 무엇이 절실했던 걸까?' (더 좋은 곳으로 가자 - 정문정)
자존감은 열등감이나 자격지심이나 피해의식 같은 불순물을 없애고 순도 높게 벼려낸 보석이 아니라, 나라는 사람의 성정을 발효시켜 오래 기다려 구워낸 빵에 더 비슷할 것이다. 정말로 자존감이 높은 사람들은 고통에 무지한 사람들이 아니라, 주어진 것을 뛰어넘었고 더이상 그 흉터에 집중하지 않겠다고 선언하는 승리자들이니까. (더 좋은 곳으로 가자 - 정문정)
감정이 소화가 안 되니까 쓰레기 던지듯이 마음에 던져버리는 거야. 그때그때 못 치워서 마음이 쓰레기통이 됐어. 더럽고 냄새나고 치울 수도 없는 쓰레기가 가득 쌓였어. (밝은 밤 - 최은영)
즐거움을 경험해 본 사람만이 다른 무언가를 할 수 있어요. 즐거움을 기억하는 사람은 면역력이 강해요. 그래서 어떤 환경에서든 잘 놀고 해법을 찾죠. (일터의 문장들 - 김지수)
그 얼굴은 잘나가거나 못나가거나 한 인간을 함부로 판단해 보지 않은 자의 얼굴이다. 잘나갈 때나 못나갈 때나 타인의 인정에 목매지 않고 오직 자기 자신이 삶의 컨트롤 키를 쥔 채로 당당했던 자의 얼굴이다. 그리하여 자기를 기특해하고 타인을 애틋해하는 결과적으로 귀여워진 개인의 얼굴이다. (일터의 문장들 - 김지수)
능력을 발휘하는 장소, 평가받는 그룹이 많을수록 평가에 덜 심각해집니다. 한군데서 인정받으려고 올인하지 않죠. 정체성을 분산시켜 다원화하면 '이게 아니면 다음'이라는 대안이 생겨요. (일터의 문장들 - 김지수)
역사 속에서 위인으로 평가받는 사람들은 정상에서 배회한 사람들이 아닙니다. 물러나야 할 때 물러날 줄 알고, 잘 내려온 사람들이지요. 우리는 역사를 통해 '잘 내려오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이를 통해 나의 존재, 나의 격을 지킬 수 있으니까요. (역사의 쓸모 - 최태성)
자신의 삶을 스스로 바꿔나가는 종류의 사람들이 있다. 다른 사람들은 쉽게 생각해내기 어려운 선택들을 척척 저지르고는 최선을 다해 그 결과를 책임지는 이들. 그래서 나중에는 어떤 행로를 밟아간다해도 더이상 주변에서 놀라게 되지 않는 사람들. (작별하지 않는다 - 한강)
"행복은 그저 일상의 삶을 잘 살아가는 것. 매일매일 반복되는 일상의 사소함 속으로 더 깊이, 온전히 들어가는 것이 곧 행복이다." (아주 보통의 행복 - 최인철)
그림에 생긴 날카로운 균열도, 내 눈가에 생긴 깊은 주름도, 세월을 잘 견디며 안정적으로 늙어 가고 있다는 증거로 위안을 삼을 수 있을까? (예술가의 손 끝에서 과학자의 손 끝으로 - 김은진)
자기 자신을 말하기 이전에 자기 질문이 있는 것이다. '그것 없이는 나를 말할 수 없는 단어가 뭐지? 그런 게 있기는 있나? 그 단어가 왜 나에게 중요하지?'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으려면 자신의 삶을 꽤나 뒤적거려볼 수 밖에 없고 그 과정부터가 프로그램의 시작이다. (슬픈 세상의 기쁜 말 - 정혜윤)
나는 꼭 남들이 알려줘야 좋은 것이 좋은 것인지 안다. 어쩌면 이래서 타인이 필요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좋은 것이 좋은 것임을 아는 사람들이 내 곁에 많았으면 좋겠다.(슬픈 세상의 기쁜 말 - 정혜윤)
뭔가 해보고 싶은 욕망, 우리는 흔히 욕망을 부정적인 것으로 간주하는 데 익숙하지만, 사실 욕망이 없다면 이 세계는 텅 비어버리고 말 것이다. 그릇은 해체되고 말 것이다. 욕심이 있어야 인생이 있고, 인생이 있어야 욕심이 있다. (인간으로 사는 일은 하나의 문제입니다 - 김영민)
점이 보이지 않는 한쪽 얼굴만을 그리는 것입니다. 이렇게 한다고 해서 소홀이나 왜곡이 되는 것은 아닐 테니까요. 옆모습을 그리고 있노라면 어느새 바람이 불어와 그의 머리칼을 부드럽게 휘날려줄 것입니다. (계절산문 - 박준)
읽은 책을 연말 결산으로 정리한 지 3년째인데, 3년째 가장 높은 비율을 보이고 있는 에세이. 마음이 싱숭생숭할 때 읽기 정말 딱인 듯 싶다. 나 혼자만의 힘듬이 아니고 모두가 다 각자의 힘듬이 있고 그것이 드러나지 않음으로 다독여주는 느낌이라, 마음이 허전할 때마다 읽는 것 같다. 그리고 두번째로 많이 읽은 인문학. 일부러 꾸준하게 접하려 했고 완독했다. 정치, 사회 등 다양한 분야의 책을 읽었지만 다소 깊게 들어가는 책은 여전히 기피하고 가볍게 접근할 수 있는 책 위주로 읽은 것 같다. 팀 운영에 대한 고민이 많아지면서 관련 책도 많이 읽었다. 다만, 현업에서 활용하려고 하면 하나도 기억나지 않는 것이 함정...-:)
올해 아쉬운 점이 있다면 고전과 너무 멀어졌다는 것. 독서모임 발제 책으로도 선정이 잘 되지 않아 더 멀어졌던 것 같다. 2022년에는 고전도 틈틈이 읽어 좀더 다양한 시각을 둘러볼 수 있길 바라며. 아, 그리고 너무 많은 책보다는 한달에 2권만 읽는 것을 목표로 삼아보고자 한다. 연말에 너무 힘들었(....) 한해도 고생했다! 그리고 여전히 난, 나의 취미가 독서인 것이 너무 다행스럽고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