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녀 공동 징병제에대한 생각
기계적 평등이란 악화가 청년의 삶의 개선이란 양화를 구축할 수 있다. 하향 평준화, 기계적 평등도 평등이다. 남녀 공동 징병제는 성평등 하다. 90%의 남성이 입대하는 상황에서 여성의 신체조건은 복무의 장애 요소가 되지 않는다. 신체적 조건이 제한요소가 아닌 이상, 징병 여부가 불안정한 취업 시장의 주요 평가요소라면 여성이 배제돼서는 안 된다. 그러나 여성의 징병으로 성차별이 사라질지는 확언할 수 없다. 평등만을 좇는 이들에게 모두가 행복한 삶을 꿈꿀 수 없느냐고 묻고 싶다.
여성이 남성보다 신체적으로 부적합할 이유는 남성의 90%가 병역의 의무를 치르는 상황에선 무의미하다. 과거 7080년대에는 인구수가 급격히 증가하고 있었다. 20대는 다수를 차지했고 남성 중 50~60%만이 징병됐다. 재래식 무기, 낮은 수준의 군사기술에 일단 병사 수부터 확보해야 한다는 징병제 불가침 영역을 만들었다. 현재 인구가 감소하는 상황에서 국가와 군은 기존 방식을 유지하기에 급급하다. 신체적•정신적으로 징병에 부적합한 남성의 입대도 막지 않는다. 문제는 90%의 남성이 입대하자, 경쟁 시장에서 성차별을 넘어, 징병 여부가 차이를 만들고 있다. 병역에 대한 보상이 마뜩잖은 남성도, 군필자로 구분되는 차이가 불만인 여성도 모두 차라리 징병되겠다고 외치고 있다.
남녀 공동 징병으로 평등해진 세상이라고 청년 실업이 해결될 리 만무하다. 취업 나이, 결혼 연령이 높아지는 시대에서 입대 2년은 별것 아니다. 2년이 별것이 아닌 세상은 더욱 불합리해질 것이다. 정치•경제계 모두 청년 실업 문제 해결에 손을 놓고 있다. 청년들은 경쟁에는 불만이 없다. 단지 경쟁해서 쟁취할 열매를 늘려주기를 바란다. 그러나 신규 채용이란 열매는 갈수록 작아지고 있다. 심지어 군대를 다녀왔다는 것조차 이득이 되는 취업 시장에서 여성은 뒤처졌다고 느낀다. 그러나 기계적 평등은 남녀가 선 땅을 평평하게 할 뿐, 기회를 늘리거나 열매를 나누지는 못한다.
기계적 평등은 내 삶을 개선할 파랑새가 될 수 없다. 남녀 공동 징병제는 모두가 공평하게 불리해진 세상을 만든다. 남녀 할 것 없이 20대의 귀중한 시간을 평등하게 할애한다. 그토록 원하던 평등이 ‘을’의 싸움으로 끝날 수 있다. 청년은 근본적인 삶의 개선, 사회의 발전에 목소리를 모아야 한다. 서로의 위치는 모두의 행복이란 토대 위에 재편해야 한다. 인구 감소 상황에서 징병제 유지를 비판하고, 성차별 자체에 맞서야 한다. 하향 평준화만을 낳을 기계적 평등에 만족하지 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