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질소비와 경험소비
“봄에 입을 옷이 하나도 없네?”
신기하게도 매년 이맘때면 집집마다 봄옷 부족 현상을 겪게 된다. 이런 마음을 잘 아는 마케터들은 새로운 시작을 의미하는 봄날, 자신에게 특별한 선물을 주라며 달콤한 제안을 한다. 특히 자녀의 겨울방학 동안 아이를 돌보느라 수고하고 이제 자신의 시간을 가지려 하는 엄마들에게 신상 봄옷은 더할 나위 없이 매력적인 소비 대상이다. 하기야 나무들도 새로운 옷으로 갈아입는 마당에, 봄맞이 옷을 구매하는 것은 너무나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러니 올해 봄에는 옷을 살지 말지 가족들 눈치 보며 너무 고민하지 말고 시원하게 하나 장만하면 좋겠다. 다만, 한 가지 생각해 볼 것이 있다. 모처럼 큰마음먹고 소비하는데, 과연 봄옷으로 행복을 살 수 있을까?
소비의 대상을 물질과 경험으로 나눠서 생각해 보자. 홈쇼핑에서 36개월 할부로 지른 최신 로봇청소기, 아울렛에서 충동구매한 바람막이 점퍼는 물질 소비라 할 수 있다. 반면에 새로 생긴 동네 맛집에서 점심 먹기, 친구나 가족들과 떠나는 여행, 영화나 뮤지컬 같은 공연을 관람하는 것은 경험 소비라 할 수 있다. 심리학 연구들에 따르면, 경험 소비가 물질 소비보다 더 뛰어난 가심비(가격 대비 심리적 만족감)를 보인다. 왜 그런지는 여러분의 경험을 되짚어보면 쉽게 이해가 간다.
먼저, 우리는 물건이 주는 새로움에 금방 적응해 버린다. 더 이상 가지고 놀지 않아 구석에 점점 쌓여만 가는 아이들의 장난감을 보면서 ‘저 비싼 쓰레기를 어떻게 처리할까?’ 고민하지나 않으면 다행이다. 반면, 경험 소비는 기억과 감정을 통해 오랫동안 가치를 유지하며, 때로는 시간이 지날수록 그 가치를 더하기도 한다. 경험 소비는 기꺼이 함께 하고픈 사람들과 시간을 보낼 수 있도록 하며, 두고두고 기억할 수 있는 추억을 가져다준다. 물질은 고정되어 있고 수치화되어 있어 비교하기 쉽고, 따라서 기분이 나빠질 가능성이 높다. 반면에 경험은 주관적이며 수치화하기 쉽지 않아 만족감을 느낄 여지가 크다.
아마도 이쯤에서 의문이 들 수도 있다. ‘봄옷은 물질 소비이지만 어떻게 보면 경험 소비 아닌가?’
그렇다. 경험과 물질의 경계가 명확한 것은 아니며, 우리가 보는 관점에 따라 경험적 소비가 되기도 하고 물질적 소비가 되기도 한다. 그렇다면, 기왕 봄옷을 살 계획이라면 ‘옷을 사는 것이 아니라 경험을 사는 것’이라고 생각해 보자. 돈을 더 들이지 않고도 더 크고 긴 행복을 살 수 있게 된다.
지금 여러분의 머릿속에 둥둥 떠다니는 그 옷을 입고 소중한 사람들, 사랑하는 사람들과 시간을 보내는 상상까지 해보면 어떨까?
새로 산 봄옷이 옷장에서 꺼내달라고 외치는 목소리가 길어질수록 당신은 가심비 낮은 소비를 한 것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자. 행복은 결코 비싸지 않다. 올해 벚꽃축제에서 인생 사진을 건지고, 소중한 사람들과 따뜻한 햇살 아래서 활짝 웃는 시간을 가져보기 바란다.
*이 글은 아파트앱 byb 생활의발견 <최혜만의 마음PT> 칼럼에 게재된 내용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