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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짬뽕 뮬란 Dec 01. 2022

의지가 약해서가 아니에요

포기하다


의지가 약해서가 아니다. 누군가는 나를 보고 잘 버텼다고 말해주고 누군가는 내게 의지가 약해서라고 말한다. 생각은 천리장성을 쌓았는데 마음과 몸의 현실은 골방 침대 위에 누워있다.


내가 의지가 약하다는 말을 처음 들었던 것은 회사에 퇴사했을 때다. 우울증을 갖고 있던 내가 더욱 심각한 우울증을 껴안고 퇴사했을 때 누군가 내게 말했다. ‘그 좋은 회사를 왜 그만뒀어. 네가 의지가 약해서 그래.’ 돈도 많이 주고 일도 많이 주는 외국계 투자 회사에 입사했을 때 친구들은 나를 부러워만 했다. 나는 내가 부럽지 않았다. 1년 뒤 회사를 퇴사하고 몇몇 친구들은 ‘잘 버텼다.’와 ‘그걸 왜 그만뒀어.’로 나뉘었다. 나는 무언가를 시작하기 전 수천, 수만 가지의 생각을 한다. 겁이 나서, 두려워서. ‘내가 너라면 그 회사 죽을 때까지 다녔다.’라는 말에 변명을 좀 해보자면 나도 그러고 싶었다. 그런데 회사에 있으면 매일 쳐다보는 모니터 선들을 내 목에 칭칭 감아 죽어버리는 상상뿐이었다. 외근을 잠시 나갔을 때는 다른 차에 치여서 죽어버렸으면 좋겠다고 생각했고 집에 오면 커튼 봉에 목을 매달아야 하나 싶었다. 길을 걷다 넘어지면 코가 깨져 죽어버렸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며 회사를 다녔다. 그 시간을 1년을 버티고 나오니 내게는 그 어떤 것도 남아 있지 않았다. 물론 통장에 잔고만 쌓여있었다. 돈을 벌어도 돈을 쓸 시간도 힘도 없었다.


나는 대부분 입사한 회사를 오래 다니지는 못했다. 매일 사람들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 겁이 나고 두려웠다. 사람들 눈치를 보느라 출근하기 전부터 이미 실신할 듯 어지럽고 몸이 아팠다. 어떤 회사를 가도 똑같았다. 업무가 나를 힘들게 한 것이 아니라 나 자신이 나를 힘들게 했다. 퇴근할 시간이 다가오면 내일 출근할 일이 두려웠다. 단 하루도 겁이 나지 않은 적이 없었다. 그런 직장 생활을 4년을 했다. 나는 아침 8시까지 출근인데 새벽 4시에 일어나 출근 준비를 하고 침대에 앉아 두려움에 떨어야 했다. 사람들 사이에서 함께 어울려져야 하는 사회가 무서웠다. 회사에 가는 것, 그러니까 사람들 틈으로 들어가는 것이 죽을 만큼 힘들었다. 이 짓을 몇 년을 하고 나니 더 이상 회사를 다니고 싶지 않았다. 누군가 내게 사회 인생에 대해 물으면 항상 하는 말이 있다. 하고 싶지 않은 것 딱 두 가지가 회사 생활과 결혼 생활이라고.


나는 현재 남들처럼 평범한 회사 생활을 하지 않으며 살고 있다. 물론 사회생활 자체를 안 할 수는 없다. 아리스토텔레스도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고 표현하지 않았던가. 나는 사회생활을 단시간만 하면서 사람들과 최소한만 섞여 가며 살려고 노력 중이다. 짧은 시간 동안 일하며 번 돈으로 먹고 산다. 회사에 다닐 때만큼 통장 잔고가 불어나진 않지만 나는 현재에 최상으로 만족하며 살고 있다.


내가 회사 생활을 못하는 건 의지가 약해서가 아니었다. 처음에 나 역시 내 의지가 부족해서 회사 생활을 오래 못한다고 생각했다. 나는 그저 놀고만 싶어 하는 한량인가 의심했다. 병원에 다니면서 의사들과 상담 선생님들과 많은 대화를 하면서 알게 된 것은 나는 의지의 문제가 아니었다.


단지 나는 아팠던 거다. 물론 우울증은 의지를 쉽게 꺾어버리는 장애이기도 하다. 우울증은 천의 얼굴을 가졌기에 우울증을 직접 겪어보지 않은 사람이라면 이 마음을 죽었다 깨도 모를 것이다. 의지가 약해서 무언가를 잘 시작하지 못하고 끝맺음을 잘 못 맺는 것이 아니다. 내 특기는 하던 일 그만두기라고 말해도 무방할 정도로 포기가 빠르다. 내가 직장생활을 오래 못했던 건 의지의 문제가 아니었다. 의지를 보통 ‘어떠한 일을 이루고자 하는 마음’이라고 하는데 나는 이루고 싶은 것이 많은 사람이다. 다만 몸이 따라주지 않고 마음이 따라주지 않을 뿐이다. 의지가 약해서가 아니다. 느리지만 물론, 이루어 내는 일도 많다. 여러 가지 일을 수행하기 위해 필요한 힘을 의지력이라고 한다면 나는 힘이 부족했는데도 불구하고 많은 것을 이뤄냈다. 힘이 약한 사람이라 의지력을 불태우며 살지는 못했다.


나는 내 상태를 클라이밍에 비유해 생각해보기도 한다. 조금만 올라간다. 더 오를 수 있는데 내려오게 된다. 내려오면 사람들은 끝도 없이 내게 간섭한다. ‘더 오를 수 있는데 왜 내려왔어?’, ‘내가 너였으면 끝까지 갔다 왔다.’ 나도 익히 들어 알고 있다. 내가 클라이밍을 하기에 남들보다 유리한 몸이라는 것을. 그러나 마음의 힘이 없기 때문에 도전하지 못하고 포기하고 만다. 그렇게 내려와서는 나 자신을 비난한다. ‘내가 그럼 그렇지.’, ‘역시 난 안되나 봐.’ 하고 말이다. 이미 머릿속으로는 이 암벽을 어떻게 탈 것인지를 수백 번 고민하고 머릿속에 이미지로 수천 번을 그렸다. 오르기 전에는 겁이 나서 꼼짝도 못 하고 울기만 한다. 한 손을 내밀기 전까지 수천 번을 생각한다. 왼손과 오른손의 움직임, 오른쪽 발과 왼발의 움직임까지 머릿속으로는 이미 몇 번을 그렸으나, 마음이 그러지 못하니 몸도 따라오질 못한다. 몸이 포기하는 것이 아니다. 마음이 포기하게 된다. 의지력은 키워지는 것이 아니라 뇌가 그렇게 명령을 내려야 한다. 내 뇌는 조금 아파서 쉽게 명령을 내리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약을 먹으며 내 뇌를 천천히 달랜다. 내가 먹는 약은 작은 일을 시작하기 전 수천 번 고민할 것을 수백 번 고민하는 일로 줄여준다.


마음의 병은 약 없이 오직 의지력만으로 극복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다. 나는 그것도 모르고 나를 탓하기만 했다. 내가 의지가 약해서, 내가 이것밖에 안돼서, 내가 부족한 인간이라서 나를 비난하기 바빴다. 이제는 남들이 뭐라고 생각하든 개의치 않는다. ‘벌써 포기해?’라는 말을 들어도 ‘뭐 어때.’하며 잊어버리려고 노력한다. 남들의 간섭과 오지랖만 없으면 나는 지금도 충분히 잘 살아내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니 우울증의 늪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사람들이 나처럼 ‘의지가 약해서’라고 생각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의지가 약해서 아니다. 뇌가 아픈 것뿐이다. 그러니 더 나약해질 필요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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