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심하다
나는 중학생이었다. 학교에서 어떤 테스트를 봤다. 어떤 테스트였는지는 모르겠다. 나는 그저 아이큐 테스트같은 거라고 생각했다. 결과가 나온 날 담임이었던 여자 선생님은 내게 1대1 면담을 하자고 하셨다. 내 아이큐가 평균에도 미치지 못하는구나 라고 생각하고 혼이 나기 위해 불려간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선생님은 다른 이야기를 하셨다. 내가 자라온 집안 환경, 가족들과의 관계, 내가 지금 하고 하고 있는 생각 등을 물었다. 알고보니 우울증이 심각으로 나온 것이다.
나는 심각한 정신적 장애를 겪는 사람만 정신과에 간다고 생각했다. 내가 병원을 다니면서부터 그 편견과 선입견도 달라졌다. 우울증으로도 병원에 가는구나.
우울증을 그저 그런 마음의 감기라고 표현하는 사람이 있다. 내 마음의 감기는 면역력이 없어서인지 20여 년이 넘도록 나을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그저 그런 마음의 감기라는 것이 참 사람을 서글프게 한다. 감기는 길어야 2주다. 내 마음의 감기는 너무 오래도록 내 곁을 떠나지 않았다. 감기라는 말 때문에 기대도 하게 된다. ‘언젠간 낫겠지.’ 하면서 말이다. 그런데 도통 나아질 기미는 없고 나아졌나 싶다가도 다시 나를 찾아왔다. 누군가 내게 위로랍시고 ‘우울증은 그저 감기에 걸린 것 뿐이래. 괜찮아질거야.’라고 말했다. 그들이 말하는 그저 그런 마음의 감기는 나 자신을 해하고 매일 죽고 싶다는 생각으로 잠들게 하며 세상 모든 일이 슬퍼 보이고 툭하면 눈물이 나도록 한다. 그저 그런 마음의 감기가 맞나? 물론 이런 말들로 스스로를 위로한 적도 있다. 감기는 오래가지 않고 약 먹고 주사 맞으면 금방 나으니까, 우울증도 나을 수 있는 거구나 하고 말이다. 감기에 걸리면 약을 먹거나 주사를 맞는다. 감기가 잘 먹고 푹 쉬라는 신호로도 해석할 수 있는데 우울증을 감기라고 표현한 것 역시 몸과 마음의 에너지를 충전시켜주라는 뜻이겠구나 생각했다. ‘난 한 게 아무것도 없는데?’, ‘아무런 시작도 하지 않았는데 벌써 쉬라니.’ 마음의 감기라는 말이 우울증 환자를 더 힘들게 한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는 것 같다. 물론 가벼운 우울증에는 그럴 수도 있겠다. 그렇지만 매일을 나 자신을 죽음으로 몰고 가는 이 극심한 우울증은 감기와는 비교가 안 된다.
매일 물 속을 걷는 기분이다. 한 걸음 한 걸음을 내딛기가 무겁고 버겁다. 누군가는 우울증을 물이 아닌 시럽으로 가득찬 수영장을 걷는 것 같다고 표현했다. 시럽이 가득한 수영장에서는 한 걸음 내딛는 일이 더욱 힘들 것이다. 나는 이 표현이 정말 잘 맞는 표현이라 생각했다. 걸음 하나, 몸짓 하나가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 무기력하고 전날 아무것도 하지 않았는데도 몸이 무겁고 마음이 무거워 아무것도 할 수 없다. 그런데 과연 이게 그저 그런 마음의 감기가 맞을까? 사람들은 이 말에 속지 않기를 바란다. 우울증은 감기와 다르다. 기관지가 아픈 것과 보이지 않는 마음이 아픈 것은 비교조차 할 수 없다. 하지만 멀리서 보기에 나는 괜찮은 사람으로 보이는 것 같다. 10여 년 전과 비교했을 때 정신과에 대한 인식이 정말 많이 좋아졌다. 하지만 여전히 사람들은 정신과를 방문하는 것엔 많은 망설임을 갖고 있다. 나 역시 처음에 병원을 내 발로 직접 찾아가기란 쉽지 않았다. 어떻게 그런 용기를 낼 수 있었을까. 그저 나는 살고 싶었나보다. 그게 다였던 것 같다. 내가 이상하다는 생각을 하게했다. 남들과 다르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었다. 주변에서 듣는 이야기 때문만은 아니지만 나도 내 스스로가 평범한 생각을 하며 사는 사람같진 않았다. 환청이 들리고 환시가 생기는 등 이런 것들이 평범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나는 극심한 우울에 빠져 허우적 대면서도 내 자신을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능력이 있었던 것이다.
한 날 의사한테 물어본 적이 있다. “우울증은 그냥 마음의 감기라고 하는데 저도 금방 나을 수 있겟죠?” 하지만 돌아온 의사의 답변은 긍정적이지 않았다. “아파온 시간이 있는데 그 시간의 두 배쯤은 더 걸릴 거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의사는 부정적인 말을 내뱉었다. 의사는 보통 “살 수 있습니다. 긍정적으로 생각하십시오. 잘 이겨낼 수 있습니다.” 이런 말을 하는 드라마 대사와는 전혀 달랐다. 아팠던 시간 만큼의 두 배는 걸린다라. 나는 어른이 되고서야 알았다. 소아우울증을 앓았다는 사실을. 그렇다면 나느 15년이 아팠는데 30년은 이 약을 먹고 병원을 다니면서 치료 받아야 하고 그렇다면 나는 평생 우울증에 빠진 사람으로 살아야 한다는 말인가. 그저 그런 마음의 감기란 웃긴 말이다. 내 마음을 감기에 빗대어 보려고 노력했지만 내 무의식에는 감기가 아니라는 생각이 틀어박혀 있다. 내 무의식조차 이런 나를 의심하는데 어떻게 우울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오늘도 마치 내가 죽기를 바라는 것처럼 하루를 살았다. 마음의 감기는 우울에 대해 정말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이 지어낸 말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