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동안 여행메이트가 친동생이었던 건에 대하여

여행메이트 Lv.0 ~ 100까지 경험가능

by 방망디

나는 지금 베트남에 있다. 흔히들 경기도 다낭시라고 불리는 베트남 중부 다낭에서 차로 40분 거리에 있는 작은 해안마을인 '호이안'에 있다. 이번 여행은 오랜만에 동생과 단둘이 함께한 여행이고, 약 두 달간의 여행이 예정되어 있다. 두 달 동안 우리는 베트남을 포함하여 동남아 구석구석을 느긋하게 돌아볼 것 같다.


31살 시작한 동남아 일주는 10년 전에 처음으로 배낭여행을 떠나고 싶다고 생각한 곳이었다. 21살의 어느 날 집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서 부모님의 힘없이 자유롭게 여행하고 싶었다. 엄마아빠가 내게 만들어준 역할, 친구들 사이에서의 나의 역할 그리고 나조차 모르고 있었던 '나의 역할'들에서 벗어나 그저 자유롭고 또 자유롭게 여행하고 싶었다. 자유로운 여행이란 명목에서 '동남아 일주'는 꽤 낭만적이었다. 다른 여행지와 비교해 비교적 저렴한 동남아 물가는 주머니사정이 가벼운 대학생에게 딱이었으므로.


하지만 삶이라는 것이 계획대로만 되는 것은 아니었다. 동남아 여행으로 시작한 장기여행 준비가 어느 날 갑자기 산티아고 순례길로 바뀌었고 그 여정에서 갑자기 여행메이트로 친동생이 끼어들게 되었다. 그 당시에는 여행메이트로 동생이 족족 끼어버리는 것에 꽤(많이) 열이 받았지만 이제는 동생과 함께 여행하는 것이 몹시 자연스럽다.


10년 동안 동생과 함께 여행하며 우리는 많은 것들을 서로에게 맞춰가며 익숙해지고 있었다. (생각해 보면 나는 동생과 방을 5년이나 같이 썼는데 맞지 않는 것도 웃기긴 하다.) 이렇게 고요하고 서로를 배려하는 여행이 되기까지 우리는 정말 많은 시행착오와 주먹다짐(주로 나의 일방적인), 말싸움, 눈치싸움을 비롯한 전쟁이란 전쟁을 끝없이 겪었다.

도시 전체가 로맨틱하고 낭만적이라고 하는 파리에서도 우리는 싸웠다. 그것도 파리의 한 여름날 루브르박물관 앞에 있는 놀이동산에서 대관람차를 타면서 말이다. 아주 아주 아주 아주 대판 싸웠고, 우리 둘 사이에는 험악하고도 냉랭한 기류가 이어졌다. 관람차를 타기 전 즐겁게 서로 의기투합하여 관람차를 보자고 결정해 놓고, 관람차 안에서 동생과 대판 싸우고(아주 사소한 것이었다. 하지만 나는 동생이 잘못했다고 생각한다. 아직도ㅋㅋ) 그 맹랑한 분위기를 이어갔다. 그런데 또 한시가도 안되어서 화했다. 화해라는 말도 우습다. 서로 여행이라는 전쟁 속에서 의기투합한 것뿐.


그다음으로 기억에 남는 것은 처음 오사카를 여행했을 때였다. '내 말이 옳아'병에 걸린 나는 동생의 말은 무조건 '그건 아니야'라고 말한다. 마치, 강아지나 고양이를 키우는 사람들이 집에 아무 일도 없으면 일단 '안돼! 이리 와'라고 말하는 것처럼 나는 동생의 의견을 제시할 때마다 '아니야.'로 시작하곤 했다.


공항버스를 타고 교토역에서 내려 숙소를 이동해야 할 때였다. 우리는 겨울옷이 가득 담긴 캐리어를 각각 끌고서 늦은 밤 숙소를 이동하고 있었다. 우리가 가야 할 숙소는 우리가 있는 곳 기준으로 정반대 편에 위치해 있었다. 늦은 밤이 이었고 길에는 아무도 없었다. 구글맵 하나의 의지하여 길을 걷고 있는데 교토역을 지나가야 하는데 교토역 1층에서는 도저히 가로지르는 길이 나타나지 않았다. 그렇다고 불이 다 꺼진 밤, 2층으로 올라가는 것도 무서웠고 당시에 내 생각으로는 '교토역이 문을 닫았으니 2층도 못 다니게 막아뒀을 것'이라고 지레 짐작했던 것 같다. 한참을 교토역에서 서성거리고 있을 때 동생이 말했다.


"언니, 2층으로 올라가면 안 돼?"


나는 그 말을 듣고 이렇게 대답했다. "아니야! 거기 길 없어!!"라고.


적어도 10분은 더 교토역에서 헤매고 난 뒤에야 동생의 말을 조금은 들어주었고, 그 뒤에는 웃기게도 동생의 말대로 반대편역으로 넘어갈 수 있는 통로가 있었다. 늦은 밤, 교토역에서 적어도 30분은 헤매었던 게 무색해졌다. 적어도 동생의 말을 듣고 한 번쯤은 "그래! 한번 해보자"라고 말을 했다면 그날 우리는 숙소에 조금 빨리 들어갔었을지도 모른다.

10년 정도 함께 여행하다 보니 이제는 서로가 서로를 너무 잘 안다. 서로의 분노게이지가 어느 정도까지 차고 있는지 시시각각으로 확인할 수 있다. 때로는 내가 동생의 분노를 받아주고, 동생 역시 내 분노를 받아준다. 반대로 나도 동생의 도움으로 편안하게 여행하기도 하고, 동생 역시 나와 함께하며 편하게 여행하기도 한다.


그래서 그런지 우리는 여행을 갈 때 서로를 떼 놓을 수 없다. 각자가 친구와 여행을 다녀오고 난 뒤에는 꼭 이렇게 말한다.


"거봐, 넌 언니(동생)랑 여행가야 편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