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의 즐거움을 음식에 몰빵한 사람

숙소비는 점점 저렴해지지만 식비는 점점 올라가고 있다.

by 방망디

1월 1일부터 동생과 함께 베트남여행을 하고 있다. 아무런 계획이 없는 이번 여행은 놀랍게도 아무 계획이 없다. 어느 정도 계획이 없었냐면, 여행 일주일 전에 비행기티켓을 샀고, 비행기 출발 몇 시간을 앞두고 호이안에서 머물 숙소를 예약했다. 우리의 여행에 단 하나의 계획이 있다면 최소한 40일 정도를 여행을 한 뒤 한국으로 돌아가는 것이 목표라면 목표이다.


정해진 여행기간은 없지만 정해진 여행예산은 있는 이번 여행에서 제1순위로 고려되는 것은 바로 '돈'이다. 나와 동생 누구도 '돈'을 우선순위라고 말하지는 않았지만 다년간 함께한 여행 덕분인지 암묵적으로 고를 수 있는 선택지 중에 비교적 저렴한 것을 고르고 있다. 가령 마사지가 받고 싶다면 60분 코스와 90분 코스 중에서 조금 더 저렴한 60분 코스를 고르거나, 전신마사지와 풋마사지 중에서 풋마사지를 고르는 식이었다.


여행 20일 차 소비 밸런스가 아주 크게 붕괴되었다는 것을 느꼈다. 우리의 암묵적인 룰은 여행기간이 늘어나면 늘어날수록 특이한 양상을 보이고 있는데, 이 부분이 이번 여행의 큰 웃음포인트이다. 돈을 소비하는 곳이 곳 그 사람의 취향을 보여주는 것이 분명한 것 같다고나 할까. 그런데 이제 자매의 공통취향을 곁들인.


대쪽 같은 우리의 취향은 한마디로 말해서 '먹는 데는 돈 안 아낀다.'라고 말할 수 있다. 2명이서 여행하지만 메뉴는 3개를 주문하거나 비싼 음식은 턱턱 먹자고 말하지만 우리는 최대한 걸어서 다니고, 적당히 잠을 잘 수 있는 곳에서 잠을 자는 것만으로도 만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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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낭에 머물고 있는 우리는 계속해서 가성비를 만족하는 숙소를 찾아 이동하고 있다. 약 10일 정도 다낭에 있으면서 벌써 숙소만 4번째 이동하고 있다. (같은 기간을 여행한 호이안에서는 단 1번만 숙소를 바꿨다.) 숙소를 옮긴 이유는 저마다 다르다. 첫 다낭 숙소를 골랐던 이유는 '한국에서 가져온 한국라면과 햇반을 먹고 싶어서 주방이 있는 아파트먼트'를 예약했다. 간이주방이 있었지만 냄비 등 주방도구가 없기도 했고, 그간 입었던 옷들을 세탁해야 해서 다음 숙소로 옮겼다. 두 번째 숙소는 '세탁기의 유무'를 확인하여 옮겼는데 웃기게도 건조기능이 없어서 세탁기를 쓸 일이 없었다. 숙소에 바랐던 '주방이용'과 '세탁기사용'이 죄다 실패로 돌아간 이후로 우리는 숙소에 대한 희망을 버렸고 평점이 좋은 호텔 중에 가장 저렴한 숙소로 이동했다.


숙소를 옮기자마자 동생은 구글지도를 보더니 다음 숙소 후보리스트를 몇 개를 카카오톡으로 보내줬다. 우연히 구글지도를 보니 마케비치 쪽으로 넘어오니까 더 저렴한 숙소가 많아서 옮기고 싶으면 옮길 수 있다고 했다. 동생에게 '네가 원하면 다음 숙소를 바꿔도 된다'라고 말을 하니 동생은 바로 다음 숙소를 예약했고 크리스마스에 산타에게 원하는 것을 선물 받은 아이처럼 행복하게 웃으면서 이렇게 말했다.


"언니! 다음 숙소는 지금 숙소랑 컨디션도 비슷한데, 10만 동이나 저렴해!"


동생은 다낭에서 머물 더 저렴한 숙소를 구하고선 지구를 구한 용사처럼 행복해했고 의기양양거렸다. 그리고선 한 손을 쫙 펼치면서 무려 5천 원이나 아꼈다고 자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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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생의 폭풍 검색 덕분에 숙소비에 무려 10만 동(즉, 5천 원)을 아낀 우리는 기세를 몰아서 저녁을 먹을 식당을 알아봤다. 기껏 다낭까지 여행을 와서 실제로 돌아다니기는커녕 구글지도로 다낭 음식점을 여행을 하고 있을 때 '프렌치 레스토랑'이 눈에 들어왔다. 마침 오일파스타가 먹고 싶었다면서 식당을 확인해 보니 그곳은 무려 다낭에서 디너코스를 먹을 수 있는 고급식당 중 한 곳이었다. 저녁 한 끼 식사에 한 사람당 100만 동은 기본인 고급식당이었다. 잠깐 고민을 하다가 언제 또 프렌치 코스요리를 먹어 볼 수 있을까 싶어서 동생에게 '다낭에게 프렌치 코스요리를 먹을 수 있는 곳이 있는데, 이곳에서 밥을 먹고 싶다'고 말을 했다. 물론 한 끼 식사에 100만 동 이상은 줘야 한다는 것을 포함해서 말이다. 동생은 나의 제안을 듣고 아주 심플하게 말했다.


"언니 먹고 싶으면 예약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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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쾌한 동생 덕분에 바로 당일 저녁시간을 예약했고, 예약한 식당에서 고급진 코스요리와 와인 한 잔을 곁들여 기분 좋게 식사를 마쳤다. 와인 한 잔을 마시고 나니 딱 기분이 좋을 정도 텐션이 올랐다. 알딸딸한 정신으로 오늘 하루를 생각해보니 참 웃겼다. 아침부터 가성비에 미친 것처럼 더 저렴한 숙소를 예약하고서 돈을 아꼈다고 좋아했으면서 저녁은 가성비와 전혀 상관없이 밥을 먹은 일이 시트콤처럼 느껴지면서 웃음이 미칠 듯이 흘러나왔다.


"민정아. 우리 저녁값으로 다음 숙소 6일은 더 잘 수 있어. 우리 진짜 먹는 거에 진심인가 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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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먹는 것 외에는 돈을 지독히도 아끼므로 저녁 먹은 식당에서 숙소까지 약 30분은 걸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