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 이유 없이 여행 갈 수 없나요?

여행을 가는 것에 꼭 이유를 둬야 하는 걸까.

by 방망디

동생과 긴 여행을 떠나기 전 엄마는 내게 물었다.

"여행 가서 뭐 하려고, 왜 여행 가는 거야?"


동생과 약속한 기나긴 여행을 떠나기 위해 회사를 그만둘 때도 회사 사람들이 내게 물었다.

"회사 그만두고 뭐 하려고. 거기에 가서 뭐 하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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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을 떠나기 전까지 정말 많은 질문들을 받았다. '왜 떠나니, 떠나서 뭐 하니, 여행지에 가면 무엇을 할 생각이니' 등등 다들 여행을 가면 그곳에서 무언가를 한다는 것을 가정을 하고 질문을 한다. 사람들이 내게 질문할 때, 솔직하게 말해보기도 하고 거창한 목표가 있는 것처럼 말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 어떤 답도 '회사를 그만두고 여행을 떠난다'는 전제조건을 이해되기 충분하지 않았나 보다. 대답을 들은 그들의 얼굴 표정에는 1%의 의문이 남아있었다.


여행을 그냥 떠나면 안 되는 걸까, 어떠한 목적과 이유가 있어야 떠날 수 있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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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십 대 초반에는 나 역시 여행을 떠나기 위해서는 동기, 이유, 목적이 있어야 한다고 믿었다. 여행을 가야 하는 거창하고 대단한 이유가 말이다. 내가 1년이란 긴 시간 동안 십시일반 모은 돈으로 겨우겨우 떠난 여행을 허투루 낭비하면 안 될 것 같다는 생각이 있어 그랬다. 귀하디 귀한, 소중한 이 기회를 아무것도 남기지(배우지) 못하고 한국으로 돌아오면 안 될 것 같았다.


그런 의미에서 내게 여행은 여행이라기보단 '탐험'에 가까웠다. 삶 속 보석을 발견하는 탐험을 떠난 것이다. 아주 오래전 대항해시대 탐험가들이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왕족과 귀족들의 수많은 후원과 지지를 받고 떠난 여정에서 신대륙을 발견하고 수많은 금은보화와 값이 나가는 향신료, 차, 숨겨진 비밀을 찾아 의기양양하게 고국으로 귀향한 탐험가의 마음과 신대륙은커녕 후원받은 모든 것들을 험한 바다에 뿌려버리고 혈혈단신으로 겨우겨우 고향에 도착한 탐험가의 마음은 전혀 다를 테니 말이다.


누구나 흔하게 떠나는 가볍기 가벼운 여행이라고 생각했지만, 어쩌면 여행이라고 가장한 삶의 탐험을 떠났던 것과 마찬가지였다. 내 여행의 가장 첫 번째 목표가 있다면 그것은 삶에서 중요하게 여길 수 있는 중요한 단서를 찾는 것이었다. 흔히 말하는 인생의 터닝포인트, 전환점, 삶을 뒤흔들만한 중요한 생각을 여행을 통해서 얻을 수 있다고 믿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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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날 수 없던 고등학교 시절 수없이 읽었던 여행에세이에 나왔던 여행 판타지를 나도 경험하고 싶어서 떠났다. 너무나 찾고 싶은 답을 찾아 돌아다녔다. 매일 반복되는 고루한 생활에서는 발견하지 못할 귀한 깨달음을 찾고 싶어 떠나고 돌아오고, 또 떠나고 다시 돌아오고를 반복했다. 10년의 시간 동안 여전히 여행을 통한 위대한 발견은 여전히 물음표였고, 여행은 반복되었다.


이 무한 굴레 속에서 내가 알게 된 것은 여행에서 '삶을 뒤흔들만한 터닝포인트'가 찾아오지 않는다는 사실이었고, 여행이 꼭 이유가 있어야만 떠날 수 있는 건 아니라는 것이었다. 인생이란 끝없는 모험에서 소중한 자원(시간, 돈)을 가득 채운 배가 때로는 아무런 이유 없이 항해해도 괜찮다는 것을 알았다. 모든 것에 꼭 이유와 목적, 의도가 필요한 것은 아니라는 걸, 여행을 떠나기 시작한 10년 만에 알게 되었다.


하고 싶은 일에 꼭 숭고하고, 납득가능한 이유가 있어야 하는 것은 아니라는 걸 이제야 알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