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심 그거 어떻게 버리는 거죠?
여행 10년 차, 이제 나는 여행 베테랑이라고 말하는 것에 부끄러움이 없다. 2박 3일 짧은 여행은 출발하기 한 시간 전에 짐을 싸도 괜찮았고, 장기여행이라고 다를 것도 없다. 이미 나는 몇 번의 장기여행 경험이 있기 때문에, 여행에서 필요한 물건과 짐은 그 누구보다 잘 챙길 자신이 있었다. 특히나 산티아고 순례길의 경험 덕분에 나는 스스로 여행에서만큼은 꽤 미니멀 라이프를 살고 있다고 생각했었다.
바로 얼마 전까지.
동생과 동남아 장기여행을 떠나온 지금 나의 짐은 포화상태, 맥시멀 리스트 그 자체이다. 노트북에, 아이패드는 물론이고 여유로운 여행자의 필수품이라며 '종이책'까지 챙겨 왔다. 또, 여행지에서 이쁘게 입을 옷, 동남아에 가서 요가도 야무지게 하겠다고 챙겨 온 요가매트와 여행일상을 담겠다고 챙겨 온 카메라, 고프로는 물론이고 매일 아침 운세를 점쳐보겠다며 오라클카드도 챙겨 왔다. 이렇게만 챙겼으면 말을 안 하겠다. 심지어 첫 여행지인 다낭은 겨울이란 말에 입고 있던 겨울외투는 잊고 두꺼운 카디건도 하나 더 넣어 챙겨 왔다. 이렇게 이고 지고 넣어온 나의 짐은 노트북과 아이패드를 빼더라도 11KG에 육박했다.
10KG도 아니고 무려 11KG라니. 산티아고 순례길을 걸을 때 8KG 밖에 안 나온다고 나도 이제 미니멀리스트의 삶을 살게 됐다고 자신만만했던 게 엊그제처럼 나의 짐은 순식간에 늘어나 10KG도 넘어버렸다. 심지어 노트북과 아이패드를 배낭에 넣으면 14KG는 훌쩍 넘는다. 이제는 내가 짐을 지는 것인지, 짐이 나를 지고 있는 건지 잊어버릴 정도가 되었다.
챙겨 온 짐 중에 사연 없는 짐이 없다. 노트북에 일기를 쓰고 있으면서 일기는 손맛이라며 못 버리는 일기장, 한국에서 새로 산 책 두 권(다 읽은 책은 내게 깊은 감명을 줬다고 한국에서 또 읽고 싶다며 버리지 못하고 있다.), 습관적으로 챙겨 왔지만 메모리카드를 챙겨 오지 않아 기능하지 못하는 카메라와 고프로, 본체는 챙겨 왔지만 연결잭은 챙겨 오지 않아 쓸모없는 외장하드, 이쁘게 꾸미고 다닐 거라고 챙겨 온 이쁜 원피스는 빛도 못 본채 가방에 봉인되어 있다. 심지어 다낭은 겨울이라 춥다며 챙겨 온 겨울 외투는 한국에서 입고 온 긴팔로 충분해 꺼내지도 못했다. 이것뿐이면 말도 안 하겠다. 언젠가는, 곧이라는 수많은 변명 속에 사용하지 못한 요가타월까지. 나의 짐들은 가방 속에서 봉인되어 한 번도 사용하지 않고 있다.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는 순례자들 사이에서 유명한 말이 있다. 바로, 순례길의 짐이 곧 인생이 짐이라는 말.
순례길을 걸을 때, 매일 오후 챙겨 온 짐을 꺼내고 다음날 아침 짐을 다시 챙기는 일들을 반복한다. 순례길에서 보낸 시간이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매일 반복하는 짐을 풀고 챙기는 시간이 점점 짧아진다. 배낭을 싸는 시간만 짧아지는 건 아니다. 때론 챙겨운 짐의 무게 역시 줄기도 한다, 매일매일 무겁게 이고 온 짐 중에서 필요 없는 것들을 어떻게든 하나라도 더 버리고, 줄이기 위해서 고민을 한다. 그렇게 무겁디 무거웠던 생장의 가방에서 점점 졸업하게 된다.
이번 장기여행 역시 순례길과 마찬가지의 반복을 하고 있다. 한국에서 욕심에 챙겨 온 짐들이 수 없이 거듭한 숙소이동과 도시이동 사이사이에 점점 비워지고 또 비워지고 있다. 여행지에서 이쁘게 입겠다고 챙겨 온 옷은 사실 락스가 튀어 얼룩덜룩한 옷이었고 버려졌고, 한국에서 이고 지고 챙겨 온 8개의 라면은 이곳 베트남에서도 다 구할 수 있는 라면을 들고 왔다는 자책과 함께 위로 들어갔다. 한국에서 뚜껑만 열어놓고 안 쓰던 선크림들은 억척스럽게 몸 이곳저곳에 바르며 기어코 비워냈고, 혹시 몰라 챙겨 온 두 개의 샘플 샴푸는 숙소에 비치된 샴푸를 모른척하며 겨우 한통 비워냈다. 쓰지 않는 일기장은 적어둔 일기만 뜯어내고 버려졌다.
끊임없이 무언가를 어떻게든 더 비워낼 수 있는지, 버릴 수 있는 게 어떤 것이 있는지 매일 고민하고 또 고민하고 있다. 내가 한국에서 챙겨 온 욕심이 또 뭐가 남아있는지 고민하고, 또 고민하며 말이다.
물론 가장 중요한 것은 무언가를 사지 않는 것이지만, 소비를 멈추는 것은 도저히 할 수가 없다. 호이안에서 사서 호찌민까지 굳이 굳이 챙겨 온 대왕 나무젓가락, 종아리 마사지할 때 참 유용하단 말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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