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롭고 싶어서 떠난다는 핑계

무엇으로부터 자유롭고 싶었을까.

by 방망디

무이네에 있다. 이곳에 있으면서 바다에서 헤엄쳐 다니다 겨우 땅을 밟은 육지생물이 된 기분이다. 그동안은 아득바득 헤엄쳐 수면 위로 겨우 올라와 입만 뻐끔뻐끔 내밀어 폐포에 산소 한 줌을 들이마시고 다시 바닷속에 잠겨 살고 있었다면 무이네에 도착하고 난 뒤에는 이 땅 위에 살아가는 사람처럼 자유롭게 숨을 들이마시고 내쉴 수 있게 되었다. 머나먼 타지에서 이제야 살아있음을 알게 되다니. 참 웃기다.


무이네는 나에게 있어 조금 더 철학적이고 원초적인 질문들을 만들어내는 곳인 것 같다. 마음이 풍요로우니 그간은 하지 못했던 삶에 대한 질문들이 마구 떠오르고 사라진다. 그중 유독 기억에 남는 것은 '나는 왜 자유로움에 갈망하는가?'였다. '자유로움'은 내게 있어 큰 욕구 중에 하나였다. 나는 언제나 자유롭고 싶었다. 가족에서, 회사에서, 친구들 사이에서 그 어떤 역할과 책임에서 자유로워지고 싶은 욕구가 항상 있었다.


고등학교 때는 학교에 갇혀있는 게 못내 억울하여 야자가 시작하기 전 저녁시간 짧은 틈을 내어 집에 다녀오곤 했었고, 회사를 다니면서 내 시간이 없다고 느껴지기 시작하며 삶과 회사에 의욕이 사라졌다. 때때로 나는 유혹과 즐거움을 찾아다니는 불나방 같다고 생각했지만 진실로 내가 쫓아다닌 것은 '자유' 그 자체였다. 나는 언제나 틈과 틈사이에 놓여있는 자유로움을 찾아 이리저리 변화를 거듭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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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은 책임져야 하는 성인이 된 뒤에도 자유를 쫒은 대가는 꽤 혹독해서 나는 언제나 '자유를 찾아 떠나는 것'에 대한 이유를 만들어야 했다. 때론 그것이 우울증일 때도 있었고, 꿈일 때도 있었고, 열망과 희망일 때도 있었다. 그렇게 자유가 타버린 뒤에 남은 잿더미에는 한국사회의 표준에 맞추지 못해 살고 있다는 자책뿐이었다. 남들이 안정을 바라고 자리에 있을 때 뒤돌아 떠나온 나는 언제나 가냘픈 모래성 위에 간신히 버티고 있다는 느낌뿐이었다.


그래서 힘들었던 것 같다. 내 인생이 모래성 위에 쌓여있다고 여겨져서. 남들의 기준에 따라 살지 못하고, 남들만큼 성취하지 못하고, 남들만큼 이뤄낸 것이 없는 나는 아이러니하게도 아무것도 없기에 모든 것을 버리고 떠날 수 있었다.


무이네에 있으면서 이 생각의 생각을 거듭해서 돌이켜봤던 것 같다. 나는 왜, 무엇을 위해서 그렇게 자유로움을 찾아 갈망하고 떠났던 것일지. 허상과 같은 자유를 찾아 나는 왜 모든 것을 버리고 떠났던 것인지. 왜 나는 그렇게 자유롭고 싶어 하는데, 그 무엇에도 자유롭지 못한 지 스스로에게 질문했다.


무이네를 떠나 호찌민으로 가는 버스에 올라 나름대로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찾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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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나는 어린 시절 자유롭지 못했다고 믿고 있는 과거로부터 도망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세상을 향해, 부모님을 향해, 나 스스로를 향해 '어린 초등학생인 나도 동생들로부터 멀어져, 친구들과 편하게 놀고 싶었는지 아냐며. 어디를 갈 때마다 동생을 데리고 가야 했던 그 시간들이 얼마나 서러웠는지 아냐고'며 자유롭지 못했던 어린 날들에 대해서 보상받고 싶어 자유롭고 싶었던 것 같다.


초등학교 1학년에 입학한 어린 동생의 작은 보호자가 되어야 했던 어린 10살의 나에게 위로와 보상이 긴 시간이 흘러 이제야 배달되고 있나 보다. 무의식에 꽁꽁 숨어있던 어린 나에게, 훌쩍 커버린 내 '자유'를 선물할 수 있게 되어 떠나고 또 떠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