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왜 욕망을 시작도 전에 내려놓았는가
요 며칠 잠시 멈춰 서서 스스로를 들여다보는 시간을 가졌다. 그동안 잘 보지 못하고 지나쳤던 내 마음의 결을 더듬다 보니 한 가지 오래된 진실과 마주하게 되었다. [바로 나는 ‘포기’에 익숙한 사람이라는 것.] 스스로를 욕심이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해 왔다. 하지만 조금 더 깊이 들어가 보니 그것은 욕심이 없어서라기보다 욕구가 싹트는 순간 너무 빨리 좌절되고 금세 포기로 변해버리는 익숙한 방식 때문이었다.
내 안에는 욕구를 가지는 것 자체를 미리 막아버리는 조용한 패턴이 있다.
살아오면서 겪어온 여러 경험들과 스스로 만들어온 제약들 때문에 너무 자연스럽게 무언가를 선택함에 있어 ‘포기’를 고르는 것이 익숙했다. 어떤 욕구가 일어나려고 해도 그것이 현실이 되기 전에 이미 마음속에서 문이 닫혀버리곤 했다.
최근 나의 주요 화두는 삶에 즐거움을 초대하는 것이었다. 스스로에게 물었다. “나는 언제 행복했지?” 질문을 떠올리며 나는 조금 놀랐다. 스스로가 ‘행복하기를 바라며 무엇인가를 선택한 순간’이 생각보다 많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삶에 행복한 순간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오히려 소소하고 따뜻한 순간들은 많았다. 하지만 그 기쁨들은 마치 예상하지 못한 어느 날 스쳐 지나가는 바람처럼 찾아왔다가 사라지는 종류였고 내가 기쁨을 향해 움직인 결과로 찾아온 순간들은 아니었다.
예를 들어 싱잉볼을 배우기로 했을 때 나는 싱잉볼에 대한 순수한 즐거움보다 배움의 결과로 얻게 될 어떤 유익함을 먼저 떠올렸다. 책을 읽을 때도, 요리를 배울 때도 마찬가지였다. 행위 자체의 재미보다는, 그로 인해 얻을 ‘결과’가 나를 움직였다.
그러다 문득 깨달았다. 정말 순수한 기쁨에서 시작된 동기가 있었던가?
이 질문을 붙잡고 조금 더 들여다보니 애초에 나는 욕구를 갖는 일 자체를 오랫동안 포기해 왔다는 걸 알았다. 욕구를 그대로 인정하고 현실로 옮기는 일은 내게 늘 만만치 않았다. 시작도 하기 전에 생각해야 할 것들이 너무 많았고 고려해야 할 감정들도 스스로 감당하기엔 번잡했다.
욕구는 늘 다양한 감정을 데리고 들어온다.
설렘, 기쁨, 기대, 불안, 질투, 시기, 열정, 조급함.
그 모든 감정의 소란을 마주하는 일이 나에겐 벅찼다.
그래서였을까.
욕구를 가지는 것도,
욕구를 다스리는 일도,
욕구를 실현하기 위해 움직이는 일도,
그리고 그것이 충족된 뒤의 마음까지도.
모든 과정이 내게 너무 지치는 일이었다.
욕구와 삶이 조화롭게 어우러지는 방식을 배워본 적이 거의 없었는지도 모른다. 욕구가 일어나면 감정이 함께 요동쳤고 그 감정에 휩쓸리면 곧 나 자신을 잃어버리곤 했다. 감정과 욕구를 분리해 관찰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걸 알면서도 막상 욕구가 다가오면 나는 늘 그 흐름 속으로 깊숙이 잠겨버렸다.
지금 이 깨달음은 어쩌면 새로운 출발점일지도 모른다. ‘나는 왜 욕구를 포기하며 살아왔을까?’라는 질문에서 시작된 여정이 이제는 ‘욕구를 이루는 것은 즐거운 일’이라고 믿으며 조금씩 나아가는 중이다.
그 인정 위에서 비로소 순수한 즐거움이 다시 내 삶에 들어올 자리가 만들어지고 있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