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완벽한 여행메이트

혼자가면 생각나고, 둘이가면 떨어지고 싶은 메이트

by 방망디

대학교에 입학한 나는 대학생활의 로망처럼 여겨지던 ‘해외여행’을 꼭 한 번 해보고 싶었다. 그러나 친구들에게 함께 가자고 말할 만큼의 용기는 없었다. 해외여행은 생각보다 많은 돈이 드는 일이었고 그 부담을 누군가와 나누자고 말하는 일이 괜히 조심스러웠다. 그렇게 첫 해외여행은 자연스럽게 혼자 떠나는 여행으로 결정됐다.


어느 날 가족이 모인 저녁 식사 자리에서 그 사실을 통보하듯 말했다. 이번 겨울방학에는 혼자 일본에 다녀올 거라고. 엄마는 여행을 가는 것 자체는 반가워했지만 태어나 한 번도 해외에 나가본 적 없는 딸이 혼자 떠난다는 사실이 마음에 걸렸던 것 같다. 여행가는 것은 찬성했지만 대신 동생이 함께 가면 좋겠다는 말을 덧붙였다. 혼자보단 둘이 함께 가는 것이 조금 더 낫지 않겠냐면서 말이다.


그렇게 나의 첫 해외여행의 동반자는 내가 예상하지 못한 방향으로 정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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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동생과 떠난 여행에서 우리는 정말 많이 싸웠다.


낯선 나라, 낯선 언어, 길을 잃을지 모른다는 긴장감 위에 여행 속에서 드러나는 서로의 차이를 받아들일 여유가 없었다. 우리는 가족이었지만 친밀하지 않았고 어느 순간부터 각자의 세계에 머문 채 살아가고 있었다. 서로를 잘 안다고 말하기에는 이미 꽤 멀리 떨어져 있었다.


첫 여행 내내 우리는 싸웠다가 화해했다. 청수사를 구경하고 내려오다 지금은 기억도 나지 않는 이유로 언성을 높였고 버스에 오르자마자 서로 말을 끊었다. 그러다 저녁 쇼핑을 하며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다시 나란히 걸었다. 쇼핑 도중 서로의 취향이 다르다는 사실에 다시 기분이 상해 침묵이 길어지기도 했고 그날 밤 함께 사용할 입욕제를 고르며 또다시 자연스럽게 화해했다.


싸움과 화해가 특별한 사건처럼 느껴지지 않을 만큼 반복되던 여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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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의 마지막 날 밤 숙소에 누워 영상을 하나 찍었다. 당시에는 무언가를 기록할 힘조차 없어서 글 대신 영상으로 하루를 남겼다.


“일본 여행 마지막 날. 내일이면 집에 돌아간다.”
“다시는 동생이랑 여행하지 않을 것이다. 절대, 절대, 절대.”
“동생과 나는 절대로 맞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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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다짐은 생각보다 오래가지 않았다. 아니, 슬프게도 10년째 지켜지지 않고 있다.


그 다음 여행도 동생과 함께였고, 산티아고 순례길에서도 동생은 내 옆에 있었다. 이후 이어진 수많은 여행에서도 동생은 늘 같은 자리에 있었다. 이제는 여행을 간다고 할 때 동생이 없으면 오히려 어딘가 비어 있는 듯한 기분이 들 정도가 되었다.


동생과 여행을 하면 내가 하는 일에 대해 굳이 설명할 필요가 없었다. 하고 싶은 것을 말하는 데에는 ‘그냥 하고 싶어’라는 말이면 충분했다.


베트남 시티에서 한 달을 보내다 문득 사막동네로 떠날 때도 “그냥 사막 가고 싶어”라는 이유면 충분했다. 길을 지나치다 스쳐 본 기념품을 사기 위해 근처 가게를 한 시간 넘게 돌아다닐 때도 “그거 사고 싶어”라는 말이면 됐다. 여행 중 생리 전 증후군으로 감정이 가라앉을 때도 자세한 이유를 설명하지 않고 “그냥 우울해”라고 말해도 괜찮았다.


동생은 사막이 보고 싶다는 말에 사막으로 가자고 했고 침대버스를 타보고 싶다는 말에 열두 시간, 열세 시간을 달리는 버스에도 함께 올랐다. 잠자리가 바뀌어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며 먼저 수면에 도움이 되는 차와 영양제를 찾아 사다 주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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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과 욕구를 쉽게 드러내지 못하는 내가 동생 앞에서는 긍정적인 감정이든 부정적인 감정이든 비교적 솔직해질 수 있었다. 동생은 그것들을 이해하려 애쓰기보다는 “언니가 그런 거라면 그런 거지.”라는 말로 내 감정과 욕구에 첨언하지 않았다.


지독하게 타인에게 솔직하지 못한 나와, 언니의 말을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릴 줄 아는 동생의 조합은 생각보다 오래 지속되었다. 어쩌면 우리는 서로를 깊이 이해해서가 아니라 굳이 이해하려 애쓰지 않아도 되는 사이였기 때문에 계속 같은 방향으로 여행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이제 나의 여행 옆자리에 동생이 있는 것이 어색하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