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앙마이 가는 야간기차에서 생긴 일

by 방망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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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콕에서 치앙마이를 이동하는 방법은 비행기, 기차, 버스 이렇게 세가지로 꼽을 수 있다. 나는 야간기차에 대한 낭만을 가지고 있었는데, 마침 방콕-치앙마이를 기차를 타고 갈 수 있다고 하길래 아묻따 기차여행하기로 했다. 찾아보니 기차편도 꽤 인기가 있어서 기차를 타고 이동할 사람들은 미리 예약하기를 추천하는 것 같았다.


태국으로 출발하기 3주 전에 공영철도 홈페이지에서 야간기차를 예약했다. 기차를 예약하는 과정도 조금 웃겼다. 일행인 Y님과 같은 객실에서 머물려고 구글미트로 만나 예약과정을 하나하나 확인하며 예약했지만 나는 결제단계에서 튕겨서 예약세팅이 초기화가 됐고 Y님은 무사히 결제가 완료됐다. 곧바로 예약을 진행하니까 똑같은 방법으로 예약을 하는데도 차량 넘버가 바뀌어 있었고 Y님이 예약한 칸으로 이동하는 방법도 찾을 수 없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예약 시에서 차량 넘버를 바꿀 수도 있을 것 같은데 아마도 내가 못 찾은듯하다.


함께 기차를 타지 못하는 것은 아쉬웠지만 나름대로 새로운 사람을 만날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했고, 같은 자리를 공유하게 될 메이트를 잘 만나기를 기도했다. 내 상상 속에 여행메이트는 태국인이거나 여행을 하는 젊은이였는데, 실제로 만난 여행메이트는 중국인아저씨(이하 A)였다. 예상과 전혀 다른 사람을 만나서 조금 당황했지만 어색하게 인사를 나눴다. 캐리어를 어디에 둘지 몰라하는 A에게 캐리어는 의자 밑 공간에 두면 된다고 말해주며 우리의 대화는 종료되었다.


침대기차는 기차가 떠난 뒤 1시간에서 1시간 반뒤에 침대로 변신시켜 준다고 하길래 어색함을 참을 수 없었던 나는 기차에서 먹으려고 산 간단한 간식을 먹고 있었다. 멍하니 노을을 보며 과자를 먹고 있으려니 A가 나에게 말을 걸었다. A는 모든 질문을 중국어로 했는데 다행히 바디랭귀지와 눈치가 있어서 어느 정도 의미는 통했다. 그의 몸짓과 뉘앙스를 봤을 때 어느 나라 사람이냐고 묻는 듯했다.


"타이완!? 타이완?"

"노. 코리아! 코리아"

"호리아? 코리아?"

"한궈러! 한궈!"


약간의 중국어로 나에게 급 친근감이 생겼는지 A는 캐리어에서 짐을 이것저것 꺼내기 시작했고 작은 책상 위에 차가 담긴 유리 텀블러 하나와 딱 보기에도 술처럼 보이는 병을 하나 꺼내셨다. 투명한 맥주병처럼 생긴 그 병은 한자로 '고량주'라고 적혀있었고 그는 '차이니즈 위스키'라며 병을 보여주었고 만국 공통어인 바디랭귀지를 시전 했다. A는 나를 한 번 가리킨 뒤, 벌컥벌컥 마시는 몸짓을 표했다. 알 거 다 아는, 술과 친해진 성인은 누구나 한눈에 알아볼 수 있는 '한 잔 해보겠냐'라고 묻는 뉘앙스였다.


몇 번의 권유에 술을 얻어먹게 되었다. 급하게 술을 나눔 받게 되어서 술을 받을 만한 통도 없었는데, A님이 마시고 있던 생수를 가르시면서 생수 뚜껑에 술을 따라주겠다고 하셨다. 다행히 그 생수병의 뚜껑은 높이가 아주 낮아한 모금도 담지 못할 크기였고 이 정도 양이면 보드카를 마셔도 별 문제없겠다는 생각이 들어 그에게 뚜껑을 건네주었다. A님은 아주 신중한 표정으로 병뚜껑에 술을 따르셨고 그렇게 난생처음으로 생수병뚜껑에 술을 마셨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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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잔으로는 따거의 마음을 담기 어려웠는지 그는 연신 한 잔 더 마시라고 권유를 했고 마침 평생의 소원을 이뤘다는 뽕과 야간열차의 침대객실이 주는 낭만에 빠져있던 나는 A님의 제안 역시 이 낭만을 더해주는 장치로 느껴져 알겠다고 고개를 끄덕였고, 다시 그는 세상에서 가장 신중한 표정으로 손톱만 한 잔에 보드카 한 잔을 더 따라주었다.


"지우 현 하오 허(술 맛있다.) 시에 시에!!(감사하다.)"


낭만을 완성시켜 준 A님에게 감사한 마음을 담아 '술이 맛있다'는 표현을 챗지피티에 물어보았고, 번역한 표현을 A님에게 보여드렸다. A님은 중국어의 화답에 감동했는지 갑자기 냅다 차가 담겨있던 텀블러를 비우고 오더니 빈 텀블러에 술을 콸콸콸 따르셨다.


50% 고량주를 물처럼 컵에 콸콸콸 따르던 A님은 컵의 절반 이상을 고량주를 채웠고 병에는 약 1/5 정도의 술이 남아있었다. '저 잔에 담긴 술을 갑자기 나에게 주는 건 아니지, 나는 그 정도로 술을 마시고 싶었던 것은 아닌데'하며 A의 행동을 지켜봤다. 다행히 고량주가 담긴 잔은 A님의 몫이었고 남은 고량주는 나에게 선물로 주셨다. 닫을 뚜껑도 없는 고량주를 선물 받은 나는 잠시 난감해하다가 마시던 물통에 보드카를 옮겨 담았고 고량주는 빈병이 되었다.


이제 우리 사이엔 아까와 같은 서먹함과 어색함은 많이 사라졌고 그 빈자리를 묘한 친근감이 대신 채워졌다. 나는 나대로 주변 지인들에게 태국에서 치앙마이 가는 야간기차에서 중국인 아저씨에게 술 얻어먹은 기묘한 상황을 전하기 바빴고, A님도 A님대로 자신이 만난 한국인에게 술을 나눠준 일을 전하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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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을 한통이나 비운 탓인지 화장실이 가고 싶어 진 나는 잠시 자리를 비웠고, 자리로 돌아가니 갈색 제복을 입은 태국인이 우리 자리 앞에 있었다. A님과 번역기로 이야기를 나누는 것 같았다. 제복 입은 사람과 이야기를 나누고 나니 A님은 빈 술병을 주섬주섬 다시 자신의 캐리어에 넣었다. 대충 눈치로 보건대, 술을 마시면 안 된다고 주의를 받은 듯했다.


A님에게 무슨 일이냐고 물어볼 시간도 없이 곧 승무원이 우리 자리에 찾아왔고 책자를 보여주며 2층침대를 펼치려고 하는데 괜찮냐고 물어보는 것 같았다. 아무 생각 없이 '괜찮다'라고 말하니, 승무원은 지체 없이 1층 의자를 침대로 만들고 천장에 접혀있던 2층 침대를 내려 자리를 세팅해 주셨다.


그렇게 완성된 2층 침대와 함께 우리의 소통의 창구는 차단이 되었고 짧은 만남이 종료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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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님이 술을 마시고 주의를 받은 이유가 궁금해서 1층 침대칸에 홀로 앉아 챗지피티와 함께 태국에서 기차를 탈 때 술을 마시면 안 되는 이유를 찾아보았다. 챗지피티의 말에 따르면 2024년 7월부터 태국 국영철도에서 술 판매 및 음주가 금지되었는데, 그 이유는 철도 직원이 술과 마약에 취한 상태에서 13세 소녀를 성폭행하고 살해한 사건이 발생했고 이로 인하여 기차 내 안전을 강화하기 위해서 음주가 전면 금지되었다고 한다.


만약 기차 내에서 술을 마시면 승무원에게 주의를 받는 가벼운 처벌로 끝날 수도 있지만 기차에서 내리게 된다거나 벌금(약 35만 원 정도라고 함)을 내야 하는 경우도 있다. 처벌의 경우는 당시의 상황과 승무원(혹은 다른 사람)의 재량에 의해서 달라질 수 있는 것 같다.


다행히 당시에 기차가 출발한 지 약 30분도 안 됐을 때 발각된 점, A님이 술을 따랐지만 술은 한 방울도 안 마셨던 점(술에 안 취했다는 점)을 참작하여 주의만 준 것으로 생각된다.


여기에서 웃긴 점은 술을 마시려고 고량주를 직접 들고 온 A님은 술 한잔 제대로 하지 못하고 술이 담긴 컵을 빼앗겼다는 점이고, 술을 마시고 싶었던 나는 A님 덕분에 원하던 술(맥주)은 아니지만 술을 마셨다는 점이랄까. 생각해 보니 2층침대 자리를 세팅할 때 모든 짐을 빼라고 말할 때, 선물 받은 보드카를 담았던 생수병은 A님이 챙겨가셨다. 그리고 그 뒤 그는 나에게 영영 그 병을 돌려주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