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하다는 믿음에서 벗어나기
나는 오랫동안 ‘사람에게 주어진 역할은 정해져 있다’고 믿었다. 이유는 알 수 없지만 내가 이 땅에 태어나며 이미 맡게 된 역할이 있다고 생각했다. 마치 사주팔자처럼.
누군가는 사주를 벗어나 살 수 있다고 말하고 또 다른 누군가는 결국 사람은 팔자대로 산다고 말한다. 나는 “인생은 스스로 개척하는 것”이라고 말했지만 마음 한편에서는 “사람은 결국 팔자대로 산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었다. 막상 사주나 점성학을 보면 지금의 내가 살아온 삶과 크게 다르지 않아 은연중에 더욱 믿게 되었다.
나에게 주어진 역할은 이랬다. 가난한 부모 밑에 태어난 첫째. 가족의 기대와 책임을 한몸에 짊어지고 있으며 억척스럽게 버티며 살아가는 ‘서민 1’의 삶. 내게 역할이 이미 정해져 있었기에 나에게 주어진 것 이상을 갖는 걸 어려워했다. 주어진 것에 만족하며 사는 것이 맞다고 믿었고 더 많은 것을 가지는 것은 나에게 허락되지 않은 일처럼 느껴졌다.
돈과 풍요, 성공을 향한 태도 역시 그랬다. 돈을 탐하는 것이 두려웠고 설령 기회가 주어져도 내 성향(역할) 상 어울리지 않는다면 그 기회를 가질 수 없는 사람이라고 여겼다. 나는 이 역할에 불만을 표하며 살았지만 내심 순응하며 살았다.
사실은 순응하지 않는 방법을 몰랐다.
내 안의 순종이 답답할 때도 있었지만 주어진 틀을 깨고 나가는 것은 몹시 불편했다. 그래서 나는 익숙한 자리에 머무르는 쪽을 선택했다. 가끔은 새로운 선택을 하며 나의 역할에 저항하기도 했다. 그때마다 마음속에서는 ‘너무 불안해. 다시 원래 자리로 돌아가는 게 좋을 것 같아. 내가 있던 자리에 머무는 것이 편해.’와 같은 생각이 끊이지 않았다.
이 믿음은 늘 나를 다시 제자리로 돌려놓았고 끝내 그 역할을 벗어나지 못했다.
그러던 어느 날, 나의 기반을 흔드는 문장을 발견했다.
“당신은 가난한 것이 아닙니다. 그저 가난한 상태를 경험하고 있을 뿐입니다.” 이 문장을 발견한 이후로 나는 스스로에게 질문하기 시작했다.
‘나는 정말 가난한 사람일까?’
‘가난은 변할 수 없는 것일까?’
‘나는 평생 이 상태에 머물러야 하는 걸까?’
그 질문들은 점점 하나의 질문으로 모였다.
‘나는 언제부터 내가 가난하다고 믿기 시작했을까?’
나는 스스로 판단하기도 전에 이미 ‘가난한 사람’으로 정의되어 있었다. 부모, 친척, 어른들의 말과 분위기 속에서 나는 아주 어린 시절부터 ‘가난한 자의 역할’을 부여받았다. 가난이 무엇인지 제대로 알기도 전에 궁핍, 궁상, 결핍, 체념, 생존의 두려움 같은 감정들이 먼저 내 안에 자리 잡았다.
스스로 자신을 ‘가난한 사람’으로 정의내렸다.
‘가난은 고정된 것이 아니라 상태일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들은 후 다른 시선으로 나의 삶을 바라보게 되었다.
'나는 정말 늘 가난했을까?'
분명 가난을 경험한 순간들도 있었다. 대학교 시절 지갑에 돈이 없어 학교에서 집까지 걸어간 날도 있었고, 점심 먹을 돈이 없어서 식사를 거른 적도 있었다. 때론, 가족에게 손을 벌리며 수치심을 느낀 적도 있었다.
하지만 그것이 전부는 아니었다.
나는 항상 꿈꾸던 여행을 자주 다녔다. 심지어 몇차례 오랫동안 꿈꾸던 장기 여행도 경험했다.
늘 풍요롭게 먹었고 할머니가 정성껏 길러주신 제철 채소를 자연스럽게 누리며 살았다.
좋아하는 물건들로 채워진 나만의 공간이 있었고 사계절 입을 옷들도 충분히 가지고 있었다.
나는 이미 많은 것을 가지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가난한 사람이다’라는 믿음은 내가 가진 모든 것을 초라하게 만들고 있었다.
우리 집은 가난하니까 백화점에서 장을 볼 수 없다고 생각했고,
나는 가난하니까 원하는 것을 마음껏 가질 수 없다고 여겼다.
가난해서 돈이 없으니 일해야 한다는 생각 속에서 일하는 것 자체를 괴롭게 느끼기도 했다.
내가 무의식적으로 ‘가난’을 이유로 내 삶의 가능성을 제한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았다.
이미 충분히 누리고 있으면서도 더 많은 기회와 기쁨을 스스로 차단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절절히 이해하게 되었다. 진심으로 나를 가난하게 만든 것은 환경이 아니라 ‘나는 가난한 사람이다’라는 내 안의 믿음이었다는 것을 마침내 깨달았다.
가난은 나의 정체성이 아니다. 그저 때때로 경험할 수 있는 하나의 상태일 뿐이다. 앞으로도 나는 가난을 경험할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이 나의 삶을 규정하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나는 계속해서 변화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나는 알고 있다.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 사람이 아니라 어떤 삶이든 선택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그러므로 무엇을 경험해도 이겨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