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만꺼 Jul 18. 2024

선양의 시시콜콜한 여행지 3

선양, 청더 여행지_장씨수부

장씨수부 가는 길


장씨수부는 선양고궁에서 걸어서 채 10분도 걸리지 않았다. 장씨 장군 집안의 저택이라는 의미의 장씨수부는 중국 근현대사의 거물 장쩌린과 그의 아들 장쉐량이 살았던 고택이다. 10년 전에 선양에서 한 달 정도 지냈을 때에는 장씨수부에 가보기는커녕 이런 곳이 있는지도 몰랐었는데, 아마도 중국 근현대사에 관심이 없었던 나의 무지함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요즘 선양을 방문하는 중국 여행객들 사이에선 장씨수부가 필수 여행지로 인기를 끌고 있다고 한다. 심지어 중국 여유국(관광청)에서도 AAAA급(4/5) 여행지로 분류하고 있다. 그냥 도심에 있는 여행지라 유명한 게 아닐까 예상되긴 하지만, 가보지 않고서는 진면목을 알기는 어려운 법. 기차 출발 전에 시간도 남은 김에 잠시 들려보기로 한다.


장쉐량 동상


입구에 들어서니 거대한 장쉐량 동상이 가장 먼저 눈에 띄었다. 장쉐량은 중국 근현대사에서 역사적 평가가 가장 극과 극으로 갈리는 인물 중에 하나이다. 중국 동북 지방의 군벌이었던 그는 국민당의 장제스, 공산당의 마오쩌둥과 함께 중국의 주요 정치세력 중 하나였다. 하지만 일본 관동군의 만주 진출(만주 사변)로 인해 대부분의 세력을 잃고 장제스(국민당) 밑으로 들어가게 된다. 장제스 휘하에서는 공산당을 토벌하는 역할을 맡았으나, 오히려 공산당과 같이 합작하여 일본에 대항해야 한다고 생각했던 그는 결국 쿠데타를 일으켜 장제스를 감금시키고 공산당과의 연대를 주장한다. 이것이 그 유명한 시안 사변이다. 시안 사변 이후 장쉐량의 뜻대로 국민당과 공산당은 합작을 하여 일본을 몰아내지만, 항일 과정에서 궤멸 직전의 공산당이 세력을 회복하였고 이어진 국공내전에서 전세가 역전되어 공산당이 국민당을 내쫓고 대륙을 장악하게 된다.



재미있는 점은 장쉐량은 공산당원이 아니라는 점이다. 심지어 국공내전 이후로도 장쉐량은 대만에 끌려가 1990년대까지 가택연금을 당하는 수모를 겪는다. 하지만 공산당 입장에서는 장쉐량이 시안사변을 일으킨 덕분에 전세를 뒤집을 수 있었기 때문에, 그를 항일 전쟁에 공헌한 애국자로 높게 평가하고 있다. 프로파간다에 진심인 중국에서 이렇게 큰 조각상을 세운 것만 봐도 장쉐량을 긍정적으로 보고 있다는 사실을 짐작할 수 있다.




장씨수부를 관람하기 위해서는 입장권이 필요하다. 장씨수부만 입장 가능한 표도 있지만, 약간의 돈을 더 내면 금융박물관을 함께 볼 수 있는 티켓도 판매하고 있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셋트 표를 사는 듯했지만, 나 같은 경우에는 금융박물관에 크게 흥미도 없었던 데다 시간도 여의치 않아서 장씨수부 입장권만 구매하였다.


가림벽
장씨수부 내부
장씨수부 내부


장씨수부에 들어서면 거대한 가림벽이 정문을 막고 있다. 이는 밖에서 정문을 통해 내부를 들여다보는 것을 막기 위한 장치로 중국 전통 건축인 사합원의 공통적인 양식이다. 보통 권세가 높을수록 가림벽도 크고 화려한 데, 장씨수부의 가림벽 역시 엄청난 규모를 자랑했다.


벽 뒤로는 중앙에 마당을 두고 사방으로 건물이 둘러져 있었다. 이 역시 전형적인 사합원의 구조이다. 건물의 내부는 화려한 고가구와 미술품으로 장식되어 있었다. 영화 패왕별희나 마지막 황제처럼 근현대를 배경으로 한 작품에서 봤던 장면들과 비슷한 분위기가 났다.


대청루


사합원을 빠져나와 우측으로 이동하면 대청루라는 서양식 건축물이 나타난다. 장쩌린/장쉐량 부자가 집무실로 사용하던 건물인데 로마식 양식으로 지어졌다고 한다. 건물 규모가 엄청나게 큰 것은 아니었지만, 대청루 주위로 조각한 바위들이 울타리처럼 둘러져 있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독특한 조형미 덕분에 바위 앞에서 인증샷을 찍는 사람이 정말 많았다.


대청루 내부 (호랑이청)
소청루
나가는 곳


대청루 내부에는 ‘동북 호랑이’라는 장쩌린의 별명답게 호랑이 모형을 둔 응접실(호랑이청)과 장씨 부자가 사용하던 물건을 전시한 공간 등이 있었다. 내부에선 줄을 서서 구경해야 할 정도로 전시관 하나하나 사람들이 가득 들어차 있었다. 전시보다도 사람들이 더 기억에 남았다. 중국 사람들이 이렇게 역사에 관심이 많을 줄은 예상 못했다.


장씨수부 관람을 마치고 나니 이제 기차 출발까지 딱 알맞은 시간이 남았다. 그렇게 반나절의 짧은 선양 여행을 뒤로하고 기차역으로 향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