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도 단조롭고 평화로워서 안도하던 날들이었다. 소소한 스트레스야 잔파도처럼 찰랑찰랑 무시로 닥쳐왔지만, 큰 힘 들이지 않고 쉬이 넘길 수 있었다. 내가 발을 디디고 있는 일상은 아주 굳건해 보였고, 내 삶을 지금처럼 무탈하게 지켜낼 수 있으리라는 안도감은 웬만한 일은 별 일 아닌 것쯤으로 치부하게 만드는 자신감을 안겨주었다.
서울에서 소위 잘 나가는 대형 병원에 내과 과장으로 있던 시절, 나는 모든 것을 이룬 기분이었다. 병원의 선생님들과 나는 잘 지내였고 진료는 힘들 때도 있었지만 보람되었다. 아침에 일어나 출근하는 일이 그렇게 싫거나 힘들지 않았다. 그리고 남들 앞에서 나의 직업과 직위를 말하는 것도 무척이나 자랑스러웠다. 나는 벌어들이는 돈의 대부분을 쇼핑에 투자했고 나의 개들에게는 최고의 사료와 간식 그리고 옷을 제공했다.
그러던 어느 날, 무탈한 일상에 감당 못할 큰 파도가 들이닥쳤다. 어떻게 헤어 나올 수 있는지 알 수 없는 그 큰 파도에 휩쓸려 나는 오랫동안 허우적댔다.
어느 날부터인가 병원이 조금씩 흔들리기 시작하더니 급기야 급여가 들어오지 않는 지경에 까지 이르렀다. 병원 대표가 다른 수익사업을 벌이다가 재정이 악화됐다고는 하지만 곧 회복될 거라 했다. 하지만 결국 나는 3달치의 급여를 못 받은 상태에서 퇴사를 결정하였고 내가 퇴사하고 얼마 되지 않아 병원은 문을 닫았다. 그렇게 하루아침에 나는 일터를 잃었다.
불운이야 언제든 누구에게나 닥친다고 하지만, 이건 너무나 무례했다. 내 잘못도 아닌 일로 인해 평생직장으로 여기던 일터는 순식간에 사라졌고, 나는 그저 황망하고 불쾌하기 그지없는 감정만 남았다.
그리고 이 경험보다 더 나를 바닥으로 끌어내린 경험은 다른 병원에 면접을 볼 때였다. 경기 침체가 문제였을까. 다른 병원들 역시 사정이 좋지 않았다. 과장급을 뽑을 수 있는 대형 병원은 매우 한정적이어서 면접을 볼 만한 곳도 많지 않았다. 하지만 대형병원에서조차 급여 조건과 환경이 모두 열악했다. 내가 생각하던 나의 가치는 저 높이 두둥실 떠 있었는데, 현실은 바닥으로 곤두박질치고 있었다. 나는 도저히 병원에서 제안하는 급여에 나의 노동력을 할애할 생각이 들지 않았고, 그렇게 나는 실업자의 대열에 끼게 되었다. 이렇게 된 이상 병원 개원밖에는 답이 없었지만 한 집 건너 하나씩 있는 동물병원의 경쟁에 뛰어들 자신도, 수익을 맞추기 위해 동물을 치료할 엄두도 나지 않았다. 그렇게 나의 실업자의 삶은 무기한 연장되었다.
“과장님은 다 이루셨잖아요.” 나의 전 직장 인턴 사원이 나에게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었다. 그런 내가 갑자기 실업자 신세가 된 것은 내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는 일이었다. 나의 좌절은 너무 커서 제대로 먹지도 자지도 못하는 상태가 되었다. 그 때의 나의 삶은 불안하다 못해 공포스러웠다.
어둡고 무서운 파도는 나를 집어 삼킬 것만 같았다. 아, 이제 나는 어떻게 해야 할까? 이렇게 언제까지 떠밀려야 할까? 어떻게 여기서 헤어나지?
아무도 대답해줄 수 없는 질문들을 스스로에게 던지며 끝없는 불안을 견디고만 있었다. 돌파구가 간절했다. 흐느적흐느적 파도에 떠밀리는 나를 확실하게 붙들어줄 무언가가.
처음엔 그 돌파구가 결혼이었다. 남들처럼 번듯한 신랑이 생기면 나의 이런 실패 따위는 눈감아질 것 같았다. 초라하게 느껴지는 일상에 윤기가 돌 것 같았다. 무엇보다 마음을 붙일 곳이 필요했다. 돌이켜보면, 그때 나는 마음의 균형을 잃은 지 이미 오래였다.
닥치는 대로 결혼에 관한 책을 읽고 선을 보기 시작했다. 그런 나에게, 이미 결혼을 한 전 직장 동료가 말했다. “과장님, 결혼은 책으로 하는 게 아니에요.”
맞는 말이었다. 결혼은 책으로 공부한다고 할 수 있는 것도, 책대로 해서도 안 되는 것이었다. 더욱이 나는, 결혼을 위한 결혼을 꿈꿨기 때문에 결혼을 할 수 없었다.
그제야 정신이 돌아왔다. 나는 나 자신을 먼저 돌아보기로 했다. 다 가진 것 같았다는 나의 생각은 무참히 깨지고 사실은 모두 나의 것이 아니었다는 냉정한 사실을 받아들여야 하는 시간에 도달했다. 얼마나 나의 삶이 얄팍했던가…… 얼마나 얄팍하면 직장 하나를 잃은 것으로 이렇게 흔들리는가…… 새삼 깨닫는 점들이 많아졌다. 알랭드 보통은 <불안>이라는 그의 저서에서 지위로 인한 불안을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사회에서 제시한 성공의 이상에 부응하지 못할 위험에 처했으며, 그 결과 존엄을 잃고 존중을 받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걱정. 현재 사회의 사다리에서 너무 낮은 단을 차지하고 있거나 현재보다 낮은 단으로 떨어질 것 같다는 걱정. 이런 걱정은 매우 독성이 강해 생활의 광범위한 영역의 기능이 마비될 수 있다.
나의 존엄이 남들에 의해 좌지우지 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한 남들에게 이제껏 받아왔던 존중이 사실은 나 자신에 대한 존중이 아니었다는 것도 동시에 깨달았다. 어쩌면 이런 사실을 나는 알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성공하기 위해 앞만 보고 달리던 일상, 남들에게 좀 더 나아보이기 위해 투자를 아끼지 않던 나. 이런 것들이 반증하고 있었다. 갑자기 늘어난 시간을 어떻게 보내야 할지 모르던 나는 내가 이렇다 할 취미 하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동안 얼마나 겉으로 보여 지는 나를 위해 살아온 것인지 알 수 있는 대목이었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나는 내가 진실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물어보지 않았다. 어릴 때부터 수의사가 되겠다는 마음은 확고했으나 수의사가 된 다음의 계획은 서 있지 않았다. 목표를 이뤘으니 됐다고, 그동안 애썼다고, 스스로를 뿌듯해하며 지금까지 내가 이뤄낸 것들을 내심 즐겨왔던 것도 사실이다. 잘 다니던 병원이 하루아침에 망해서가 아니라, 설령 망하지 않고 얼마간 평온한 나날이 이어졌다 하더라도, 나는 언젠가 지금의 허무와 불안을 한 번은 대면하게 될 터였다.
프리드리히 니체는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이해하길 원하는 사람은 다음 질문을 자신에게 던지고, 성실하고 확고하게 대답하라고 말했다. 지금까지 내가 진실로 사랑한 것은 무엇이었는지, 내 영혼이 더 높은 차원을 향하도록 이끌어준 것은 무엇이었는지, 무엇이 내게 기쁨을 안겨주었는지, 지금까지 나 자신은 어떠한 것에 몰입하였는지, 이 네 가지 질문에 대답했을 때 ‘진짜 나’의 본질이 뚜렷해진다는 것이다.
나에게 기쁨을 주는 것, 나를 더 성장하게 만드는 것, 온전히 몰입하고 싶은 것…… 질문을 읊조릴수록 답은 하나로 좁혀졌다. 동물. 나는 더 깊이 내 내면에 웅크린 진짜 내 마음을 파고들었다. 그리고 ‘동물을 위한 수의사’가 되기로 한 처음의 마음이 다시 떠올렸다. 답을 찾자 이제 ‘어떻게?’라는 질문이 남았다.
나는 동물 복지를 실천하고 있는 외국의 동물보호단체에 메일을 보내기 시작했다. 돌아오는 답변은 그리 긍정적이 아니었다. 이미 수의사는 많이 있었고, 함께 일할 기회를 얻기도 힘들었다. 우리나라 동물보호단체와는 너무 다른 상황에 처음에는 적잖이 당황했다. 다시 답답한 벽에 갇힌 기분도 들었다. 그 즈음 외국에서 동물 관련 연구를 하고 있는 언니에게 도움을 구했다. 그러자 뜻밖의 대답이 돌아왔다. “일부터 하지 말고 공부를 먼저 해보는 게 어때?”
공부, 공부라……, 한국에는 동물복지를 공부할 수 있는 곳이 없다 보니 나는 그것을 배울 수 있다는 생각조차 해보지 않았다. 이미 외국에서는 하나의 학문으로 자리 잡고 있었는데 말이다. 동물을 인간의 관점이 아닌 동물 그 자체로 볼 수 있다면, 연구와 임상, 실천을 조화시킬 수 있다면, 그럴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나는 동물을 돕기 위해 다시 한 번 공부를 시작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제대로 알아야 제대로 도울 수 있을 것 아닌가. 흐릿한 길이 선명해지는 순간이었다. 다들 이제까지 한 공부가 아깝지 않느냐고, 서른이 넘어서 무슨 공부를 또 시작하느냐고 한마디씩 보탰지만, 나는 조금도 아깝지 않았다. 서른이 넘은 건 머리가 예전 같지 않아 조금 걱정됐지만, 열정 만큼은 새내기 부럽지 않았으니 밀고 나가기로 했다.
이제 막 선 새 출발선이 나는 썩 마음에 들었다. 다시 마음의 기둥이 생긴 것 같았다. 그 기분을 다시 느낄 수 있어서 다행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확고한 무언가가 생기니 본격적으로 다음 계획을 세우고 실행에 옮길 수 있었다.
나는 금이 간 내 일상을 다시 땜질하고 매우기보다는 익숙한 일상을 과감히 벗어나는 걸 택했다. 가보지 않은 길이지만, 나를 믿고 묵묵하게 걸음을 내딛기로 했다. 이 새로운 길이 예전처럼 나를 단단하게 지켜줄 거라는, 남들 보기 당당한 모습으로 빛나게 해줄 거라는 믿음이 아니라, 누가 뭐라든 오롯하게 기쁨과 보람을 얻을 수 있는, 나 자신이 정말 바라고 바라온 일이라는 점이, 마음에 드리워진 그림자를 마침내 걷어냈다. 아픈 동물을 치료하거나 환경을 개선하여 그 고통으로부터 벗어나게 해주었을 때, 그럴때에야 내가 가장 행복할 수 있다는 것을 이제는 알 수 있었기 때문이다.
누구나 한 번은 자신과 불화한다. 우리는 가끔 평온하고, 자주 불안하다. 욕망이 좌절되기도 하고, 내 욕망인 줄 알았던 게 사실은 남이 내게 바라던 욕망이기도 하고, 모든 게 뒤죽박죽인 카오스에 빠져 맥을 못 추기도 한다. 그런데, 어쩌면, 그때야말로 나한테 우선순위가 되어야 할, 진짜 내 욕망을 확인하고 과감히 순서를 재배치할 수 있는 기회일 수도 있지 않을까. 다가오는 것들을 받아들이고 자신과 대면할 때 삶의 새로운 가치와 스러지지 않는 진실을 발견하게 될 수 있을 테니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