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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손서영 Sep 09. 2022

편백이 집의 시간은 계속 흐른다.

편백이와의 이별을 하염없이 곱씹을 수도 있었겠지만, 나의 아이들의 생각은 달랐다. 그들은 또 다시 밝아온 세상을 기뻐했고, 온 몸으로 그 행복을 나에게 표현했다. 나는 계속 넘어져서 울고 있을 수는 없었다. 동물병원에는 아픈 아이들이 치료를 받기 위해 방문하였고 나는 최선을 다해 그 아이들을 치료했다. 그리고 남은 시간은 편백이가 가고 나에게 남은 아이들을 돌보는데 할애하였다. 나의 아이들은 나에게 웃음을 되찾아주는데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계속 슬퍼하기엔 나의 아이들은 너무 귀여웠고, 사랑스러웠으며, 코믹했다. 나는 왠만한 코미디 프로를 봐도 웃지않는데 우리 아이들은 나를 배꼽을 잡고 웃게 만들었다.  

   

[트리는 개구쟁이다. 언제나 말썽을 부리고 언제나 더러워져있다. 그래서 사랑스럽다. 산책을 다 같이 갔다왔는데 트리만 더러워져서 돌아왔다.]


크리스마스에 나에게 왔던 성탄, 트리는 잘 지내고 있다. 성탄이는 몇 달 전에 좋은 집으로 입양을 갔고 트리는 내 곁에 남게 되었다. 혼자 남겨진 트리가 혹시나 우울해하지 않을까 했는데 언제 그랬냐는 듯이 큰 아이들에게 섞여서 잘 놀았다. 단지 요즘 한창 개춘기 시절이라 말을 엄청 안듣고 하루 온종일 말썽을 부리고 있지만 말이다. 트리가 내 방에서 마린이랑 같이 뛰어 놀다가 선풍기 한 대를 다 부셔놨다. 난 참을 수 있었다. 난 아이들을 사랑하니까. 문제는 두 번째 선풍기 코드 선을 끊어놨을 때였다. 나는 화가 너무 나서 트리한테 소리를 질렀다. 정말 왠만해서는 절대 소리를 지르지 않는 나도 선풍기를 이틀 사이에 2개를 망가트리는 건 좀 참기 힘들었다. 트리는 자기 이름이 크게 호명되는 것에 잠깐 멈칫 하더니 곧 별일 아니라는 듯이 다른 아이와 꽁냥꽁냥 장난을 쳤다.   

  

[트리는 잘때는 아주 천사다. 세상 착하게 잔다. 그래서 미워할 수가 없다.]


병원에 자주 내원하시던 보호자분 중에 미용을 하실 수 있는 분이 계셨다. 너무 감사하게도 그분이 먼저 우리 아이들을 미용해주고 싶다고 제안해주셨고 나는 이 여름 털 때문에 더워할 아이들 걱정에 넙쭉 내민 손을 잡았다. 그렇게 미용을 한 아이가 해복이, 별복이, 달복이, 얼룩이, 현복이, 하울이, 트리, 리듬이, 화음이, 단밤이, 열무 이렇게 11마리이다. 아이들은 미용할 때는 겁에 질려있더니 이내 시원해진 자신의 몸이 마음에 드는지 꼬리를 세우고 뛰어다녔다. 이 자리를 빌어서 미용을 해준 보호자분께 감사 인사를 다시 한번 드리고 싶다.

     

[달복이가 미용을 하고 산책을 하고 있다. 미용하고 나니 귀여운 달복이가 더 귀여워 진것 같아서 너무 좋다.]


며칠전에 마린이의 전 보호자분들이 이곳을 방문하셨다. 마린이가 자신들을 보고 다시 적응하기 힘들어 할까봐 멀리서만 보고 가시겠다는걸 내가 괜찮다며 마린이를 만나게 해드렸다. 그분들과 접선 장소를 병원으로 정하고 마린이를 데리고 병원으로 갔다. 마린이가 전 보호자를 보자마자 달려가서 온몸으로 반가움을 표시하며 너무 좋아했다. 그 모습에 나는 괜히 뭉클해졌다. ‘우리 마린이가 많이 그리워했구나... 다른 아이들도 이전 보호자들을 그리워하고 있을 수 있겠구나...’ 얘기를 들어보니 전 보호자분들이 마린이를 포기하지 않으시려고 무척 애를 쓰셨었다. 집에 방음 장치도 설치하시고 하루에 2번 산책에 점심때 1시간씩 놀아주기 등 애를 쓰셨지만 마린이는 자꾸 짖었고 민원은 점점 더 거세졌다고 했다. 그래서 잘 키워 줄 분을 찾아서 보냈는데 그 곳에서 마린이를 가둬두기만 하고 새끼를 갖게 할 것 같기도 해서 서둘러서 그곳에서 빼내서 오게된 곳이 여기였다. 마린이는 보호자분들이 가시고 좀 쓸쓸한 모습으로 집에 들어와 내 옆에서 낮잠을 잤다, 그리고 오후 산책 시간이 되자 다시 예전의 모습으로 돌아가서 또 집이 떠나가게 짖어대며 신나게 산책길에 올랐다.

      

[마린이는 항상 내 침대 옆 바닥에 누워서 잔다. 내가 손만 뻗으면 만질 수 있는 곳에 누워 있어서 자주 만져준다.]


병원에서 밖으로 한발자국도 안나가겠다며 한사코 고집을 부리던 열무가 1주일 전에 갑자기 나를 따라 집으로 들어왔다. 그날은 휴무 날이어서 열무를 챙기려고 병원에 와서 밥과 물을 챙겨주고 한참 놀아준 뒤 간식을 입에 물려주고 병원을 나오려고 하는데, 열무가 그날따라 유난히 울 것 같은 얼굴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열무야, 그니깐 엄마랑 집에 가자~ 엄마랑 집에 가면 열무는 하루종일 엄마랑 있을 수 있어~”라고 말했다. 그러자 정말 내 말을 알아듣는 것 마냥 조금씩 조금씩 나에게 다가오는 것이 아닌가!! 그러더니 용기를 내어서 병원 밖으로 나왔다. 나오기까지가 힘들었지 나오니 세상 신나게 뛰어다녔다. 안아서 데리고 갈려고 해도 바로 눈치를 채고 이리저리 도망다니던 우리 열무가 스스로 병원 밖으로 나온 것은 정말 고무적인 일이었다. 그렇게 집에 오게된 열무는 예전과 달리 아주 잘 적응하고 잘 지내고 있다. 너무 많은 친구들과 지내기에는 열무는 시간이 필요했던 것 같다. 그 시간을 줄 수 있어서 너무 다행이었다. 그 시간동안 나에게 충분한 사랑을 받은 열무는 자신감을 가지고 친구들과 섞일 수 있게 된 것 같다.  

   

[열무가 집에 와서 소복이의 철통수비를 뚫고 침대로 입성했다. 며칠 소복이와 신경전이 있었지만 여러차례 나에게 혼이 난 소복이가 이제 좀 포기한 것 같다.]


바쁜 일상 속에 찾아온 연휴는 꿀같이 달콤하다. 아이들과 실컷 있어줄 수 있어서 그게 가장 좋은 것 같다. 나는 요번 명절도 아이들과 함께하기 위해 홀로 여기에 남기로 했다. 명절이 조금 쓸쓸할 수도 있겠지만 나에게는 31마리의 아이들이 있으니 쓸쓸할 틈이 없다. 모든 분들도 즐겁고 풍성한 한가위 되시기를 바라본다.

               

[꼬물꼬물 우리 아이들이 신나게 놀고 있다. 새이불을 깔아주자 좋다고 신이 났다. 하여간 새거는 귀신 같이 알아보고 좋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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