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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옆집줄리 Feb 04. 2017

가족과 함께 차(Tea)를

언니와 유자병차

나에겐 네 살 차이 언니가 있다.


언니가 초등학교에 입학했을 때 나는 아직 코찔찔이였고, 언니가 중학교에 입학했을 때 나는 분수와 소수를 처음 알게 되었고, 언니가 고등학교를 지나 대학에 입학했을 때에 비로소 나는 중이병을 거의 마친 즈음 이었다.


그 시절 나에게 '언니'의 존재는 '다름' 이었다. 언니는 나와 많이 달랐다.

맏딸인 언니는 나와 오빠에게는 언제나 자상했고 모든 일에는 꼼꼼했다. 또한 부모님의 말씀에 거역이나 대꾸 따위는 거의 없었다. 부모님은 그런 언니에게 '믿을 수 있는 메이커'라 칭했다.


'믿을 수 있는 메이커' 라... 조금 오글거리지만, 광고 카피처럼 입에 착착 붙는 그 표현은 지금 생각해도 언니를 잘 표현한 것 같다. 나는 그럴 때 마다 베시시 웃으며 '그럼 나는?' 이라고 되물었었고, 그에 대한 부모님의 대답은 굳이 말하지 않아도... (한 글자만 바꾸면 된다)


부모님에게 포지셔닝이 이렇게 달랐지만, 나는 언니가 밉거나 싫지 않았다. 오히려 이런 포지셔닝 덕분에 나는 언니 뒤에 숨어서 마음껏 어리광을 부릴 수가 있었다. 생애 중요한 경험들을 나보다 조금 앞서서 척척 해내는 언니를 보면서, 나는 그것을 때로는 따라 하고, 때로는 피해 가면서 나만의 길을 만들어 온 것이다.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그 존재의 고마움을 조금씩 깨닫게 되었고 나의 어리광은 조금씩 줄어갔다.


언니는 사실 부모님이나 내가 '기대'하거나 '믿고'있는 만큼 완벽하지 않았다.

자신의 혈액형을 첫 아이를 낳을 때까지 잘못 알고 있었던 허당끼(?) 있는 여자였으니까. (아직도 언니가 그것을 고백하던 순간을 떠올리면 미소가 지어진다. 나에게는 이상하게도 꽤 통쾌한 순간이었다.)


언니에게 향한 부모님의 그런 믿음은 어쩌면 버거운 책임감이었을 것이다.

언니에게 향한 동생들의 반짝이는 눈은 어쩌면 외면할 수 없는 부담이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언니는 너무나 잘, 그 역할을 해왔다.


가끔 언니와 차(Tea)를 마신다.
이제 우리는 둘 다 각자의 가정의 카리스마 있는 안주인이다.


나는 우아함을 한껏 장착해서 차(Tea)를 우려주고 언니와 형부에게 좋은 차(tea)를 꺼내 챙겨주면서 왠지 스스로 어른이 된 것만 같다. 얼마 전에 언니에게 톡이 왔다. 작년 여름에 감기에 좋다며 챙겨준 유자병차*를 이제야 먹는다며 인증샷을 보내 준 것이다. 나는 어떻게 우려야 맛있고 또 어떻게 보관해야 좋은지 한번 더 훈수를 두었다. 언니가 고맙다고 하고 나는 또 스스로 어른이 된 것 같다.


이렇게 오래오래, 앞으로도 오래오래,

이제는 다 큰 척 이제는 어른인 척하며 언니에게 좋은 차를 계속 대접하고 싶다.

언니는 아마 그렇게 재잘대는 나를 보고 웃으며 끄덕끄덕 해 줄 것이다.


- 옆집 줄리


*유자병차 (하동 / 차공간 www.teaspace.kr)

- 하동 홍차를 유자 껍질 속에 채워서 재가공한 차. 모양도 너무 예쁘지만 우렸을 때 풍기는 그윽한 유자향이 너무 좋다. 저 예쁜 모양을 뽀샤뽀샤 해야한다는 게 마음아프지만...

나는 설명서를 읽기 전에 통째로 망치를 들이대 뽀샤뽀샤 했지만, 차가 부서지지 않게 하기 위해서는 우선 유자 내부의 차를 모두 긁어내서 따로 담은 후 유자를 망치로 뽀샤뽀샤해서 합치라고 한다.
겨울에 몸이 으슬으슬할 때 따뜻하게 우려마시면 내장까지^^; 따뜻해지는 느낌이다. 유자껍질의 성분이 감기에도 도움을 준다고 한다. 생강, 대추와 함께 끓여 먹으면 약차로 활용할 수 있다고 하는데 나는 유차병차만 우려먹으니 뒷 맛도 청량한 것이 너무 좋더라.

유자향이 핵심이니 보관은 꼭 완벽히 밀폐되는 용기에 해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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