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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편성준 Jan 15. 2024

시집을 베고 잔 화가 이야기

최용대·김춘수 시집 『꽃인 듯 눈물인 듯』  출간기념회 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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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평론가 김성신 선생이 토요일 오후에 성북동에서 출판기념회가 열리니 시간 되면 오라고 우리 부부를 초대해 주셨습니다. 김춘수 시인의 『꽃인 듯 눈물인 듯』의 출간기념회였습니다. 김춘수 시인은 <꽃>으로 유명하지만 저는 그보다 '무의미의 시'를 추구하는 세련된 모던보이로 인식되는 분이었죠. 한 마디로 범접하기 힘든 천재였습니다. 최용대 화백의 개인전 《Inner Language, 내면의 언어》와 함께 열린 이 출간기념회는  <갤러리 반디트라소스>에서 진행되었는데 거기가 저희 집에서 5분도 안 걸리는 곳이었습니다. 놀라운 일이었죠. 여태 그걸 모르고  건물 1층 마트만 들락거렸는데.


화가의 전시회와 출간기념회가 함께 열린 이유는 생전에 김춘수 시인이 나이가 훨씬 어린 최용대 화백에게 직접 연락을 해서 '내 시와 당신의 그림이 들어간 책을 만들어 보자'라고 청하셨기 때문이었습니다. 거기에 김성신 평론가가 관여해 발간을 추진했고요. 책을 내기 전 최용대 화백의 집으로 김춘수 시인의 많은 책이 도착했답니다. 당신의 그림은 단순히 삽화로 들어가는 게 아니니 내 시를 완전히 이해했으면 좋겠다, 라는 시인의 배려였죠. 최 화백은 '좋은 시집을 베고 누워 자면 자음과 모음이 해체되어 다시 내게 좋은 영감으로 돌아오지 않을까'라는 나이브한 생각을 하며 그 시집들을 베고 자기도 했다는군요. 예술가는 생각하는 것 자체가 다르구나, 하고 감탄했습니다.


아름다운 시집의 출간을 자축하며 김성신 선생이 김춘수 시인의 타계 20주기를 맞아 다시 시집을 내게 된 배경을 설명해 주었고 최용대 화백, 강경희 평론가 등을 불러 책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평생 소설 평론은 안 하고 거의 시만 다루었다는 강경희 평론가를 소개하면서 "사실은 저의 아내이며 저보다 연상"이라는 TMI를 남발하는 바람에 "무슨 소리냐, 나이는 당신이 더 들어 보이는데"라는 비난이 쏟아지기도 했습니다. 강 평론가는 '샤갈의 마을에 내리는 눈'이라는 시를 낭독하며 시의 배경은 3월이지만 겨울을 이야기한다는 설명을 덧붙여 주었습니다.


김춘수 시인의 장손 김현중 작가가 나와서 인사를 하고 책 뒤에 쓴 '바다의 부활'이라는 자신의 글을 읽었는데 글이 너무 좋아서 깜짝 놀랐습니다. 알고 보니 이미 책을 여러 권 낸 작가였습니다. 제 아내 윤혜자는 그 사이 김현중 작가의 어린 딸에게 스티커를 하나 얻었다고 좋아하면서 시집에 붙였습니다.

반디트라소 안진옥 관장님과 천지수 화가와도 인사를 나누었고 곧 책이 나온다는 김혜선 작가님과도 안면을 텄습니다. 이소원 작가에게는 고맙게도 책을 한 권 받았고(『외롭지만 불행하진 않아』) 남북하나재단의 이재연 대리를 소개받아 함께 글쓰기와 책에 대해 뭔가를 해보자는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습니다. 최용대 화백에게 시집에 싸인을 받으러 갔는데 옆에 있던 포르체 박영미 대표님이 저를 알아봐 주셔서 깜짝 놀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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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 윤혜자가 잠깐 우리 집에 가서 차를 한 잔 하자고 해서 김성신·강경희 커플과  김혜선 작가, 강종희 선생까지 성북동 소행성으로 갔습니다. 아, 가기 전에  고양이 책방 '책보냥'에 가보자고 해서 다들 책방으로 가 김대영 작가와 인사를 나누고 책과 굿즈를 샀습니다. 윤혜자가 이런저런 책을 추천했는데 감격스러운 건 김성신 평론가가 제 책 『부부가 둘 다 놀고 있습니다』를 사서 김혜선 작가에게 선물한 것이었습니다. 저는 거기에 '바보 같이 살아도 큰일 안 나더라고요. 책 나오면 사서 보겠습니다'라고 싸인을 해드렸습니다. 윤혜자가 고양이가 그려진 양말을 사서 한 켤레씩 돌렸더니 다들 기뻐하셨고요.


책방에서 나와 저희 집으로 가서 커피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강경희 선생이 책꽂이에서 『김종삼 정집』을 발견하고 한참 그 책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수색에서 약국을 운영하시는 김혜선 작가의 어머니 얘기를 했고 새로 나올 책 제목 후보 중 '엄마, 약 좀 그만 팔아'가 재밌어서 다들 손뼉을 치며 즐거워했습니다. 시집과 화가, 평론가, 작가, 고양이까지 있는 아주 문화로 꽉 찬 날이었습니다. 저희는 일행과 작별을 하고 100년 전 활동하던 앨리스 현 미옥의 생애를 다룬 170분짜리 연극 《아들에게》를 보러 대학로로 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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