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세환/김예은의《이 세상 말고》
김세환 배우와 김예은 배우를 좋아한다. 그런데 두 사람이 함께 출연하는 연극을 볼 기회가 생겼다. 난데없는 계엄령 때문에 예약했던 공연 관람을 취소하는 등 우왕좌왕하고 있는데 금요일 저녁에 이 이인극의 현장 예매가 가능하다고 해서 대학로에 있는 나온씨어터에 가서 표를 샀다.
김예은 배우는 연극 《천 개의 파랑》에서 로봇과 또 다른 자아로 등장할 때의 연기를 잊을 수가 없는데 이번엔 극본과 연출, 연기까지 모두 소화했다. 뛰어난 배우들은 결국 창작에도 관여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고 보니 각본가 아론 소킨이나 클린트 이스트우드 감독도 배우 출신이다. 《뷰티풀 마인드》 《다빈치 코드》를 만든 론 하워드나 《겟 아웃》의 조던 필도 배우 출신이고.
더 이상 설명이 필요 없는 김세환 배우 역시 출발부터 이 작품을 함께 구성하고 발전시킨 주역이다. 《이 세상 말고》는 2022년 국립극단 한여름밤의작은극장 개발작으로 선정되었던 작품인데 이번엔 더 많은 스태프들의 협력으로 재공연 되었고 2025년엔 아시테지 겨울축제 공식초청작이기도 하다.
집에서는 아빠에게 처 맞고 학교에선 왕따를 당하는 이언은 역시 왕따인 소녀 키코와 친하다. 아직 열여섯 살인 둘은 사제 폭탄을 만들어 학교를 폭파하고 장렬하게 자살하기로 의기투합한다. 유명하지 않은 마을 출신 락그룹을 좋아하거나 나중에 에베레스트에 가고 싶다는 생각을 가진 청소년이 왜 폭탄 자살을 꿈꾸게 되었을까.
어쩌면 답이 없는 이 질문에 공감을 불어넣는 건 두 배우의 놀라운 연기와 몸짓이다. 김예은 배우의 표정과 억양, 움직임은 키코라는 영국 소녀를 완벽하게 구현했고 이언 역을 맡은 김세환 배우도 80분 동안 관객들을 울리고 웃겼다. 내 옆에 있는 젊은 관객은 계속 눈물 콧물을 흘리며 연극을 지켜보았다.
연극이 끝나고 홀에서 잠깐 만나 두 배우에게 인사를 했다. 아내가 "김세환 배우님은 《1923년 최형우》를 마친 지 며칠 되지도 않았는데 어떻게 이리 급하게 출연했느냐"라고 물었더니 옆에 있던 김예은 배우가 "그러게요. 완전 김세환 월드예요."라며 웃었다. 김예은 배우는 청소년극에 관심이 많아 앞으로도 이런 주제를 계속 다뤄볼 것이라는 포부를 밝히기도 했다. 보증된 연기 실력에 크리에이티브 능력까지 갖춘 두 배우의 눈부신 성과를 직접 목격하시기 바란다. 나온씨어터에서 12월 15일까지 공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