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북동에서 있었던 짤막한 이야기
어젯저녁 조금 무거운 짐을 양손에 나눠 들고 금월당이라 이름 붙인 우리 집을 향해 올라가고 있었다. 이미 성북동 언덕길에 익숙해진 나는 호흡을 조절하며 천천히 길을 올라가고 있는데 그런 나를 지긋이 바라보는 사람이 있었다. 양복을 차려입은 은발의 노신사였다. 남의 연립주택 주차장 입구 접은 박스 위에 앉아 있던 그가 나에게 말을 붙였다. "힘들죠?" 나는 대답했다. "아뇨, 괜찮습니다." 내가 그대로 걸아가려니까 그가 앉은 채로 말을 이어나갔다. "저 밑에 홍익고등학교 아시죠? 제가 그 근처 평지에서 살았거든요. 근데 사위가 뭐 잘못 돼가지고 여기로 올라왔어요." "그러세요..?" 나는 좀 더 쉬었다 올라오시라고 말하고는 언덕을 올라갔다.
노신사도 힘들지만 그 사위는 또 얼마나 힘들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가 말한 홍익고등학교는 홍익사대부속고등학교를 말한다. 홍익사중과 붙어있다. 코로나 19 발생 초기에 생계가 막연해진 내가 새벽 6시에 출근해 방역아르바이트를 했던 곳이기도 하다. 작년 7월에 이사 온 금월당은 '금요일부터 월요일까지 주로 머무는 집'이란 뜻으로 지었다. 보령에서 살다가 서울에 일이 있거나 친구들을 만나고 연극을 보러 올라올 때마다 머문다. 높은 곳에 있지만 백석의 시처럼 '외롭고 높고 쓸쓸'하진 않다. 높고 좁지만, 좋다. 나는 화요일 아침 서울시민대학의 '다시가는캠퍼스' 특강을 마치고 아내와 고양이 순자가 있는 보령으로 내려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