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것은 아주 작은 것에서 시작된다

루리 작가의 『나나 올리브에게』를 읽다가

by 편성준


토요일에 광화문 교보에 들러 루리 작가의 신작 『나나 올리브에게』를 샀습니다. 어제 책을 절반쯤 읽고 오늘 아침에 일어나 교보문고 '첫 랜선 팬사인회'도 잠깐 봤습니다. 루리 작가는 결혼해 처음 이사 간 신혼집에 전에 살던 아이들의 키를 재던 '키 눈금' 흔적이 있었는데 그걸 보고 자신도 거기에 키 눈금을 남겨 보았다고 합니다. 친구들이나 다른 동물들이 놀러 오면 그들에게도 키 눈금을 남기게 하고요. 이런 식으로 집주인이 바뀔 때마다 키 눈금을 거듭 새기다 보면 언젠가 거기가 까매질 때까지 눈금으로 가득 차게 되겠지요. 루리 작가는 그 눈금들이 수십 년 수백 년 뒤에도 남아 있을 것만 같았고 누군가는 그걸 보고 '저기에 나도 키 금을 새겨야지' 하고는 하루를 살아갈 힘을 얻지 않을까, 하는 상상에서 소설의 배경이 되는 '올리브나무 집'을 떠올렸다고 합니다.


키 눈금은 아이들이 자라는 집이라면 흔히 있을 수 있는데 그걸 놓치지 않고 작품의 모티브로 삼은 작가의 고백을 들으며 대단한 작품도 결국은 아주 작은 모티브에서 시작된다는 진리를 다시금 깨닫게 되었습니다. 조앤 K. 롤링도 1990년에 영국 맨체스터에서 런던으로 향하던 기차가 덜컹, 하고 멈추었을 때 호그와트로 가는 통로 킹스크로스역 9와 4분의 3번 승강장을 상상했다고 했잖아요. 오늘 아침 늘 다니던 집 뒤 봉산으로 산책을 나가려다 앉아서 이 글을 씁니다. 아침에 천천히 산길을 걷는 건 지친 뇌를 쉬게 만드는 일인 것 같습니다. 아무 생각이나 하거나 아니면 아무 생각 없이 그냥 걷기만 해도 되니까요. 이따금 떠오르는 생각은 에버노트에 음성을 남기면 바로 텍스트로 변환되고요. 산책 길엔 아무도 없거나 무심히 지나치는 동네 노인들이 대부분이지만, 혹시 또 모르죠. 며칠 전 산책길에서 만난 '외로운 남자(돈 문제로 통화하던)'처럼 제게 어떤 생각을 던져 줄 이가 나타날 지도. 다시 말씀드리지만 모든 대단한 것은 아주 작고 하찮은 것에서 시작되는 법이니까요. 당신도 눈앞을 스치고 지나가는 작고 하찮은 것들을 가끔 신기한 눈으로 쳐다보시기 바랍니다. 나와 아무 상관없던 것들도 거기에 내 '생각'이 덧씌워지는 순간부터 어떤 '의미'를 갖게 되니까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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