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령에 술친구가 몇 명 생겼습니다
성북동 '책보냥'의 김대영 작가가 보령으로 오는 날이었다. 우리와 함께 보령 관광 책자를 만들고 있는데 어제는 담당자들과 회의를 해야 해서 기차를 타고 보령으로 내려온 것이다. 우리는 김 작가에게 오전에 도착하도록 차 시간을 조정하라고 했다. 생선구이를 좋아하는 김 작가를 위해 '한울타리 보령점'에 갈 생각이었던 것이다. 마침 어제 집 근처 사거리에서 좌회전을 기다리던 중 자동차 시동이 꺼져서 견인차를 부르는 소동이 있었기에 이 날은 자동차 없이 움직여야 했다. 걸어서 한울타리로 갔더니 '오늘은 쉰다'는 메시지가 출입문에 붙어 있었다. 할 수 없이 서울에서 온 손님들을 모시고 갈 때마다 만족도가 높았던 '그리고'에 갔다. 김 작가도 택시를 타고 식당으로 곧장 와서 아욱국을 맛있게 먹었다. 사장님이 아내에게 다가오시더니 "또 서울에서 손님이 오셨나 보네. 아직도 작가님의 신문에 쓴 글을 읽고 찾아왔다는 사람이 있어요."라고 말씀하시며 고마워했다.
시청에서 회의를 마치고 김 작가와 택시를 타고 대천역 근처 맥도날드에서 커피와 맥윙을 먹으며 노닥거리다가 작별을 했는데 다시 시청에 잠깐 갈 일이 생겨 다시 택시를 타고 보령시청으로 가 일을 보고 집으로 갔다. "별로 한 일도 없는 것 같은데 피곤하네."라며 아내가 안방에 있는 캠핑의자(우리는 여기 앉아 TV를 본다)에 앉아 졸았고 나는 침대에 잠깐 누웠다. 30분 정도 누워 있으니 피곤이 좀 풀린 것 같아 2층 서재로 올라가 목요일 저녁에 할 《저자로 발돋움하는 글쓰기》 마지막 강연 준비를 했다. 학인들이 보내온 글들이 좋아져서 마음이 뿌듯했다. 목요일은 마지막 시간이라 서울에서 오프라인으로 진행한다. 지방에 사는 분들이 많아 참석 인원이 많진 않겠지만 그래도 줌 화면으로만 만나고 끝내고 싶지 않아 장소를 빌렸다.
낮에 간식으로 핫윙을 먹어서 그런지 저녁때가 되어도 배가 고프진 않았고 그냥 뭔가 심심했다. 아내와 둘이 갈 술집을 찾다가 지쳐 다시 2층으로 올라갔다 오니 아내가 술 번개를 쳤다며 웃었다. 이문구 기념사업회에서 함께 일하는 윤용현 선생과 황선만 작가 등이 억지로 포섭된 번개 멤버였다. 당장 윤용현 선생에게서 연락이 왔다. 학교 업무를 마치고 퇴근 중인데 집에 잠깐 들렀다가 택시를 타고 우리 집 쪽으로 오겠다는 것이었다. 김환영 화백에게도 전화를 드렸더니 받을 수 없다는 메시지가 떴다. 황선만 작가는 보령 원도심 어울림센터에서 주민 교육 중인데 그게 저녁 식사까지 이어진다고 했다.
주유소 앞에서 윤 선생이 탄 택시를 얻어 타고 동대동에 있는 '달빛에구운고등어' 충남보령점으로 갔다. 3인분짜리 생선구이 안주를 시키니 푸짐했다. 윤 선생은 학교 선생님들은 다 좋은데 술을 안 마시는 게 흠이라고 했다. 우리는 소주를 벌컥벌컥 마시며 이문구 선생 이야기, 책과 인문학 강연 이야기 등을 하며 웃음꽃을 피웠다. 윤 선생이 처음 도서관에서 내 책 『읽는 기쁨』을 다 읽고 나오다 엘리베이터에서 나를 만나 큰 소리로 인사를 한 일, 오은 시인 북토크에서 내가 사회 본 이야기, PPT 화면 이야기 등을 또 했다. 해도 해도 질리지 않는 이야기가 몇 개 있는데 이것도 그중 하나라고 했다. 세 사람이 소주 다섯 병을 마셨다.
윤 선생이 술값을 내겠다고 해서 뜯어말리고 내가 냈더니 이차를 가자고 했다. 우리의 단골이 된 '왕초바베큐'로 갔더니 김환영 화백이 오셨다. 속초에 가서 행사를 하고 인천까지 갔다 오시는 길이라고 했다. 그래서 전화를 못 받은 것이다. 곧 황선만 작가도 일행과 함께 맥주집으로 왔다. 이제 소설가 서순희 선생만 오시면 다 오는 거구나, 라는 생각을 했다. 안주를 잘 안 먹고 술만 마시는 스타일인 아내가 취기가 오르는지 자꾸 졸리다며 집으로 가자고 해서 급히 택시를 타고 도망치듯 귀가했다. 서울에 살 때는 부르면 당장 달려오는 친구들이 있었지만 보령엔 없었는데 드디어 술친구들이 생겼다. 앞으로도 번개 치면 빼지 않고 나올 사람들이라서 마음이 든든하다. 우리는 이렇게 차츰차츰 보령 사람이 되어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