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써보는 공처가의 캘리
아내가 장강명 작가와 김새섬 대표의 <암과 책의 오디세이>를 듣더니 "장강명 작가도 아내에게 꼼짝 못 하네. 하하. 우리 집이랑 비슷한 것 같아."라며 반가워했습니다. 장강명도 공처가라며 좋아하는 아내를 보니 '공처가의 캘리'를 처음 쓰던 때가 생각나는군요. 저는 캘리그라피를 배운 적도 없는 주제에 하고 싶은 말을 종이 위에 볼펜으로 써서 사진 대신 SNS에 올리곤 하는 습성이 있었습니다. 그런 저를 보고 아내는 말하더군요. 그렇게 그냥 떠오르는 대로 쓰지 말고 컨셉을 좀 정해서 써봐, 라고요.
기획자다운 지적이었죠. 컨셉 워드를 뭘로 정할까 하다가 평소 아내와 제가 주고받는 싱거운 유머와 그와 관련된 이야기들을 많이 올리니까 '공처가의 캘리'가 어떠냐고 물었습니다. 애처가의 캘리는 재수 없으니까 공처가의 캘리로 하라는 아내의 말을 따른 거였죠.
공처가의 캘리 - "아내가 화를 낼 땐 다 이유가 있다"
공처가의 캘리 - "왜 아내가 하는 말은 다 옳은 걸까?"
공처가의 캘리 - "배울 게 많아서 아내를 배우자라고 부르는 걸까?"
제가 공처가의 캘리를 인스타그램에 연재하기 시작하자 사람들의 반응은 홍해 갈라지듯 정확히 둘로 나뉘었습니다. 남성들은 기분 나빠하며 "한심하다, 남자 새끼가..." "집어치워!" 같은 비난 일색이었고, 여성들은 "후련하다" "우리 남편에게도 보여줘야겠어" 등등 환영의 뜻을 표했습니다. 저야 뭐 아랑곳하지 않았습니다. 제 아내만 기분 나쁘지 않다면 다른 남편들이 뭐라 하든 그런 건 상관없었거든요. 공처가의 캘리는 의외로 반응이 좋았습니다. 책으로 내보자는 얘기까지 있었죠. 물론 더 좋은 컨셉이 있어서 그걸 책으로 냈습니다. 그건 바로 '읽는 기쁨'이었습니다. 그 책은 5쇄를 찍었죠.
당신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습니다. 글을 쓰고 싶다면 무턱대고 쓰지 말고 일단 메모를 많이 하고 메모장을 자주 들여다봐야 합니다. 컨셉 별로 메모의 쓰임새를 구분해 놓는 것도 좋은 방법이죠. 그리고 자신 있는, 또는 자신에게 어울리는 컨셉을 정해서 연재를 시작해 보십시오. 예를 들면 골프를 처음 배우는 사람은 '골프장 가서 배우는 인생' 이런 식으로 컨셉을 정하고 매일 생겨나는 에피소드를 쓰는 거죠. 학교 다니는 선생님이라면 '공부하기 싫었는데 선생님이 되어 아직도 학교 다니는 인생'으로 써도 좋겠죠. 저처럼 평소 아내에게 지적을 많이 당하는 사람은 '공처가의 캘리' 같은 걸 쓰는 거고요. 물론 지금도 매일 공처가의 캘리를 쓰진 않습니다. 하지만 가끔은 쓰죠. 어제도 군산 여행 갔다 온 사진 고르다가 충동적으로 아이패드로 사진을 불러내 그 위에 공처가의 캘리를 하나 써봤습니다.
공처가의 캘리 - "남자의 카리스마는 술을 따를 때가 아니라 아내 말을 따를 때 완성된다."
어때요, 한심하고 좋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