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말 많은 '2026 문학 상주작가 지원사업'에 대하여
면접 장소로 가면서 '나는 떨어져도 괜찮아. 경험 삼아 보는 거지 뭐. 그래도 서류전형을 통과한 게 어디야......?'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그런데 그렇게 정말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라 여기는 이들이 있다. 면접관들이다. 특히 '2026 문학 상주작가 지원사업'에 지원한 문학시설 관계자들과 심사위원들이 그랬다. 그들은 우리 시설에 어떤 인재가 올지 모르므로 일단 다 열어 놓기로 하자, 나라에서 정한 일정 자격을 갖춘 사람이라면 지역·나이 상관없이 일단 다 불러보자, 재정 상 교통비를 지급할 순 없지만 지원자가 많으면 심사위원들도 덩달아 힘이 드는 법이니 우리만 좋자는 건 아니다, 라고 생각한 것 같다.
문학 상주작가 지원사업은 도서관·문학관·서점 등 문학시설에 작가가 '상주'하면서 지역 주민 대상 문학 프로그램을 기획·운영할 수 있도록 인건비와 운영비를 지원하는 정부 사업이다. 윤석열정부 때 문화 관련 사업이 대폭 축소되었다가 이재명정부로 들어서며 다시 활기를 띠고 적극적으로 홍보와 지원이 이루어진 프로젝트 중 하나다.
일단 상주작가가 되면 도서관이든 문학관이든 2026년 5월 2일부터 7개월 간 주 3일 출근·이틀 재택근무를 하며 월 240만 원의 급여를 받는다. 가장 좋은 건 주민 대상 문학 프로그램을 기획·운영하면서 자신의 집필실과 집필 시간도 보장받을 수 있다는 조건이다. 이렇게 되면 일정 수입이 없는 작가들은 뜨내기 강연이나 단기 모집 강연 등에 에너지를 빼앗기지 않고 좀 더 긴 호흡으로 작품을 쓸 여유를 얻는다. '상주 작가'이므로 팬들도 좌표를 찍고 작가를 만나러 오기가 쉬워진다.
나는 그동안 에세이집과 작법서, 필사책 등 5권의 책을 냈고 지자체·도서관 등에서 글쓰기 강사로 활동했으며, 보령으로 내려온 후로는 도서관에서 기획자인 아내와 함께 인문학 강연이나 북토크 기획 및 진행을 여러 번 했고 반응도 좋았다. 신문·잡지에 칼럼도 계속 쓰고 있으며, 작년에는 문체부가 주관하는 ‘디딤돌 인문학’에 강사로 참여해 전국의 자활센터·교도소 등을 다니며 인문학 강연도 했다. 이 정도면 스펙은 차고 넘친다고 생각했다. 다만 나이와 지역이 문제였다. 나이가 많아서 부담스러워하면 어쩌지? 보령엔 해당기관이 없는데...... 지도서비스를 동원해 보령에서 가장 가까운 지역 세 곳에 지원서를 냈다. 자동차로 45분 걸리는 곳도 있고 1 시간, 1시간 15분에 닿는 곳도 있었다. '안 돼도 할 수 없지' 했는데 다행히 세 군데 다 서류 통과했다는 축하 메시지가 왔다.
그러나 '다행'은 거기까지였다. 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각각 진행된 면접에서 나는 '멘탈이 털리는 경험'을 여러 번 했다. 한 문학관은 2시까지 오라고 해서 갔는데 3시 30분에야 면접시험을 봤다. 내가 일곱 번째였다. 면접관들은 "어이구, 경력이 화려하시네."라고 내게 말을 붙였다. 하지만 그들은 내가 하겠다고 포부를 밝힌 주민 대상 문학 프로그램엔 별 관심이 없었다. 대신 '일을 하다가 내부 갈등이 생기면 어떻게 해결하냐?'나 '집에서 자동차로 얼마나 걸리냐?' 등 부리기 편한 나이나 지역을 연상케 하는 질문들을 주로 했다. 어떤 분은 "보령의 도서관에서 인문학 기획을 많이 하시면 바쁘시겠네?"라며 내가 뽑히지 않아도 될 이유를 유도심문하기도 했다. "여기는 일이 바빠서 개인 집필 시간을 갖기 힘들 수도 있는데요."라고 하는 분도 있었다. 갈등이 생기면 보편타당한 마인드로 의논하고 설득하는 수밖에 더 있겠나, 자차로 한 시간 내외이니 출퇴근은 문제없다, 더구나 나는 지각과 조퇴를 무척 싫어한다고 지원서에 쓰지 않았느냐, 도서관 인문학 기획은 겨울에 다 끝났고 이제 차례대로 시행만 하므로 전혀 바쁘지 않다...... 이런 답변을 하고 있는 내가 창피하고 비참했다.
그래도 면접이 끝날 때까지 분위기만은 화기애애한 편이었다. 한 심사위원은 "아니, 갑자기 편성준 씨가 유능해 보여서...'라고 농담을 하며 내 기대를 키웠고 다른 기관의 심사위원 중 한 분도 내가 마음에 든다며 나중에 따로 인터뷰하고 싶다는 의사를 밝혔다. 그래서 면접 직후 명함을 드렸더니 명함 이쁘다며 옆의 심사위원들에도 보여줬다. 속 없는 나는 "외람되지만 제가 직접 만든 이 명함을 한 장씩 드려도 되겠습니까?라고 묻고는 두 장의 수제 명함을 각각의 심사위원에게 건넸다. 결과적으로 다 불합격이었다. 두 번째 불합격 통지는 공교롭게도 토요일 오후 도서관에서 루리 작가 북토크 사회를 보다가 작가 특별 강연을 듣느라 잠시 앉은자리에서 확인했다. 그 후 행사를 어떻게 끝마쳤는지 모를 지경이었다. 불합격 통보 소식을 전해 들은 아내만 내내 불안한 눈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나는 문학 상주작가 지원사업이 나쁘다고 말하는 게 아니다. 취지는 좋은데 이 프로그램에 선정된 기관들이 너무 '흥분하셨다'는 걸 일러주는 것이다. 보령의 한 작가는 내가 상주작가 지원했다는 얘기를 듣더니 '내정해 놓고 면접 보는 곳도 있으니 조심하라'라고 충고했다. 그러나 맹세컨대 나는 세 군데 중 단 한 곳도 미리 정해 놓고 나를 떨어트리진 않았을 것이라 확신한다. 하지만 일단 만나보니 나이가 너무 많은 것 같아 이왕이면 '일 시키기 쉽고 말도 잘 통할 것 같은' 젊은 작가를 뽑고 싶어졌을 테고, 한 시간 거리에 있는 사람보다는 30분 내외에 있는 그 지역 출신 작가를 뽑고 싶어져 결국 그렇게 골랐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럴 줄 뻔히 알면서도 나이나 지역 제한을 하지 않은 건 '혹시 모든 게 압도적으로 뛰어나서 나이나 교통쯤은 가볍게 상쇄시킬 만한 인물이 올지도 몰라' 하고 문을 너무 확짝 열어둔 때문은 아니었을까? 마지막으로 말씀드린다. 김영하나 이동진이 가지 않는 한 그런 바람은 이루어지지 않을 것이고, 김영하나 이동진은 당연히 당신이 있는 곳으로 가지 않는다. 대신 나처럼 순진하게 지원했다가 마음 다치는 작가들만 계속 나타날 것이다. 그러니 고쳐야 할 것은 제도나 시스템이 아니라 '혹시나'와 '그래도에 잠식당한 당신의 마인드라는 말씀이다. 쓰다 보니 화가 나서 글이 좀 되바라졌지만 애써 고치고 싶진 않다. 죄송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