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편성준 Apr 07. 2019

슬픔을 정면으로 바라볼 때만 흘릴 수 있는 눈물

세월호 영화 [생일]

우리는 왜 살아가는 데 꼭 필요하지도 않은 것처럼 보이는 영화나 소설, 드라마를 보느라 귀중한 시간과 돈을 낭비하는 걸까요? 정확한 사실을 빠르게 알고 싶다면 인터넷 뉴스나 신문 기사 또는 그 사건에 관계된 보고서를 찾아보면 될 텐데 말이죠. 인류가 이런 '허구의 작품'을 꾸준히 찾는 이유는 아마도 몇 줄의 신문기사나 앵커의 멘트만으로는 알 수 없는 사건의 진실을 입체적으로 직접 느껴보고 싶은 원초적 욕망 때문일 것입니다. 즉, 육하원칙에 입각한 사건의 개요가 뼈대라면 드라마나 소설은 그 뼈대 위에 피와 살을 입혀서 체온이 흐르는 인간의 이야기로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어떤 사건을 만날 때 한 줄로 요약되는 제작 의도나 앙상한 컨셉보다는 우리처럼 오욕칠정을 가진 삼차원의 캐릭터가 살아서 숨을 쉬는 드라마로 보여질 때 비로소 더 큰 공감과 응원을 보내는 것입니다.

그러나 아무리 영화나 드라마가 힘이 세다고 해도 쉽게 손을 댈 수 없는 경우가 있습니다. 첫째는 사건 자체가 도저히 상식적으로 납득이 되지 않을 경우이고 두 번째는 아직도 그 사건의 자초지종이 제대로 규명되지 못한 경우입니다. 2014년 4월 16일, 대한민국에서 일어났던 '세월호 참사'가 바로 그런 경우일 것입니다. 인천에서 배를 타고 제주도로 수학여행을 떠났던 고등학생들이 천천히 가라앉아 수장되는 것을 전 국민이 TV 생중계로 지켜봐야 했던 이 어이없는 사건은 대한민국 전체를 헤어날 수 없는 죄책감과 트라우마로 빠트렸습니다.  전 국민이 노란 리본을 달고 애도를 했고 이 사건의 핵심에 있던 국정 책임자들이 줄줄이 탄핵되거나 감옥으로 향했지만 한쪽에서는 세금도둑 운운하며  '언제까지 추도만 할 것인가. 지겨우니 이제 그만 하자'라는 야멸찬 반응을 보이기도 합니다. 이런 상황에서 그 누가 세월호에 대한 이야기를 영화로 만들겠다고 선뜻 나설 수 있었을까요.

<치유공간 이웃>의 생일모임을 모티브로 삼은 영화 [생일]이 4월 3일 개봉했습니다. 이 이야기는 세월호 사건 당시의 이야기를 보여주지 않습니다. 그때의 상황은 전도연의 스마트폰에 들어있는 카톡 메시지 몇 개로 스쳐 지나갈 뿐, 영화는 그 사건이 있은 후부터 지금까지 같이 죽지 못하고 살아남은 유족들은 과연 어떻게 살고 있나에 초점을 맞춥니다.  다시 한번 반복하자면 이 영화는 '304명 사망'이라는 차가운 글자의 추상성으로는 알 수 없는 슬픔을 개별화해서 살아남은 자들의 고통과 그들을 지켜보는 사람들, 그리고 앞으로 살아야 할 우리들 삶의 지표까지 유추해 보는 위로와 치유의 과정인 것입니다.

세월호 사건이 있을 당시 피치 못할 사정으로 외국에 체류하느라 아들의 죽음을 지켜보지 못했던 아버지 정일이 뒤늦게 귀국을 하는 장면으로 영화는 시작합니다. 아내 순남의 냉담한 반응을 통해 그가 깨달은 것은 자기가 어떤 노력을 하더라도 그들은 절대 예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뼈아픈 사실뿐입니다. 오빠의 죽음 이후 갯벌은 물론 욕조 안에도 들어가지 못하는 어린 딸 예솔이 자신에게 조금씩 마음을 열어가는 것에 희망을 느낀 정일은 어느 날 옆집 아줌마의 주선으로 죽은 아들 수호의 생일잔치를 하겠다는 사람들을 만나게 됩니다. 아이가 없는 생일모임을 왜 하는 것일까. 정일은 아이에 대해 얘기를 해달라는 그들의 요구에 자신이 제대로 해줄 수 있는 얘기가 없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닫고 순남에게 생일모임을 하자고 말합니다.

전도연, 설경구가 아니었으면 이 영화가 가능했을까요. <치유공간 이웃>에서 '설거지도 하고 사진도 찍어드리는 일'을 했던 이종언이 아니었다면 이 영화의 시나리오가 쓰여질 수 있었을까요. 번번이 인간의 비루함을 파고들어 보석 같은 진실을 캐내는 제작자 이창동이 아니었다면 이 영화가 극장에 걸릴 수나 있었을까요.  저희 부부는 예고편을 보는 순간부터 눈물이 그렁그렁해져서 영화를 보러 가기까지 참 많이 망설여야 했습니다. 그리고 예상대로 영화를 보는 내내 너무나 많이 울기도 했습니다. 세월호 참사에서 변을 당한 한 여교사의 아버지가 너무 많이 울어 성대가 다 망가지는 바람에 언어를 잃었다는 소리를 들은 기억이 있는데 정말 그게 가능할 것 같다는 생각까지  했습니다. 그러나 그 울음에 고통과 죄책감만 있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막연히 상상만 하고 있던 세월호 유족들의 모습이 정일, 순남, 예솔이 등으로 살아나 눈앞에 펼쳐지자 드디어 그들을 정면으로 바라봄으로써 얻게 되는 위로와 연민의 시간이기도 했습니다.

아무리 잘해도 자랑스러워하거나 뿌듯해지기 힘든 역할에 기꺼이 도전해 준 전도연 설경구 두 배우에게 뜨거운 박수를 보냅니다. 그리고 무거움에 짓눌릴 수도 있었던 작품에 '현관센서등' 같은 아이디어로 영화에 따뜻한 활기를 불어넣어준 이종언 감독도 고맙습니다. 특히 영화 마지막 30분 간, 롱테이크로 재현된 생일모임 장면은 오랫동안 잊을 수 없을 듯합니다. 토요일 조조라고는 해도 너무나 많이 비어있던 객석 때문에 조금 걱정이 되기도 했습니다. 우리 부부는 눈물 콧물에 뒤범벅되어 극장을 나왔지만 이 영화를 보기를 정말 잘했다고 생각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흘린 것은 단순한 눈물이 아니라 누군가의 슬픔을 정면으로 바라볼 때만 느낄 수 있는 따뜻한 카타르시스의 경험이기도 했기 때문입니다. 두려워하지 말고 극장으로 가십시오. 이 영화는 슬픔으로 당신을 고문하거나 한숨으로 찌르는 대신 우리가 함께 살아갈 수 있는 희망 한자락을 던져주는 따뜻하고 어진 작품이니까요.


작가의 이전글 토요일, 남산길을 걷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