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편성준 Jul 30. 2021

행복은 기억력과 관계가 있다

어쩌면 행복의 비결은 쉽습니다

나는 제법 인복이 있는 편이다.  다소 게으르고 별 야망이 없는 내가 오늘날까지 그럭저럭 살아온 이력에는 수많은 사람들의 도움이 있었다고 봐야 한다. 나는 다른 능력도 골고루 타고나지 못했지만 특히 위기 대처 능력이 없기로 유명한데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동안 별 탈 없이 살아올 수 있었던 것은 결정적인 순간마다 누군가 나타나서 도와주었기 때문이다. 정말이다. 작은 광고 사무실에 다니다가 MBC애드컴이라는 첫 광고대행사로 이직할 때는 그때까지 그렇게 가깝다고 할 수 없었던 대학 동아리 뚜라미 후배가 큰 도움을 주었고, 회사를 그만두고 생계가 막막해져 '실력 있는 카피라이터가 놀고 있습니다'라는  구직 메시지를 페이스북 담벼락에 올렸을 때도 주변 사람들의 호의 덕분에 재기할 수 있었다.  심지어 윤혜자라는 여자는 나와 거의 상관이 없는 사람이었는데 갑자기 나타나 나를 북돋아 주었고 결국 아내가 되어 지금도 내가 새로운 삶을 살 수 있도록 옆에서 기획자 역할을 해주고 있다.


내가  인복이 좋은 이유는 어쩌면 단순하다. 첫째는 그야말로 타고 난 인복이 좋은 것이고, 또 하나는 사람 사이에서 생긴 나쁜 일들을 곧잘 잊는다는 것이다. 나에게도 악연은 많았다. 이십여 년 전 천만 원이라는 거액의 신용 보증을 서게 하고 도망친 직장 동료가 두 명이나 있었고, 두 남자 사이에서 양다리를 걸치다가 내 약점을 잡은 뒤 그걸 핑계로 나를 차 버린 여자도 있었다. 돈을 불려 주겠다며 내 통장에서 거액을 가져간 후 연락이 끊긴 여자도 있었다. 그 밖에도 최근까지 내가 하는 일마다 못마땅해하고 내 글을 마음에 들어 하지 않다가 결국은 절연을 한 친구도 있었다. 그러나 나는 지금 그 사람들을 기억하지 않는다. 오늘 이 글을 쓰려고 새삼 기억을 떠올렸을 뿐이다. 어차피 그 사람들은 나와 안 맞는 사람들이었던 것이다. 나는 이미 이 사람들을 잊었고 그저 그 사람들이 잘 살아 주었으면 하고 바랄 뿐이다. 그들이 더 잘 살기를 원하는 이유는 그래야 나를 덜 미워할 것 같기 때문이다. 만약 사는 게 시원치 않으면 두고두고 나를 원망할지도 모르지 않나.


사람의 행복은 기억과 관계가 많다. 나는  이렇게 운이 없는 걸까,라고 평소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다시 한번 자신을 객관적으로 바라볼 것을 권한다. 혹시 내가 좋은 사람과의 일보다는 나쁜 사람과 있었던 나쁜 일만 자꾸 되새김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말이다. 분명히 말하지만 행복은 좋은 기억 쪽에 있다. 이건 달걀이 타원형인 것만큼이나 분명하다.

매거진의 이전글 커피와 김밥, 책이 있는 금요일 아침의 실수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