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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편성준 Jul 17. 2021

커피와 김밥, 책이 있는 금요일 아침의 실수담

어제는 아침에 마당 캠핑의자를 펴고 앉아 권은중 작가의 『볼로냐, 붉은 길에서 인문학을 만나다』를 읽었다. 권은중은 한겨레에서 기자로 일하다가 나이 오십 줄에 요리가 좋아 이탈리아로 요리 유학을 떠났는데 공부를 끝내고도 바로 돌아오지 않고 시칠리아와 볼로냐를 한 달씩 여행한 뒤 볼로냐의 음식과 사람들에 매료되어 이 책을 쓰게 된 것이다. 책은 몹시 흥미롭고 술술 읽혔지만 커피가 몹시 마시고 싶어져 잠깐 책을 덮고 세븐일레븐으로 커피를 사러 갔다. 내가 들어섰을 때 사장님은 카트에 종이박스를 싣고 다니는 동네 할머니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이제 어디로 가셔?" 사장님이 웃으며 물었다.

"집으로 가야지." 할머니가 대답했다.

"신랑도 없는데 집엔 가서 뭐하게?"

사장님이 눈웃음을 지으며 묻자 할머니가 농담을 했다.

"내가 이불 밑에 다른 신랑을 하나 묻어 놓고 왔거든."

"하하. 그럼 새 신랑 만나러 가셔?"

"응."

"네. 안녕히 가세요."

친구처럼 이야기를 주고받던 할머니가 나가자 사장님이 얕게 한숨은 내쉬었다.

"저 할머니 너무 안 되셨어요. 할아버지가 요양원에 가 계신데 요즘은 면회도 안 되고..."


사연인즉슨 할머니의 남편 분이 치매를 앓고 있었는데 얼마 전엔 섬망 증세까지 보이고 급기야 칼을 들고 폭력을 휘두르는 바람에 황급히 요양원에 입원을 시켰다는 것이다. 그런데 요즘은 코로나 19 때문에 면회도 할 수 없고 할머니가 마지막으로 할아버지에게 들은 말은 "곧 제대하니까 조금만 기다려."였다고 한다. 할아버지는 자신이 이십 대 젊은이이고 지금은 군 복무를 하고 있다고 여기는 듯했다. 사장님은 웃으며 얘기를 했지만 사연을 듣고 나니 마음이 쓸쓸해졌다. 그 할아버지는 제대하고 나면 뭘 하고 싶은 걸까, 할아버지가 살고 있는 시대는 언제쯤일까 등등을 생각하며 편의점을 나왔다.  


집에 와서 커피를 마시며 다시 책을 한 시간 정도 읽고 나니 배가 고파졌다. 마침 일어난 아내에게 "여보, 나 갑자기 김밥이 너무 먹고 싶어서 영아네김밥에 좀 갔다 올게."라고 말했다. 아침에 병원에 가서 알레르기 검사를 받아야 한다던 아내는 외출 준비를 하러 욕실로 들어가고 그 사이에 나는 밖으로 나왔다.

영아네김밥 김밥에 가서 햄이 든 김밥과 햄을 뺀 김밥을 각각 한 줄씩 시켰더니 사장님이 내 티셔츠를 가리키며 "그건 패션이에요?"라고 물었다. 오른쪽 옆구리를 보니 하얀 라벨이 붙어 있었다. 티셔츠를 뒤집어 입은 것이었다. 나는 화장실에 들어가 때 옷을 홀딱 벗는 버릇이 있는데 아마 나오기 직전에 화장실에 갔던 때 뒤집힌 것 같았다. 패션은 무슨 패션이냐고, 부주의로 뒤집어 입은 거라고 말하며 지갑을 뒤지니 신용카드가 없었다. 세븐일레븐에서 커피를 사며 이야기에 열중하느라 카드를 그대로 단말기에 꽂아놓고 온 것 같았다. 마침 지갑에 카카오뱅크 카드가 있어서 그걸로 계산을 하고 사장님이 싸준 김밥을 들고 급하게 편의점으로 달려가니 마침 퇴근하느라 썬글라스를 쓰고 가게 문을 나서던 사장님이 "카드 가져가셔."라고 말하며 손짓을 했다. 고맙다고 말하며 편의점 문을 열고 들어가니 다음 근무자인 사장님의 처제분께서 내 신용카드를 내밀었다. 

집으로 돌아와 김밥을 접시에 담아 아내에게 내밀며 티셔츠 뒤집어 입은 얘기를 했다. 아내가 별일 아니라는 듯이 피식 웃길래 신용카드 얘기는 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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