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니(Money) 그 참을 수 없는 가벼움
모든 아침은 그 나름의 바쁨이 있다. 나의 아침도 보편적으로 정신없이 바쁜 편인데, 요즘 하나의 루틴이 더 늘었다. 출근 후 업무에 들어가기 전에 참새의 방앗간 같이 꼭 들러야하는 주식앱이 새로 생긴 아침 루틴이다. 주식을 시작한지도 벌써 세 달째. 돈에는 별로 관심이 없던 20대 중반을 지나 서른을 앞둔 지금, 나의 관심사 목록엔 '불로소득'이라는 항목이 하나 더 생겼다.
돈을 번다는 것은 항상 노동이 따르는 일이었다. 일하지 않는 사람 먹지도 말라는 성경 데살로니가 후서의 구절을 철썩같이 믿었으며, 어둔 밤 쉬되리니 찬 이슬 맺힐 때 일어나 힘써 일하는 삶을 꿈꾸었다.(물론 게을러서 찬이슬 맺힐 때 일어나는 건 일 년에 한두번 있을까 말까한 일이다.) 대학교에 입학과 동시에 '경제적 독립'이 하나의 목표였던 과거의 나는 참 열심히도 일했다. 대학 2학년을 마치며 영국으로 워킹홀리데이를 떠나기로 했다. 스무살이 된 이후에 염불처럼 외웠던 경제적 독립과 부모님으로 부터의 정신적 독립을 위해 내가 모은 돈으로 떠나는 것이 목표였다. 세상은 역시나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비행기 값만해도 백만원이 넘어가고 초반 정착 자금만 대충 따져봐도 5~6백만원이 넘어갔다. 알바로 쫌쫌따리 한달에 50~70만원씩 벌어서는 단기간에 모을 수 없는 큰 금액이었다. 그래서 내 인생 최초 돈을 쓰기 위해 돈을 버는 기간을 가졌다. 일 년동안 천만원을 모으기로 다짐한 것이다.
투잡으론 부족해서 쓰리잡을 뛰며 일년동안 정말 개같이 벌었다. 카페, 식당 아르바이트부터 과외 선생까지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돈이 되는 일이라면 열심히 했다. 일 년이 조금 안되는 기간 동안 천만원을 모았다. 내 생에 처음 맛보는 금전적인 성취였다. 손에 천만원을 쥐고 떠난 영국은 상상 이상으로 멋진 곳이었고 유럽 여행에 대한 갈망은 더더욱 커졌다. 하지만 영국에서도 노동은 계속되었다. 여행가는 것을 제외하곤 쉬지 않고 일하고 돈을 모았다. 그리고 모은 돈으로 여행을 떠났다. 보람과 행복은 여행을 할 때, 즉 돈을 쓸 때만 느낄 수 있었다. 어딜가도 노동의 괴로움은 나를 따라다녔고 한국에 와서도 그 괴로움은 끝나지 않았다.
졸업 후 첫 직장을 다니면서 작고 소중한 월급에 대한 좌절의 역사가 시작되었다. 하고싶었고 잘 할 수 있는 일을 했다. 보람도 있었고 성취감도 있었으나 너무나 적은 월급은 때때로 나를 소심하고 쪼잔한 인간으로 만들었다. 일을 해도 채워지지 않는 독에 물을 부으며 생활고 아닌 생활고를 느꼈다. 이전처럼 투잡을 뛰어볼까 고민도했지만 고된 하루하루에 다른 일이 끼어들 틈따윈 없었다. 맥시멀리스트였던 나는 강제적으로 미니멀리스트가 되어갔다. 사고싶은 것이 있어도 통장 잔고를 보며 꾹 참았고, 오늘 마시고 싶은 커피를 내일로 미뤘다. 되도록 비싼 가구나 비싼 옷은 사지 않았다. 나중에 다 짐이 될거야하며 사고싶은 욕구를 꾹꾹 눌러 담았다. 2년간의 직장생활을 마치며 내 손엔 천만원이 조금 안되는 돈이 쥐어져있었다. 통장에 찍혀있는 잔고를 보며 '이게 다 무슨 소용일까'하며 마치 여태 모았던 돈이 진짜 돈이 아닌 사이버 머니처럼 느껴졌다. 천만원. 대학생이었던 그 때나, 직장인인 지금이나 노동으로 벌긴 매우 힘들지만 사회적 가치를 따진다면 높지 않은 딱 그만큼의 금액. 이 순간 이때까지 노동으로 버는 돈이 정정당당하다며 돈에 관심없는 척 하는 내 모습에 취해 살아왔음을 인정하고 본격적으로 돈에 대해 솔직해지는 시기가 된 것이다.
사전에 불로소득의 의미를 찾아보았다. 노동의 댓가로 얻는 임금과 보수를 제외한 소득을 의미한다. 참 아름다운 말이지 않은가? 노동을 통하지 않은 소득이라는 말 자체가 유니콘처럼 느껴졌다. 노동으로만 돈을 벌어왔기 때문에 노동을 제외한 다른 곳에의 소득은 나에겐 해당하지 않는 것 같았다. 하지만 한 해, 두 해 노동으로는 절대 이루어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 내집마련의 꿈. 그리고 노동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돈에 쫓기듯 살아야하는 생활을 그 누구도 달갑게 여기진 않을거다. 무엇이 나를 이렇게 만들었는지 조금 서글퍼지기도 했지만, 세상에 잘 적응하고 있는 것이라 위안 삼았다. 불로소득에 관심이 많아지기 시작하니 예전에는 안보이던 것들이 보였다. 청약주택, 주식, 부동산 등 소위 아저씨, 아줌마의 영역에 관심이 생겼다. 이렇게 어른이 되는 것이구나 느꼈다.
주식을 시작하고 나서 소소하게 돈이 쌓이는 것을 보며 노동의 참된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된다. 한편으론 하루 커피값만 벌자며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했지만, 이런 저런 주식 정보 카톡방이나 게시판을 왔다갔다하며 얼마나 돈을 벌었다, 얼마나 잃었다라는 식의 글들을 보며 진정한 돈의 의미는 무엇인지 생각해보게 되었다. 물론 주식을 통해 작게나마 번 돈들은 잠시나마 나를 행복하게 만들어줬다. 사무실에 앉아서 하루종일 노동하며 번 돈이 아닌, 투자를 통해 번 돈이라는 것이 굉장히 크게 다가왔다. 동시에 잘못된 투자로 여태 모아왔던 돈을 한꺼번에 잃을 수도 있겠구나 하는 두려움을 느꼈다. 이렇듯 돈은 내 삶에서 떼어놓을 수 없는 존재이다.
노동도 그러할까? 아직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지는 못했다. 그러나 나는 종국에는 노동해도 슬프지 않은 사회에 살고싶다. 정의구현따위의 높은 목표는 바라지도 않으니 노동으로 먹고 살 수 있는 사회에 살고싶다. 매일매일 차곡차곡 통장에 돈을 모아가는 재미를 느끼는 삶, 그런 삶을 살고 싶다. 사회 압박에 마지못해 미니멀리스트가 되거나 돈 때문에 내 앞에 굴러들어온 기회를 포기하기엔 아직 너무 억울하다. 충분한 어른이 되면 생각이 달라질까? 일인분의 역할을 하며 사회가 바라는 어른이 되기엔 아직 이른 것 같다. 일인분의 몫을 해낼 순 없더라도 노동의 즐거움을 아는 젊음이 되고 싶다. 나와 비슷한 생각을 가진 젊은이들이 좌절하지 않는 세상을 요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