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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뉴 Feb 29. 2024

독립출판물들이 벌이는 축제의 장

생애 첫 북페스타 참가 후기

독립출판 북페어에 처음 가 본 건 지난해 가을, 홍대 인근에서 열렸던 '퍼블리셔스 테이블' 행사였어요.

독립출판 및 1인출판물들을 위한 행사들이 있다는 것 자체를 모르고 살아왔던 제가, 독립출판을 시작하며 새로운 세상을 알아가고 있는 중이에요. 역시, 어떤 대상으로 향하는 (깊은) 관심은 우리를 또 다른 세상으로 이끌어주는 것 같아요. 존재하고 있지만, 자신을 모르는 어떤 이에게는 그 모습을 보여줄 생각조차 하지 않는, 가치로운 세상 말이에요.



지난해에는 독자의 입장에서 가벼운 마음으로 짝꿍과 함께 북페어 행사장을 찾았어요. 우리 둘 다 책을 좋아하지만, 이런 세계가 있다는 걸 몰랐던 입장에서 '서울국제도서전' 같은, 대형 출판사의 출판물을 주로 다루는 책박람회만 다녀보았던 터라 무척 신기하고 흥미로운 경험이었어요. 날씨마저 따사로웠던 그날, 처음 보는 다양하고 기발한 독립출판물, 평소에 보기 힘든, 책을 사랑하는 이들로 가득한 풍경 속에서 '분위기 뽕'을 맞았던 우리 커플은, 들고 있던 가방이 배불뚝이가 될 정도로 책을 한가득 끌어안고 신이 나서 집으로 돌아왔더랬죠.



사실, 이제 겨우 책 한 권을 출판한 입장에서 행사 참여를 하는 게 맞을까 고민도 되었어요. 주최 측에서도, 책이 한 권인데 테이블 세팅에 문제가 없겠냐며 우려 섞인 메일을 보내오기도 했었고요. (막상 현장에 가보니 테이블이 협소해 공간이 부족할 지경이었습니다만 ㅎㅎ) 하지만, 제 마음이 가는 대로 해 보자는 생각이 들었어요. 일단 무슨 일이든 해 봐야 그다음 단계의 길이 보인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기도 하고요.



사흘동안 이어진 행사를 마친 지금, 육체적으로는 피곤하고 힘들지만 용기 내어 참가하길 정말 잘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판매고가 좋아서 그런 건 아니고요, 책을 아끼는 사람들 사이에서 느꼈던 여러 감정들이 따스하게 마음에 남아 그런 것 같아요.



독립출판 북페어에 가본 이들은 아시겠지만, 이곳에는 아이디어가 반짝이는 작품들이 정말 많아요. 같은 참가자 입장에서도 '아니, 어떻게 저런 생각을 했지?!' 하는 마음에 쓸어 담아 오고 싶은 책이 한 두 권이 아니었답니다. 일단 저의 최대 약점 중 하나인, 그림이 예쁜 책들이 지천으로 풍년이었어요. 제 책을 소개하고 판매하겠다고 나간 자리에서 다른 참가자들의 작품을 보고 감탄하며 곁눈질로 훔쳐보기 바빴답니다.



참가자들은 대부분 20대에서 30대 초반 정도의 젊은 분들이었던 것 같지만, 때때로 저처럼 아이 엄마의 포스를 풍기는 분도 있었어요. 제 양쪽 옆 테이블에 함께 했던 '부커(Booker) - 주최 측에서 붙인 참가자들의 호칭' 분들이랑 틈틈이 나눈 즐거운 대화는, 혹여 지루해질 틈을 메워주고, 제게 좋은 기운을 듬뿍 안겨주었답니다. 제 왼편으로는 홍대 시각디자인과 학생들이 군대에서 틈틈이 기록한 상념들을 귀여운 책으로 만들어 참가했고, 오른편에는 AI 기술을 접목한, 모던하고 혁신적 느낌의 그림책을 가지고 온 주부 참가자분이 함께 했어요.



휴일을 맞아 인근 연남동이나 홍대 근처로 나온 분들이 행사장에 들르신 건지, 꽤 많은 관람객들이 오셔서 사흘 내내 북페어 현장에는 활기가 넘쳐흘렀어요. 그렇다고 실질적으로 책을 사가는 분들이 많지는 않았지만요. 일종의 데이트 코스로, 휴일의 즐거운 체험 현장으로 생각하고 방문하는 경우가 대다수인 것 같았어요. 관람객들은 저마다 신기해하는 표정으로 책을 들여다 보고, 부커들에게 이런저런 질문을 하며 부스들 사이를 유유자적 거닐었는데요, 한 가지 공통점은 그 얼굴들에 담겨있던 '행복한 미소'였어요. 관람객들이 그러한 미소를 지을 수 있는 시간을 제공한 부커의 일원으로 그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는 사실 자체가 제겐 감동으로 다가왔고요.

어설픈 캘리그래피로 나름 열심히 꾸며본 테이블

휴일 내내 부스를 지키고 있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었어요. 행사가 시작되기 전날 밤에는 잠도 설칠 만큼 긴장되고 걱정스럽기도 했고요. 하지만, 그렇게 조마조마한 마음을 견디고 맞이한 사흘은 버티고 용기 내어볼, 충분한 가치가 있었어요. 그렇지 않았다면, 독립출판 행사 참가자로서만 경험하고 느낄 수 있을 그 많은 것들을 결코 얻을 수 없었을 테니까요.



신기한 에피소드가 있었어요. 주부로 보이는 어떤 분이 제 부스를 지나쳐 가려다 제 책 표지에 이끌렸는지, 환한 표정으로 책을 집어 들어 펼쳐 보았어요. 대부분의 관람객들은 밝은 얼굴로 감탄사를 내뱉다가도 '잘 봤습니다.'란 말과 함께 부스를 떠나기 마련이었는데, 어쩐지 그분은 책장 하나하나를 넘기며 눈이 점점 더 튀어나올 듯 커지는 거였어요. '왜 저런 표정을 짓고 있는 걸까' 궁금해하고 있던 차에, 그분이 좀 더 둥그레진 눈을 하고 제게 질문을 던졌어요.


  "혹시 주인공 수진이의 직업이 뭐예요?" (제 소설 주인공 중에 '수진'이가 등장해요)

  "전업주부예요."

  "우와! 소~오름! 이러면 제가 이 책을 안 살 수가 없잖아요!"

순간 무슨 일인가 하고 이번에는 제 눈이 동그래지는 찰나, 그분이 말씀하셨어요.

  "저도 전업주부 수진이에다가, 제 딸 이름도 '유주'예요!"

그분은 제 소설 속 주인공 수진이가 전업주부이고, 딸 이름도 '유주'인 사실을 발견하고는 무척 놀랐던 거였어요.

  "혹시 주변에 이런 분이 계시는 건가요?"

  "아니요. 제가 만들어 낸 인물이에요."

  "와.. 이 책을 제 이야기로 간직해야겠어요."

이 얘기에 탄력 받은 제가 한술 더 떠,

  "혹시 둘째 낳게 되시면 아들이 아닐까 싶어요. 소설 속 수진이의 둘째가 아들인데 이름이 '우주'예요."

내 말에 햇살이라도 머금은 얼굴이 된 그분은, 어린 딸램의 현금 용돈까지 빼앗아서 제 책을 사가는 기염(?)을 토하셨답니다. 현실에서 이런 일이 발생할 확률이 과연 얼마나 될까, 궁금해지는 순간이었어요.



책을 판매하는 자리였지만, 금전적 욕심을 초월한 듯한, 자신이 사랑하는 것을 지키기 위해 애쓰는 모습들이 무척 인상 깊었어요. 그림이 들어가는 책이 많은 독립출판물인지라 책 인쇄 비용이 만만치 않은데요, 그럼에도 독자들에게 큰 부담을 줄 수는 없기에 정가를 그리 높게 책정하지는 못하는 상황이에요. 그런 와중에도, 그림의 아름다운 본모습을 조금이라도 퇴색시키지 않기 위해, 자신의 경제적 이익을 포기하고서라도 퀄리티 있는 책을 만들어내려는 그 의지와 마음이 너무도 소중했어요. 자본주의가 팽배한 이 사회에서 찾아보기 힘든 마음이라 더더욱이요. 이런 분들이 만들어낸, 아름다운 그림들로 가득한 책들 속에서, 텍스트 위주의 제 책이 독자의 선택을 받았다는 사실 자체가 기적처럼 느껴졌어요. 이야기의 주인으로서, 처음부터 끝까지 오롯이 저의 아이디어와 자발적 행위들로 만들어 내놓은 책이라 그런지, 단 한 권을 팔아도 회사 월급일의 기쁨보다 훨씬 더 큰 ‘환희’가 느껴졌고요.



제 책이 새로운 주인을 찾아 부스를 떠나갔을 때, 옆 부스에서 조용히 박수를 쳐주던 이웃 부커님을 보면서는 순간 눈물이 왈칵 솟아 나오려 했어요. 구경하는 이는 많지만, 막상 지갑을 여는 경우는 흔치 않은 현장에서, 어떻게 보면 경쟁 관계일 수도 있는데, 제게 주어진 행운에 함께 기뻐해주는 그 마음을 어떻게 감히 세속적인 값어치로 매길 수 있을까요.



집에서 직접 구운 고구마를 들고 나를 찾아와 준 친구 가족, 이리저리 일 벌이며 뛰어다니는 십 년 전 담임선생님에게 힘을 실어주러 방문한 제자들, 오래전 함께 근무한 후배교사를 잊지 않고 멀리까지 찾아와 준 선생님, 행사진행을 도와주겠다며 한걸음에 달려와준 지인을 마주하며 내가 복이 많은 사람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게다가, 이전 ‘독립서점 방문 입고 후기’에서 소개드렸던, ‘쑬딴스 북카페’ 사장님, ‘빛나는 친구들’ 대표님과도 반갑게 인사 나눌 수 있어 무척 기뻤어요. 온통 책과 책을 사랑하는 이들로 둘러싸인 그곳이라서, 독립서점을 지키고 계시는 분들과의 만남이 더 감동스러웠던 것 같고요.



특히, 북페스타의 대미를 장식해 준 '램즈이어' 작가님에게 무한한 감사의 마음을 전해드리고 싶어요. 역시 큰 인물은 끝에 등장하는 것인가 봅니다. 처음에 작가님을 몰라 봤던 저는, 그때 제 부스에서 진행 중이던 이벤트 홍보를 열심히 해댔는데, 아니 글쎄, 저를 보러 오신 램즈이어 작가님이셨던 거예요. 나이 든 모습 보여주기 저어 되어 올까 말까 고민하셨다는데, 저는 작가님의 온화하고 기품 있는 아우라를 직접 대면해 놀랍고도 벅찬 마음이었어요. 한 주 한 주 버텨가고 있는 제 브런치 작가 생활에 작가님이 일 년 치 에너지를 충전해 주시는 것 같았고요. 작가님 말씀처럼, 처음 마주한 자리에서 쑥스러운 마음에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눠보지 못해 아쉬워요. 하지만 언젠가 또 좋은 기회가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우리 모두 글과 책으로 연결되어 있는 사람들이니까요.



사람을 가장 힘들 게 하는 것도, 가장 큰 힘과 기쁨을 주는 존재도 사람이라는 것을 다시금 깨닫게 된 사흘이었어요. 행사를 치르고 난 피곤한 육체에, 얼마 전 호기롭게 신청한, 다음 달에 있을 '제주북페어'에 가야 하나 어쩌나 주저되지만, 이 피곤이 가시고 나면 흡사 '산고'를 잊어버린, 귀여운 아이를 둔 엄마의 심정이 되어 신이 나서 제주로 향할 짐을 싸고 있을지도 모르겠어요.

책이, 책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저를 그리 만드는 것 같아요. 그런 의미에서, 책을 아끼는 이들로 가득한 이곳 브런치가 제게는 에너지원과도 같은 존재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네요.

행사 파장 직전, 다른 작가님에게서 황급히 구입한 아리따운 책과 굿즈. 자꾸만 보고 또 보게 되는..



제 소설 <나는 아미입니다>가 3월 한 달 동안 진행되는, 인디펍과 영풍문고가 함께 하는 독립출판 기획전 도서로 선정되었어요. 아래 다섯 군데 영풍문고 지점에서 전시, 판매될 예정이라고 합니다. 대형서점에 제 책이 깔린다는 생각은 미처 해보지 못했는데, 운 좋게 더 많은 독자들과 만나는 기회를 얻어 기쁜 마음입니다.
혹시 근처에 들르실 일 있으면 이런 기획도 있구나, 둘러보시고 기획전 코너에서 독자를 하염없이 기다리고 있을 제 책도 한 번 들여다봐 주시면, 이 아이가 무척 기뻐할 것 같습니다.^^


 * 해당 영풍문고 지점  

- 종각종로본점

- 분당 서현점

- 동탄 롯데점

- 광복 롯데점(부산)

- 광주터미널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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