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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뉴 Jan 23. 2024

민들레 책밭으로 놀러 오세요

<책방에 있다 보니 하고 싶은 말이 많아집니다>를 읽고

동네 한켠의 자그마한 책방에도 책만 있는 것은 아니다. 책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있고, 그들이 뿜어내는 향기와 온정이 있다.

지역주민들의 삶이 오롯이 녹아 있는 그곳은 그 자체로 친근하고 다정한 동네 친구이자, 나와 마음을 나누는 독서 메이트를 품어주는 곳이기도 하다. <데미안>이 제시하는 사유의 숲을 헤매다가도 이내 정겨움 가득한 감자향을 마음껏 들이켜는 이 작은 공간에서, 사람들 간의 인연이 '닿음'과 '놓음'을 반복하며 느릿한 시간 속을 여유롭게 흘러간다. 이곳을 스쳐가는 모든 것은 고유한 음과 리듬을 잃지 않고, 반짝반짝 생기 넘치는 마음으로 유유자적 나그네 걸음을 한다.



<책방에 있다 보니 하고 싶은 말이 많아집니다>의 저자 육현희는, 얼마 전 창원 가로수길에 문을 연, 이름도 모습도 어여쁜 '민들레책밭' 주인장이다. 잘 나가던 수학교습소를 접고, 뒤늦게 문헌정보학을 전공하여 도서관 사서의 꿈을 키웠던 저자는, 공무원 시험에 좌절하고 심적인 방황을 겪었으나, 책을 사랑하는 마음을 잊지 않고 서점지기가 되기에 이르렀다. 하루 4만 원의 매출에 그 누구보다 부자의 마음이 되어, '장사가 잘 되고 있는 거 맞냐?'는 지인의 물음에 행복한 미소를 지어 보인다. 지인으로부터 책방으로 도착한 감자가 퍼뜨리는 긍정적 에너지의 힘을 아는 저자는, 책방을 들르는 사람들에게 내어줄 마음에 대해 깊이 살피며, 결국엔 '좋은 사람들이 항상 모이는 책방'을 만들고 있다.



일상의 많은 것들이 숫자와 손익계산서로 결정되는 물질 사회에서, 걱정거리가 보송보송하게 마르고, 애써 눌러왔던 슬픔도 아낌없이 위로받는 그녀의 서점은, 그 어떤 숫자로도 치환될 수 없는 가치를 실현하고 있다. 저자가 마련한 공간에 닿은 발걸음에, '작은 무언가라도 하나 심어 가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정성스럽고도 부지런히 씨앗을 심고 퍼뜨리며 그것이 건강하게 자라도록 따스한 온기를 얹는다.



저자만의 시선과 통찰이 담긴, 다양한 책 소개글에서 우리는 뭉근한 사유를 통해 깊은 치유와 위로를 경험한다. 나이 듦에 대한 두려움이 노년을 청년의 결핍으로 여기는 것으로부터 온다는 사실을 배운다. 기쁜 마음으로 건강한 노년을 맞기 위해 끊임없이 탐구하며, 지성에 닿아 있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을 깨우친다. 비록 물 흐르듯 '사는' 삶이 아닌, 버티고 견디며 '살아내는' 삶을 살지라도, 책이 내는 밭고랑을 따라가다 보면 조금 더 행복해진 나를 찾아가도록 살포시 등을 두드려주는 손길을 만날 수 있다. 우리는 저자가 소개하는 책을 더 깊이 들여다보고 싶은 욕망을 꺼내놓으며, 나 자신을 온전히 신뢰하며 한 발 한 발 앞으로 나아가리라는 다짐을 하게 된다.



최근 여러 가지 악재로 좌절감을 느끼고 있었던 나는, 이 책을 통해 뜻하지 않은 조언과 치유를 얻었다.

지금 내가 서 있는 이곳이 나를 힘들게 만들더라도 꿋꿋이 한 발 나아가보는 용기의 가치를, 두려움과 힘겨움을 극복하고 내딛는 그 마음의 소중함을,  나 자신에게 가장 큰 선물을 줄 수 있는 사람은 결국 나 자신임을, 그러한 깨달음은 책 속에 펼쳐진 무한한 세계 속에 풍요롭게 숨어있다는 것을 깨달으며, 움츠렸던 마음에 기지개를 켰다.



책의 마지막 장을 덮는 내 머릿속에는 비 온 뒤의 상그러운 무지개가, 고단한 하루를 끝낸 후 기울이는 한 잔의 와인이, 내 품을 파고드는 반려새들의 고소한 체취가 떠올랐고, 입가엔 살포시 미소가 올라왔다.


가지지 못한 것이 많고, 훼손되기만 했다고 여겨지는 생에서도, 노래를 부르기로 선택했다면 그 가슴에선 노래가 산다.



나는 저자가 인용한 책 속의 보물 같은 글귀를 떠올리며, 풍요로움이 움트는 마음은, 타인에게 건네주고 싶은 말이 많을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수긍하고야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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