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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뉴 May 27. 2024

컴퓨터를 옮기니 아이가 자란다

마침내, 아들 녀석이 기다리고 고대하던 '그날'이 왔다.

그날, 아들램과 나는, 녀석의 재산 제1호인, 거실에 있던 컴퓨터와 주변 기기들을 본인의 방으로 이주시켰다. 몇 년간 거실 한 자리를 꿰차고 있던 기기들을 들어내자, 마치 오래된 칡덩굴처럼 자질구레하게 얽혀있는 선들과 미처 치워내지 못한 케케묵은 먼지가 가득했고, 상황은 단순히 가전제품의 이동을 넘어 대대적인 청소작업으로까지 이어졌다. 우리는 코바늘에 엉킨 뜨개실처럼 섬세하게 꼬여있는 선들을 하나하나 풀어내고, 구석구석 화석처럼 뭉쳐있는 먼지를 닦아냈다. 이윽고 아들램의 방에서 컴퓨터와 모니터 선들을 깔끔하게 정리해 다시 연결하려던 어느 순간, 나는 나와 아들이 무언가 큰 변화의 기로에 있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아들램이 본격적으로 거실에서 컴퓨터를 사용한 건 3년 전이었다. 짝꿍과 나에게 지난 3년은 별다른 변화 없이 훅, 지나가는 세월이었던 것 같지만, 아들 녀석은 완전히 다른 시간을 살고 있었던 모양이다. 3년 전, 갓 꼬꼬마 어린이에서 벗어난 듯했던 외모와 아이 특유의, 사랑스럽게 더듬거리던 말투는 이제 아들에게서 그 흔적을 찾아볼 수가 없다. 올해 어린이날, '어린이날 행사'에 참여해 보자는 내게 난처한 표정으로, "엄마, 난 이제 그런 곳에 가기에는 너무 컸어."라고 말했던 아들은 지금, 어른이 되기 위한 준비단계로 빠르게 진화해가고 있는 중이다.



그럼에도 부모인 나와 짝꿍은 아들을 우리 통제 아래 두고 싶어 했던 것 같다.

녀석이, "나도 누나처럼 컴퓨터를 내 방으로 옮기고 싶어."라고 말할 때면,

"안 돼! 그러다가 너 심각한 게임중독에 빠질 수도 있어."라고 답하며, 아들이 우리 시야 안에 더 머물러 있을 것을 강요했고, 더 이상의 이의 제기를 원천봉쇄시키려 들었다.



물론, 우리의 말은 진심이었다. 하지만 곰곰이 돌이켜 보면, 과연 그 마음이 다였을까 싶다. 게임중독자가 되면 안 된다고 지겹도록 말하고, 때론 소리를 높이면서도, 정작 우리는 아이가 게임 대신 그 시간을 채워나갈 다른 대안을 갖도록 돕지도, 특별히 관심을 기울이지도 않았다. 우리는 그저 '아이가 하지 말았으면 하는 것을 못하도록 제재하면 그것으로 충분'하리라 철석같이 믿는 사람들처럼 굴었다. 그 시간이 꽤 길었고, 엄마 아빠 말을 고분고분 수용하기에 아이는 너무 커버렸다.



그러다 급기야 며칠 전, 아들 녀석이 쭈뼛거리면서도 비장한 표정으로 내게 종이 한 장을 들이밀었다.
그곳에는 ‘부모님에게 내가 바라는 것'이라는 제목 아래에서, 몇 줄에 걸쳐 빼곡히 들어앉은 녀석의 글씨들이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아들은 그것이 학교 숙제이며, 자신의 바람에 대한 엄마의 답변을 적어서 제출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고 보니 최근 들어 아들램은, 지난 크리스마스 때 온전히 받지 못한 선물을 소급해서 주면 안 되겠냐고 계속 졸라댔는데, 다 뜻한 바가 있어서 그랬구나, 하는 생각에 실소가 새어 나왔다.


  
아래는 아이가 숙제로 적은, 나와 짝꿍에게 자신의 바람을 선포하며, 자신의 요구가 정당함을 주장하기 위해 근거로 댄 사항들을 요약한 것이다.

- 거실에 있는 컴퓨터를 내 방으로 옮기고 싶다. 그 이유는,

 첫째, 컴퓨터 게임은 내가 스트레스를 푸는 거의 유일한 방법인데, 거실에서는 엄마 아빠가 내는 소음과 라디오 소리 때문에 방해가 된다.

 둘째, 컴퓨터 앞에 앉아있을 때마다 뒤통수가 따갑고 몹시 불편해 오히려 스트레스를 받는다.

 셋째, 누나의 불만이 너무 심해 부담스럽고 짜증이 난다. (게임을 하며 내지르는 소리가 거실을 거쳐 고스란히 딸에게까지 전해지는 모양이다)

 넷째, 나도 이제 많이 컸다. 왜 누나는 되고 나는 안 되는 것인가? (자신의 방에서 개인적인 시간을 누릴 권리가 있다는 내용이 이어졌다) 등등…



아들램의 글은 꽤 설득력이 있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이렇게 글로 자신의 주장을 조목조목 요약하는 녀석의 모습을 처음 본 터라 감동적인 마음이 일기도 했다. 나는, '담임 선생님께서 참 시의적절한 과제를 내어주셨구나'라는 생각을 하면서도 흔쾌히 그러자,라고 답하지는 못했는데, 그건 아마도 그간 지켜왔던 부모로서의 고집을 너무 쉽게 꺾는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아서였던 것 같다. 하지만 고민도 잠시, 이젠 아이를 믿고 시야 밖으로 놓아주어야 할 때가 온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자, 단지 컴퓨터 하나 옮기는 일인데, 어쩐지 마음이 울컥해져서는 주책맞게 눈가가 촉촉하게 젖어들었다.



그러한 마음은, 기기들을 다 옮기고 나서 더 심각해졌는데, 휑해진 거실 책상을 보니 아이가 꼭 내 품을 떠나 어디론가 날아간 듯해, 책상 위 여백을 참을 수 없는 지경이 되었다. 나는 부리나케 독서와 글쓰기 소품들로 빈 공간을 채워 넣기 시작했다. 아이의 물건이 떠난 자리를 황급히 차지하는 내 물건들을 바라보며, 짝꿍이 농담인지 진담인지 모를 말을 내뱉으며 헛웃음을 흘려댔다.

  "내 이럴 줄 알았어! 이러려고 쭈니 컴퓨터 치운 거지? 어째 신나 보인다?!"

남의 속도 모르고, 비실비실 웃는 짝꿍이 그날따라 얄미워 보였다. 나와 쭈니가 땀 뻘뻘 흘리며 컴퓨터 옮기고 청소할 때, '김치가 알 낳으려나 보다', 외치며 김치 똥x 주변만 살피고 있더라니.




대대적인 이사 후 일주일 여가 지났다.
아들램은 이제 '많이 큰 어린이'로서의 권리를 성실히 누리고 있다.

따갑지 않은 뒤통수로, 누나의 불평불만을 신경 쓸 필요 없이, 정해진 시간 동안 자신만의 스트레스 해소법을 실천하고 있다. 엄마 아빠의 우려를 보기 좋게 불식시키고, 제 방의 온전한 주인으로서 시간과 공간을 제 나름의 방식으로 관리하며.



문득 '부모님에게 바라는 것' 숙제에 내가 한 답변이, 아이가 원한 엄마의 반응에 가까웠나, 하는 생각이 든다.

아들램의 숙제에 기록된 나의 대답은,

  '… 엄마는 쭈니가 잘할 거라고 믿는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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