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여름휴가를 다녀와서

by 지뉴

일주일 남짓 온 가족이 함께 하와이로 여름휴가를 다녀왔어요. 해외로 나간 건 육 년 반 만의 일이네요. 언젠가 꼭 한 번 가보고 싶은 곳이었지만, 이번 여름에 불쑥 떠나게 될 줄은 생각지도 못했어요. 그저 어느 날 갑자기, 이번 여름은 멀리, 에메랄드 빛 바다와 야자수가 반기는 곳으로 가고 싶다는 마음이 일었는데, 이런 제 마음에 짝꿍과 아들 녀석이 합류했고, 딸내미도 싫다는 내색을 하지 않으면서 일정이 일사천리로 진행되었어요.



사실 환율도 환율이고, 거리도 거리인지라, 가기 전에는 좀 주저되는 면이 있었어요. 뒷걸음질 치려는 마음이 자꾸 저를 잡아당기려 해서 일단 항공권과 숙소를 질러버렸지요. 예전의 장거리 여행들을 돌이켜 보니, 이 둘부터 정해놓으면 나머지는 자연스럽게 따라와 주었던 것 같더라고요. 기왕 마음먹은 것이니 야심 차게 추진해 보자는 심산이었던 거죠. 돈 걱정은 다녀와서 하자, 구멍 나면 어떻게든 메워 넣게 되더라 하는, 어찌 보면 다소 철없어 보이는 '케세라세라' 정신으로 뭉친 우리 부부가 있었기에 떠나게 된 여행이었어요.



여행을 하며 처음으로, 일정을 마칠 때마다 그날의 일들을 되짚어보며 기록하는 시간을 가졌어요. 브런치가 제게 준 선물 같은 시간이었지요. 덕분에 짧지 않은 연재를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일 년 내내 여름 기후를 지닌 하와이지만, 여름의 한국보다는 훨씬 시원한 날씨였어요. 섬지역답게 바람이 어마어마했고요. 큰 야자수들이 휘청휘청 춤을 추는 지경이었으니까요. 무엇보다 그리 습하지 않은 대기가 꽤 쾌적하게 느껴졌어요.



어떤 날은 아침부터 일정을 서두르고, 또 어떤 날은 느지막하게 일어나 느슨한 하루를 즐겼어요. 해변을 거닐고, 물속에서 열대어들을 만나고, 또 때로는 2차 세계대전의 상흔이 그대로 남아있는 곳에서 숙연한 시간을 보내기도 했어요. 호놀룰루가 있는 오아후 섬과 화산지대로 알려진 '빅 아일랜드'섬의 호텔, 리조트, 에어비앤비 등 다양한 숙소에서 머물며, 도보 및 버스 여행과, 렌터카 일주까지, 하와이 여행에 관심 있으신 분들에게 꽤 유용할 만한 여러 팁들도 건졌답니다.

진주만에서 발견한, 나를 분노케 한 지도(확 뜯어버리고 싶었다는..ㅎㅎㅠ)

여행을 마치고 귀국하니 때마침 광복절이 돌아왔네요. 이번 광복절은 독립기념관 인사, 광복절 경축식 문제로 말도 많고 탈도 많은 듯합니다. 하와이에 머무르며 일본의 흔적과 영향력이 크다는 것을 느꼈는데, 고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모습을 지켜보며 씁쓸한 마음이 커지네요. 특히, 2차 세계대전 때 일본군의 폭격을 맞아 엄청난 인명피해를 입었던 진주만 일대에, 동해가 버젓이 '일본해'로 표기되어 있는 지도들이 전시되어 있는 것을 보고, 한국인으로서 답답함과 참담함을 느끼기도 했어요.



하와이를 다녀와서 지금 제게 떠오르는 단어들을 말하라고 한다면, 야자수, 바람, 노을, 자유, 노숙자, 야생닭 등이에요. 물론 더 많은 것들이 있었지만 아직은 정신이 좀 덜 들어있는 터라..^^;

그사이 소설을 쓰시는 글벗님들이 많아진 것 같아 반갑고 기쁩니다. 저도 그 물살에 끼어들어 장편을 연재해 보려고 합니다.



다음 주부터 새로운 업무를 시작하게 되어 정신없을 것 같지만, 최대한 부지런을 떨어서 소설과 여행기를 꾸려나가 보아야겠어요. 이렇게 오랫동안 브런치에 글 못 올린 건 처음인데, 그동안 마음은 늘 이곳을 기웃거리고 있었네요. 다시 돌아와 무척 반가운 심정입니다. ^^



들려드릴 에피소들이 꽤 있을 것 같아요. 일상에 적응이 되고, 여행기가 어느 정도 정리되면 연재로 올려볼게요. 이국의 풍광으로 잠시 랜선 여행을 떠나며 힐링을 얻고 싶으시거나, 추후 하와이 여행을 생각하고 있는 분이 계시다면 조금은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어요.

야자수들 너머로 진주만이 보인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