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봄의 무게를 잴 수 있다면 지금 김치를 돌보며 우리 가족이 지고 있는 무게는 얼마나 될까?
며칠 전부터 김치를 보며 문득문득 드는 생각이다.
아파트에서 생활하는 김치는 성장과정에서 오른 발가락 중 하나가 기형적으로 굽기 시작했고, 현재는 가운데 발가락이 거의 구십도 각도로 꺾여있는 상태다. 본디 자연의 흙이 삶의 터전이어야 할 닭이기에 인간에게 맞춤형으로 지어진 아파트의 매끄러운 바닥은 어쩌면 우리가 생각하는 이상으로 힘들고 거친 환경이어서, 거기에 적응하기 위해 김치의 발이 그렇게 굽은 것일 테다. 그러나 김치는, 후천적 장애에도 불구하고, 그동안 우리의 걱정을 불식시키며 꿋꿋하고도 씩씩하게 아파트에서의 동거생활을 이어왔다. 일상에 지치거나 찌들어 어깨가 처질 때면 생각지도 못한 행동으로 사람 가족에게 크나 큰 웃음을, 그로 인해 싹트는 행복을 안겨다 주며.
돌이켜보면 다소 충동적인 마음으로 김치를 이 세상에 불러온 것 같다. 여느 때와 다를 바 없었던 아들과 함께 한 산책길에서 불쑥, 병아리를 키우고 싶다, 부화를 시켜보면 어떨까, 하는 말이 튀어나왔고 깊이 생각할 틈 없이 우리는 그 말을 실천에 옮겨버렸다. 새벽이면 시끄럽게 울어대는 수탉은 주택가에서 키우기가 힘들어 어쩔 수없이 농장으로 보내야만 한다는데, 암컷으로 태어난 김치는 병아리가 되기 전부터 사람과 함께 지내서인지, 사람의 일상 스케줄에 맞추어 자기의 일상을 바지런히 꾸려나가며 소음으로 인한 민폐는커녕, 우리의 기분을 고양시켜 주는 기특한 역할을 해왔다.
김치가 집안 곳곳을 돌아다니며 남겨놓는 배변이 고충이라면 고충일까, 사실 그것도 우리 가족에겐 재미있는 사건이 되곤 한다. 딸이나 아들 녀석이 샤워를 하러 가느라, 화장실에 볼일을 보러 가느라 잠시 열어둔 방문 틈으로 소리소문도 없이 먼 길을 행차해서는, 마치 제 영역을 표시해 두겠다는 듯 신속히 볼일을 보고 나오는 통에 우리는 김치에게 '광개토 김치'라는 별명을 붙여주었다. 김치가 가장 좋아하는 과일이나 '밀웜'을 줄 때면 저만치에서도 쿵쾅쿵쾅, 위협적일 만큼 우렁찬 발걸음 소리를 내며, 제법 육중한 몸을 날렵하게 움직여 적극적으로 다가와 '쿵쾅이 김치'라는 별명도 덧붙여주었다. 그런데 최근 일주일 동안 우리는 '광개토 김치'도, '쿵쾅이 김치'도 보지 못하고 있다. 김치가 며칠 째 한걸음도 제대로 걷지 못하고 제자리를 지키고 있기 때문이다.
김치가 이런 증상을 보인 건 며칠 전 아침, 힘겹게 일흔일곱 번째 알을 낳고 난 직후부터였다. 힘을 다해 둥지로 들어가 알을 세상에 내어놓고 난 후 그대로 주저앉아버린 김치는, 발가락이 굽은 오른 다리를 오므린 채로 지내고 있다. 이전에도 잘 일어서지 못하거나, 걷다가 반복적으로 엉덩방아를 찧으며 주저앉는 경우가 있었으나 금세 회복되곤 했었기에 처음엔 큰 걱정을 하지 않았다.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이번에는 뭔가 달라 보였다. 일어서지 못하는 날이 길어졌고, 무엇보다 오른 다리가 유난히 불편해 보이는 모양새다. 결국 걱정스러운 마음에 병원으로 달려갔지만, 수의사도 별다른 증상은 발견하지 못한 채 그다지 효력이 없어 보이는 진통제만 처방해 주었을 뿐이다. 알을 낳는 과정에서 알이 대퇴부 쪽 신경을 건드렸을 수도 있다는 말을 머뭇거리며 건네긴 했지만. 그런 경우라면 아마도 우리가 김치에게 해줄 수 있는 건 거의 없을 것이다.
집안 곳곳을 누비고 다니는 김치 덕분에 그동안 참 많이도 웃었는데, 어쩌면 이제 다시 그 모습을 보지 못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어 마음이 무거워진다. 외출 후 돌아오면 씩씩한 울음소리로 문 앞에서 우리를 맞이해 주던 김치, 늦잠 자는 아들 녀석의 발치로 다가가 부리로 톡톡, 발끝을 간지럽히며 '어서 일어나서 나랑 놀자'라는 신호를 보내던 김치, 베이스기타를 연습하는 짝꿍의 곁에서 마치 연주를 진지하게 감상하기라도 하듯 제 스스로 가만히 자리를 잡고 앉아 오래도록 머물러 있던 김치를 더 이상 볼 수 없는 걸까, 하는 생각이 들면 나도 모르게 눈아래가 뜨뜻해져 온다. 일상 속 고단한 날들을 함께 어루만져주며 지내 온 닭은 이제 우리 가족에게 그저 닭이 아닌 사람에 버금가는 존재 무게를 지닌 대상이 되어가고 있다.
가끔은 김치가 '현자'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특유의 예리한 시선으로 우리를 관찰하는 표정에서, 우리가 얼굴을 디밀고 말을 건넬 때면 '흐음~'하고, 목구멍 저 깊은 곳에서 올라오는 듯한 기묘한 소리로 김치가 자신만의 말을 건네올 때면, 김치가 반려동물이 아닌, 우리와 교감하며 우리를 똑똑하게 인지하는 하나의 완벽한 고등 생명체로 느껴진다. 그런 김치가 지금 우리에게 돌봄의 무게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볼 시간을 주고 있는 건 아닐까..
다행히 평소와 다름없이 잘 먹고 잘 싸고 있는 김치가, 인간 때문에 굽은 발가락을 하고선, 그럼에도 제 삶을 잘 살아내고 있는 김치가 고마울 따름이다. 저러다 욕창이라도 생기면 어쩌나 싶을 정도로 김치가 제 자리에 멈춰있는다 해도, 그러다 말기 중증 환자처럼 지독한 배변냄새를 풍기며 제 몸 하나 가누지 못하더라도, 김치의 생이 다하는 그날까지 나는 내가 지고 있는 돌봄의 무게를 내려놓지 않겠다고, 시작은 가벼웠을지언정 끝은 결코 그러하지 않으리라고, 내게 주어진 역할을 다하겠노라고 마음에 새기고 또 새겨본다. 이것이 지금 내가 깨우치고 있는, 김치가 알려주는 돌봄의 무게다. 김치가 언제까지고 힘내어, 최대한의 제 삶을 살아가길 응원하며.
어제 뉴스를 보며 많은 이들이 또다시 충격에 빠졌으리라 생각합니다.
국민의 안전과 생명을 위협하는 자가, 마치 금의환향하듯 만면에 미소를 띤 채 구치소 밖으로 걸어 나오는 모습에 소름이 돋아나더군요. 게다가 주먹을 불끈 쥐어 보이는 모습이라니… 아직 갈 길이 멀다는 걸 다시금 깨우치게 되었어요.
하지만 마음 굽히지 않고, 힘겨운 발걸음이라도 한 걸음 한 걸음 꿋꿋이 나아간다면 분명 좋은 끝이 오리라 믿습니다. 그때까지 우리 힘내어 함께 파이팅 하자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