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관앵무 ‘두부’가 우리 가족이 된 후 네 번의 계절이 오고 갔다.
일 년 전 아가새였던 두부는 청소년기를 지나 성체로 여물어가고 있는 중이다. 외모를 봐서는 뚜렷이 알 수 없지만, 두부의 행동이나 망고가 두부를 대하는 태도를 보면 두부의 성장을 실감할 수 있다. 지난가을만 해도 날갯짓이 서툴렀던 두부를 보며 태생적으로 잘 날지 못하는 아이인가 우려스러웠는데, 웬걸, 겨울과 봄을 거쳐오며 몸을 움츠러들게 만들 정도의 속도로 거실을 날아다닌다.
거실 한편에 얌전히 앉아 있던 두부가 어느 순간 휘리릭 날아오르면 망고도 거기에 장단 맞추어 한 쌍의 멋진 비행장면을 선사한다. 어느샌가 망고가 두부 뒤꽁무니를 쫓아다니며 요상한 몸짓을 해댄다. 그럴 때면 둘은 제법 잘 어울리는 커플처럼 보이기도 하는데, 아쉬운 점은 그런 장면이 아주 잠깐 동안만 지속된다는 것이다.
분명 아침만 해도 이 정도는 아니었건만, 오후의 거리에는 초고속의 시간을 지나온 듯 꽃송이들이 한아름이다. 또 한 번의 봄이 만개하려는 지금, 잊고 있던 어떤 마음이 떠오른다.
다시 도래한 사랑의 계절에 찾아온 기다림. 그렇다. 나는 지금 누군가를 꽤나 간절하게 기다리고 있다. 탐스러운 핑크빛 봄과 어울릴, 두부가 이 세상으로 데려다 줄 어여쁘고 여린 생명체를. 망고의 수줍게 발그스레한 볼터치와 두부의 새하얀 깃털을 한 몸에 어우른 채 꼬물거릴 녀석을.
하지만 안타깝게도, 한집에 산지 한 해가 훌쩍 넘도록 두부와 망고는 여전히 데면데면한 사이로 지내고 있다. 왕관앵무의 평균수명이 15년인 걸 감안한다면, 인간세상에서 오 년도 더 되는 세월 동안 둘은 동거하고 있는 셈이다.
아가새들을 위한 보금자리를 어떻게 준비할까, 설레는 마음으로 상상해 볼 여지조차 주지 않으려는 듯 둘은 한 공간에 함께 있는 것조차 기꺼워하지 않는 눈치다. 창틀에 자리 잡는 것을 좋아하는 녀석들은, 어쩌다 우연히 같은 창틀에 앉게 되더라도 한 녀석은 이쪽 끝, 다른 녀석은 저쪽 끝에 서로 얼굴도 보고 싶지 않다는 듯 등을 돌리고 앉아 있다. 치열하게 싸운 후 오랜 냉각기를 거치고 있는 커플인양.
아.. 아무래도 올해는 아가새들을 볼 기대 같은 건 하지 말아야 하는 걸까.
이리 보고 저리 봐도 두부가 애정하는 대상은 따로 있는 듯하다.
외출하고 돌아오면 현관을 마주하고 있는 그림 위에 인형처럼 올라앉은 두부가 나를 기다리고 있다. 그러다 내가 들어오는 기척이 느껴지면 화들짝 시선을 돌리며 경쾌한 울음으로 반갑게 맞이한다. 집을 나서기 전에도 저 자리에 저 자세로 앉아있었건만, 애정전선을 돈독히 하라는 망고군은 어디 있는지 보이질 않고, 두부양은 애꿎은 여자사람만 애가 닳도록 기다리고 있었던 모양이다.
집안으로 들어서면 두부는 내 어깨에 사뿐히 내려앉아, 아가손 같은 앙증맞은 자신의 발 위로 고개를 깊이 숙인다. 머리를 애무해 달라고 내게 애교를 부리고, 너스레를 떤다. 그 모습에 하루의 피곤이 사라지고, 코끝으로 감지되는 두부의 고소한 냄새를 사랑하지 않을 수 없지만, 이래서야 꼬물이들을 향한 내 기다림은 헛된 김칫국 드링킹으로 끝나고 말 것이다.
언제쯤이면 두부눈에도 사랑의 콩꺼풀이 씌워질까?
망고군이 조금만 더 적극적으로 사랑의 몸짓을 해주면 좋으련만, 일 년 전 조강지처 자몽이를 떠나보낸 뒤로, 안타깝게도, 망고는 사랑을 구하려는 의지가 많이 사그라든 것 같다.
사랑의 계절은 익어가건만, 우리의 어긋난 기다림은 여전히 제자리를 찾을 줄 모른다.
올해 중학생이 된 둘째의 갓난아기 시절 이후로 꼬물꼬물, 동물적 생명이 움트는 것을 지켜본 적이 없다. 그 가없는 귀여움을 두 손안에 고이 품어보고 싶은 마음 간절하다.
망고군이 슬픈 사랑의 기억을 잊고, 예전처럼 다시금 사랑의 의지를 불태우기를 바라며 온 마음으로 용기를 북돋워 본다.
힘을 내라 망고군,
사랑의 계절은 그리 길지 않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