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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과 현실을 오가며

by 지뉴

3월이 다가는 시점인데 왜 이리 눈은 자주 우리를 찾아오는 것일까요, 분명 어제도 눈이 왔었던 것 같은데 말이지요. 여느 해 같았으면 계절의 흐름을 거스르며 내리는 눈이 반갑고 3월에 크리스마스가 찾아온 듯 낭만적으로 느껴졌을 것 같은데, 올해는 으슬으슬 한기를 더하는 처연한 눈이 자꾸만 옷깃을 여며 쥐게 만듭니다. 아마도 그건 어디로 가고 있는지 모를 것 같은 이 나라의 운명, 추위 속에서 여전히 광장을 지키고 있을 수많은 시민들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불안한 마음에 일이 손에 잘 안 잡히지만, 최대한 일상에 충실하고자 오늘도 필기구를 챙겨 들고 소설 수업을 들으러 나선 길이었습니다. 눈은 내리다 그치기를 반복했고, 저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지하철 편의점에서 급하게 우비를 구입해 남은 길을 걸었습니다. 그런데 지하철을 벗어나 지상으로 올라서니 흐린 하늘에선 더 이상 눈이 내려오지 않고 있었어요. 오천 원을 괜히 쓴 건가, 잠시 후회도 들었지만 어쩐지 우비가 필요한 일이 생길지도 모를 것 같은 예감이 들었어요.


소설 쓰기는 늘 어렵지만, 소설을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하는 자리는 따스하고, 비어있는 마음을 채워주는 그 무엇이 있어요. 소설을 써야겠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사실 제대로 소설 쓰기 강의를 들어본 적은 없었어요. 주로 소설 작법 관련된 책을 읽으며 혼자 끄적이는 수준이었던지라. 언젠가 동화 합평 수업에 참여한 적은 있었는데, 서로 물고 뜯으며 거의 글 쓰는 마음을 해체하는 수준으로 진행되던 분위기에 경악했던 기억이 있어서 소설 합평 수업을 듣겠다는 마음을 쉬이 먹기가 어렵더라고요. 하지만 최근 브런치 이웃작가님 글을 읽으며, 저도 좀 더 깊이 있게 이야기의 세계로 빠져들어 가능하다면 여러 공모전들에 도전해보고 싶다는 의지가 샘솟았어요.


수업이 진행되는 두 시간 동안만큼은 현실에서의 고민과 괴로움이 99퍼센트쯤 희석되는 느낌을 받았어요. 바쁜 일상 속에서도 서로의 작품을 성실히 읽어주고, 정성스러운 피드백을 교환하는 이들에게선 동지의식을 넘어서는 뜨거운 연대가 느껴졌습니다. 문학과 이야기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열정과 사랑으로 넘실대는 강의실이 마치 거대한 로켓을 타고 지구밖을 탈출해 낯선 어느 행성으로 우리를 데려다 놓은 기분에 젖어들기도 했고요. 어렵고 힘들지만, 이야기 속 새로운 세계를 창조해 내는 기쁨과 짜릿함을 포기할 수 없는 이유를 절감하게 되는 시간이었지요. 그 순간 누군가 우리들을 보았다면, '한가하게 소 풀 뜯어먹는 소리들 하고 있네.'라고 말했을지도 모르겠지만요. 하지만 소설 동지들과 작별하고 강의실 밖으로 나선 저는 다시 완전히 다른, 현실의 저로 돌아왔습니다.


글벗들과 나누었던 오늘의 이야기들을 머릿속으로 곱씹으며 깃발들이 바람에 거칠게 휘날리고 있는 광장으로 나섰습니다. 남녀노소를 구분하지 않고, 더 많은 이들이 이미 광장을 가득 메우고 있었습니다. 겨울이 되살아난 듯한 광장에 부는 매서운 칼바람도 그들의 의지와 간절한 마음을 빼앗아 가지는 못했어요. 아니, 그들의 모습에서 오히려 거센 바람에 돛을 맞대고 대양을 항해하는 튼튼하고 거대한 배를 보고 있는 듯한 느낌이었어요. 바람이 위력을 더할수록 더욱 거침없이 물살을 헤치고 나아가는... 그리고 역시나, 오전의 제 예감이 맞았어요. 날카로운 꽃샘추위에 결국 아침에 사두었던 우비를 바람막이용으로 꺼내 입게 되었거든요. 오천 원이 아깝다고 생각했건만, 그 이상도 아쉽지 않을 만큼 우비는 얇디얇은 몸으로도 바람의 거친 손길을 아주 잘 막아내더군요. 거리의 노숙인들이 왜 그리 신문지를 애용하는지 거의 완벽하게 이해가 되었어요.


광장의 무대 위에서 소신껏 발언하는 학생들을 보며 며칠 전 딸아이가 했던 말이 떠올랐습니다.

"엄마, 선생님이 학교에서는 일절 정치와 관련된 이야기는 하지 말래."

답답하다는 투로 말을 전하는 딸아이 앞에서 저는 답답함을 넘어서는 분노가 일었습니다. 60여 년 전 군사독재시절, 지식인층 중에서도 교사집단의 입을 두려워한 그 누군가가 만들어놓은 제도 안에 아직도 갇혀 있는 이 나라 학교현장예요. OECD회원국 중 교사집단을 정치적 중립이라는 허울 좋은 이유로 정치와 관련된 그 어떤 발언도 못하는 '정치적 불구자'로 만든 유일한 나라가 바로 대한민국이니까요. 민주시민이 되어야 한다고 말하면서도 학교현장에서 민주주의 교육이 제대로 이루어지고 있지 않는 이 나라 현실이 언제쯤 바뀌어, 고등학교 3학년이 되면 자신만의 가치관과 소신으로 주어진 투표권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아이들을 길러내는, 그리하여 민주시민에 의해 진정한 민주주의가 꽃피는 대한민국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을까요.


국민에게 총부리를 겨눈 계엄의 밤에도 잠을 잘 잤다며, 역사적 현장을 꼭 봐야 한다며 잠을 깨운 남편에게 짜증이 났다고 아무렇지 않게 말하던 동료 교사가 떠올랐습니다. 12월 3일의 계엄령이 왜 잘못된 것인지 얘기하는 교사에게 '정치적으로 편파적'이라는 말로 재갈을 물리고자 민원을 제기하던 학부모가 생각났습니다. 과연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이 말도 안 되는 상황들이 학교현장의 이러한 분위기와 아무런 연관성이 없을까, 의구심이 강하게 일어나는 요즘입니다.




드디어 기다리고 기다리던 헌재의 탄핵 선고일이 공지되었습니다. 금방이라도 재가 될 듯 타들어가던 가슴이 소생하는 듯한 기분이에요.

플라톤은 '정치를 외면하면 가장 저질스러운 인간에게 지배당한다'라고 말했습니다.

환율을 방어해야 할 기재부 장관이 사리사욕에 휩싸여 오히려 우리나라 경제를 나락으로 떨어뜨리는 데 일조하고, '노력은 배반하지 않는다'라는 말을 명제 삼아 치열한 삶을 살아가고 있는 이 땅의 젊은이들을 좌절시키는 검찰수장 자녀의 취업비리의혹이 정부기관들에 의해 변호되고 뭉개지는 지금의 현실이 개탄스럽습니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늘 국난극복의 첨병이었던 시민들이 있는 한 결국 지금의 이 고난도 극복되리라, 그 시간이 머지않았으리라 믿습니다.


이번 주 금요일, 한강 작가가 말했듯 우리의 '보편적 가치'가 훼손되지 않는 헌재의 선고가 있기를 기원합니다. 그리하여 그 누군가는 시답잖다고 여길, 소설 같은 사랑과 연대로 가득한 현실이 되기를, 티끌만 한 거리낌 없이 소설에서 사랑과 희망을 마음껏 노래할 수 있는 대한민국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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