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또한 기후 때문일까
요즘 나와 짝꿍 사이에 회자되는 큰 화두 중 하나는 영화 '원 배틀 애프터 어나더'와 우리 집에서 펼쳐지고 있는 현실판 '원 배틀 애프터 어나더'이다. 전자가 '회자되다'는 사전상의 긍정적 의미에 가깝게 쓰이고 있는데 반해, 후자는 그 대척점에 있는 것이라 할 수 있겠다. 언제나 끝이 나려나 싶던 무더위가, 가을이 아닌 겨울에 자리를 내어주고 있는 것 같은 지금, 괜스레 아련해지고 감성에 젖어드는 오늘, 삶이란 결국 크고 작은 전쟁이 끝없이 이어지는 시간의 연속과도 같은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역사를 '아(我)와 비아(非我)와의 투쟁이요 승리자의 기록'이라고 하신, 단재 신채호 선생님의 말씀에 마음 깊이 수긍하게 된다. 그리고 후자의 상황을 승리자의 입장으로 기록하고 싶은 욕구가 솟아난다. 여전히 현실판 전쟁은 진행 중이고, 그 끝을 명확히 알 수 없는 상황이긴 하지만.
먼저, 위에서 '전자'로 언급된 영화 '원 배틀 어나더'에 관해 잠시 얘기하고 싶다. '원 배틀 어나더'는 요 근래 몇 년 간 본 할리우드 영화 중 최고로 멋진 작품이었다. 사실 할리우드 영화애 대한 환상이나 기대감이 사라진 지 오래라 '열연하는 디카프리오'를 보고자 극장을 찾았던 것일 뿐인데, 오래간만에 영화 크레디트 올라가는 순간까지도 감탄에 감탄을 거듭하며 기립박수를 치고 싶은 마음을 주체하기 힘들게 만든 작품이었다. 구십 년대 리즈시절, 뭇 소녀들의 가슴을 뒤흔들어놓던 미모 절정의 청년 디카프리오 오빠는 이제 지구를 영원히 떠난 것 같았지만, 대신 '잭 니콜슨'을 연상시키는, 카리스마 넘치는 연기력으로 빛이 나는 중년의 디카프리오가 있었고, 그런 그가 참으로 멋져 보였다. 시나리오를 보는 그의 눈이 탁월하다는 생각을 하며, 그가 앞으로 보여줄 연기에 더욱 믿음이 갔다. 배우 '숀 펜'의 소름 끼치는 연기 또한, 영화를 보고 난 후 그의 이미지가 머릿속을 떠나지 않을 정도로 깊이 각인되었다.
대통령이 바뀐 후, 몹시도 기이하고 위태위태하게 돌아가는 근래의 미국 상황을 지켜보며, 우려스러운 마음에 본 영화 '시빌 워'와 더글라스 케네디의 소설 "원더풀 랜드"처럼, 영화 '원 배틀 어나더' 또한 '준내란'의 상태로 나아가는 듯한 미국의 현재 모습과 많은 부분 겹쳐 보였다. 제목에서 볼 수 있듯, 영화의 결말은 어느 쪽의 승리라고 확실히 말할 수 없게, 앞으로 전쟁은 계속되리라는 것을 암시하며 끝을 맺는다. 현실에서도 아직 승자는 결정되지 않았다. 민주주의의 위기를 겪고 있는 미국의 승자는 누가 될까? 스스로 왕이 되고자 하는 대통령일까, 'No King'을 외치며 거리로 나서는 민주시민들일까. 생각 이상으로 길어질 것 같은,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한 이 전쟁에서 거리의 시민들이 최종 승자가 되기를, 그리하여 그들의 시선으로 쓰인 승자의 기록을 머지않아 볼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더불어, 여전히 청산되지 않고 있는 내란 세력과 내란을 종식시키고자 하는 이들 간의 지리한, 우리의 전쟁에서도.
*주의 - 여기에서부터 비위 약하신 분들은 약간의 주의를 요합니다.
서사, 연기, 미장센과 음악까지 무엇 하나 빠지지 않는 이 영화를 보고 와서, 나와 짝꿍은 틈만 나면 '원 배틀 애프터 어나더'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며, 이런저런 생각과 의견을 교환했다. 특히 나보다 짝꿍이 더욱 영화의 여운에 단단히 붙잡혀 있는 듯했는데, 그 붙들린 마음이 집안 곳곳을 누비고 있는 날파리들과 그와의 전쟁에 비장함을 얹어주는 듯했다. 침실이나 화장실에 있을 때면 거실을 울리는, 둔탁한 타격 소리가 심심찮게 귓가로 날아든다. 이윽고, "마지막 한 마리까지 싹 족쳐버리겠다! 이것이야말로 '원 배틀 어나더'다!"라고 말하는, 짝꿍의 결기에 찬 목소리가 뒤따라온다. 우렁찬 소리에 부리나케 거실로 나서면, 그야말로 눈에 불을 켠 짝꿍이 손바닥을 허공으로 바짝 치켜든 채 거실과 부엌 구석구석을 탐색하는 모습을 맞닥뜨리게 된다. 깊은 산속에서 산삼을 찾아다니는 심마니의 간절한 눈빛이 저러할까 싶다. 그러니까 현실판 '원 배틀 어나더'는, 우리 집에서 현재진행형으로 이어지고 있는, 좀비처럼 죽지 않고 살아나는 날파리떼와의 전쟁인 것이다.
이유를 알 수 없지만, 유독 올여름엔 날파리('초파리'인지' 나방파리'인지 '뿌리파리'인지 정확히는 알 수 없다)가 기승이다. 공식적 가을이 시작되고 두 달이 다 되어가도록 아직 박멸될 조짐이 보이질 않는다. 우리 집 위생상태가 문제인 것인가 염려스러웠는데, 주변 이야기를 들어보면 그건 아닌 것 같아 그나마 좀 위로가 된다. 즐겨 듣는 라디오 프로그램의 출연자는 '반려 파리들' 때문에 고역을 치르고 있다 하고, 친한 친구도 날파리 잡느라 시간 가는 줄 모르겠다며, 날파리의 씨를 말려버리겠다고 굳은 의지를 내비친다. 친구는, 고단한 일상에 지쳐 쓰러져 있다가도 날파리만 보면 힘이 샘솟는 모양이었다. 녀석들의 생명력은 어찌나 질긴지, 음식 쓰레기를 치우고, 에프킬라를 뿌리고, 깨소금 같은 알들을 눈에 보이는 대로 쓸어내며 대대적으로 소탕해도 어느 틈엔가 짜잔, 하고 재등장해 약 올리듯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내 보인다.
급기야 며칠 전에는 날파리가 출몰하는 일대를 해적 소탕하듯 샅샅이 뒤졌다. 그러자 쓰레기통에 있는 홈이나 가구의 구석진 곳에 끈질기게 달라붙어 숨죽이고 있는, 깨알 같은 날파리알들이 단체로 시선에 잡혔다. 그 광경을 목격한 짝꿍은 죽어도 용서할 수 없는 어떤 일을 맞닥뜨린 듯 분노 섞인 흥분을 표출했다.
"이런, 내란 세력 같은 놈들!!"
불현듯 부엌 한켠, 날파리 앞에서 정의의 사도가 되어버린 짝꿍은, 오늘부로 날파리떼와의 전쟁에서 진정한 승자가 되겠다며 의지를 활활 불태웠다. '진정한' 승자가 되기 위해선 에프킬라나 빗자루 따위의 도구를 동원하면 안 된다. 손바닥이 더러워지고 얼얼해져도, 이 한 몸 불살라, 일대 일로 이겨내고야 말겠다는 결기를 보여줘야 한다. 물론 '일타이피'나 '일타삼피'면 더욱 훌륭하겠지만, 그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정의의 사도 역할은, 손바닥이 부딪히는 우레와 같은 소리 끝에 손바닥 위에서 뭉개진 채로 최후를 맞은 날파리를 보며, '가소로운 자식!'이라는 말과 함께 비웃음을 날리며 마무리지어줘야 제대로 완성되는 것이다.
사실 나는 짝꿍만큼 날파리와의 전쟁에 진심을 다하고 있지는 않다. 깨소금을 닮은 날파리 알 때문에 이제 요리에 깨소금도 잘 못 넣어먹겠다 싶지만, 간간이 반려닭 김치가 날파리를 잡아먹는 광경을 흥미롭게 지켜보며, '김치가 몸에 좋은 단백질 섭취를 하고 있구나.'라고 생각한다. 눈앞에서 날파리가 얼쩡거리는 건 싫지만, 큰 파리 녀석처럼 귓가에서 윙윙거리는 일은 없으니 '그래도 이 쪼그만 녀석들이 최소한 인간에 대한 예의는 있네'라고 생각한다. 여전히 집안을 돌아다니는 녀석들 덕분에, 가을이 지나가는 게 아니라 곧 다가올 것 같은 착각이 들어, 가장 좋아하는 계절에 대한 기대감이 별안간 곁들기도 한다.
이틀 전부터 갑자기 추워진 날씨 때문에 날파리의 숫자가 현저히 줄어든 것 같다. 가을을 뺏어간 겨울에, 단풍이 들 새도 없이 이파리들이 땅으로 떨어지는 풍경에 안타까워진 마음 때문일까. 예전보다 덜 목격되는, 힘 빠진 듯한 날갯짓의 날파리마저 안쓰러워 보인다. 짝꿍의 전쟁은 계속되고 있고, 나도 그 전쟁에서 함께 최후의 승자가 되고 싶지만, 한편으로는 어쩐지 날파리와 함께 떠나가는 2025년의 가을이 못내 아쉬워진다. 이 계절이 지나간 자리에도 녀석들이 남아 있을까, 몹시 궁금해지면서.
덧. 이상하게도, 올여름 (큰) 파리는 거의 보질 못했는데, 이것도 기후 탓인가 싶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