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절은 내가 먼저!!!
둘째가 초등학교를 입학하기 전부터 나는 아이를 준비시켰다. 인공와우에 대해 묻는 친구가 있다면 정확히 이야기할 수 있도록 함께 연습을 했다. 입학할 때에는 울거나 피하지 않고, 안경을 쓰면 잘 보이는 것처럼 잘 들리지 않아서 인공와우라는 기기를 착용하는 것이라고 둘째는 설명할 수 있게 되었다. 둘째는 자신의 인공와우에 대해 잘 설명하고 있었는데 내가 그 당시에 생각하지 못한 것이 하나 있었다. 그건 바로 장애를 가진 아이로부터 나오는 친절함에 관한 것이었다. 내 아이가 약점을 가지고 있으니 어디 하나 상처받을까 봐 나는 둘째에게 마음 상하지 않고 방어하는 방법만 알려주었지, 둘째와 친해지고 싶어 가까워지려고 물어보는 친구에게 친절하게 말하는 방법을 연습시키지는 않았다. 그 당시에는 내 아이의 상처만 보이는 때라서 나는 다른 아이들의 민망함은 보지 못했다. 그러던 어느 날 놀이터에서 놀다가 어떤 친구가 인공와우에 대해 물었는데 둘째는 참 당당하게 대답했다. “야, 너는 그것도 모르냐?" 하며 인공와우를 설명했다. 친구에게 민망함을 주는 둘째를 보고도 솔직히 그때까지만 해도 그렇게 이야기할 수 있는 둘째의 행동이 당당함으로 느껴졌었다. '그래, 잘했어.' 하지만 지금 그 당시를 생각하면 내 아이는 참으로 무례했다. '그 친구는 정말 인공와우가 궁금해서 다가온 관심이었을 텐데 왜 친절하지 못했나?...' 내 아이는 충분히 온유할 수 있었고, 친절할 수 있었으며, 유쾌하게 대답해 줄 수 있었다는 생각이 드는 요즘이다.
'장애 아이가 어떤 마음으로 채워져야 다른 사람들에게 친절함을 선행할 수 있을까?'
청각장애이해교육을 준비하며 강의를 가기 전 어머님들과 통화할 때 가끔씩 아이가 반에서 받는 배려를 당연하게 생각하시는 어머님들이 계신다. 내 아이의 태도는 신경 쓰지 않고 내 아이에게 장애가 있으니, 다른 친구들은 이 아이를 도와주고 배려해줘야 한다고 생각하시는 분들.. 그렇다면 '장애가 있는 그 친구는 다른 친구들에게 그만큼 친절하게 행동하고 있을까?'
청각장애이해교육을 처음 시작할 때는 귀가 잘 들리지 않는 친구가 있다면 3s (see, slow, smile)로 이야기해 주라고 전달했었다. 더 잘 듣도록 교실 환경에 조금이나마 도움을 주고 싶었는데, 가만히 들여다보니, 3s는 잘 들리는 친구에게나 잘 듣지 못하는 친구에게 다 중요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요즘은 "3s는 잘 듣지 못하는 친구뿐만 아니라 우리 반 친구 모두가 서로에게 이렇게 이야기해 주면 지금도 화목하지만 더욱 화목한 반을 만들 수 있을 거예요"라고 이야기해 준다. 반에는 다리 아픈 친구, 눈이 잘 안 보이는 친구, 분노조절이 힘든 친구,, 등 각자의 특성을 가진 친구들이 한데 모여있는데 그중 귀가 잘 안 들리는 친구에게만 3s로 대해준들 그 반의 분위기는 좀처럼 화목해지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반이 화목해져야 서로에게 친절할 수 있다.
친절함은 내가 많은 것을 가지고 있을 때 행할 수 있다. 더 큰 사람이 할 수 있다. 너그러운 마음가짐이 더 큰 아이가, 더욱 적극적인 태도로 임하는 아이가, 반 친구들에 대한 관심이 크고, 공감하는 능력이 더 큰 친구가 베풀 수 있다. 나는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가? 우리 아이는 어떤 사람이 되기를 원하는 가?! 당연한 친절은 없다. 내가 항상 받기만 하는 친절은 없다. 나는 나의 아이가 더 큰 아이이기를 바란다. 그 마음이 더욱 커져서 우리 아이부터, 장애아이로부터 친절함이 선행되기를 기대해 본다.
"도윤아~ 너 오늘 친구들에게 친절했니?"
아이에게 묻기 전에 나 자신이 큰 소리로 대답할 수 있어야 한다.
"자경아~ 너는 너희 아이들에게 친절했니? 남편에게 친절했니?
네가 만난 사람들에게 너는 오늘 친절했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