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망고치킨 Jun 02. 2021

그럴듯한 한 가지

"넌 신혼여행 어디로 가고 싶니?"


나에게 크게 관심 없던 친구가 거의 유일하게 내 눈을 바라보며 했던 질문이었다.

자기는 남들이 꿈꾸는 신혼여행 이야기를 듣는 게 재밌다고 했다.

온갖 로망과 이상과 상상이 합쳐진

그 사람이 갖고 싶은 이상을

누리고 싶은 휴식을 알 수 있어서랬다.


거의 매주 웨딩홀 투어를 다니면서

마음에 들었던 세 곳에 예약을 걸었고

이제 상견례는 3일 남았다.

급한 준비는 거의 끝났다고 생각했다.

이제는 예식 날짜에 맞춰 그날을 기다리며

나머지를 늦지 않게만 준비하면 됐다.


"내년이면 비행기 미리 알아보는 게 낫지 않을까?"


급할 건 이제 없다고 생각했는데

옆에 있던 차장님의 말에 순간 멍 했다.


어쩌면 이 시국만 아니었다면

당연하게 웨딩홀보다 먼저 알아봤을 신혼여행을

거의 잊고 있었다.


막연하게 내년이면 코로나가 거의 끝나고

나도 백신을 맞고 다들 해외여행을 가지 않을까 생각은 했었지만

매년 돌아왔던 여행 시즌이 아니라,

전 세계가 2년간 참아왔던 욕구가 분출될 시즌이라고 생각하니

잘못하면 대단히 비싼 여행을 가거나

아예 포기하거나 둘 중 하나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급한 마음에 비행기 티켓을 알아보려는데,

막연한 물음에 막혔다.

 어디로 가고 싶은 걸까.


내게 이상적인 여행이란 어떤 걸까.


막연하게 쇼핑도 하고 싶고

멋진 풍경도 보고 싶고

아기자기한 마을도 거닐고 싶고

평생 한 번 볼까 말까 한 미술작품도 보고 싶고

푸르른 바다를 보며 하루 종일 쉬고 싶기도 했다.


하지만 어느 것 하나 꼭 하고 싶은 게 없는데

그렇다고 아무 데나 정해서 가기엔

시간도 돈도 아까워서

그렇다고 남들이 좋다는 데를 따라가기에도

내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다.


만약 해외를 갈 수 있다면

그와 처음 떠나는 해외여행일 텐데

어디로 어떻게 떠나는 게 좋을까.


내 평생 세계 모든 나라를 가보는 건

아마 불가능할 텐데

그 수많은 나라 중에서 어디를 골라야 할지

어디서 무엇을 봐야 할지


이 또한 막연하게 꿈꾸던 이상이

결정해야 하는 현실로 다가오면서

또 한 번 잠재되어 있던 욕망과 취향을

특정할 수 없어 이름을 붙여보고

나는 어떤 걸 했을 때

좋아했는지 행복했었는지

되새김질을 하면서

때로는 비합리적인 부분까지도 들춰보았다.


결국은 나는 또다시 나를 알아가면서도

누군가 내게 왜 신혼여행을 그곳으로 선택했는지 물었을 때

대답하기 위한 그럴듯한 이유를 만들어내고 있다.






매거진의 이전글 31살 준비를 시작하면서 느끼는 소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