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리셰가 원래 이렇게 맛있는 거였나요?
드라마 사내맞선 리뷰
클리셰 맛집.
요즘 내가 빠진 이 드라마를 두고 사람들이 많이 하는 말이다.
아는 맛이 무섭다.
그동안 있어 보이게 멋져 보이는 영상을 소비하느라
너무 피곤했나 보다.
복선이 여기저기 숨어있고
주인공의 서사가 복잡하게 얽혀있어
보고 난 이후에도 해석을 찾아봐야 하는
세상 남녀는 왜 이렇게 감정이 복잡하고 베베꼬였는지
그 감정에 몰입하고 이해하려고 애써야 하는
그런 내용에 묻혀 있다 보니 최근에는 드라마를 꽤 보지 않았다.
근데 고전이 제맛이라고
역시 나는 파리의 연인처럼 신데렐라 물이 좋나 보다.
지금 이 드라마에 빠진 걸 보면
예전에 인기 있는 콘텐츠의 법칙을 들었었는데
모든 게 새로우면 낯설고
모든 게 익숙하면 사람들이 보지 않는데
모든 게 익숙한데 그중에 하나만 비틀어도
사람들이 오히려 신선하게 재밌게 받아들인다는 말
사실 출처는 정확하지 않은데
새삼 내가 좋아하는 드라마나 콘텐츠를 보다 보면 맞는 말이라는 생각이 들어
내 마음속의 법칙이었다.
사내맞선이 꼭 그렇다.
모든 설정이 익숙하고
뭐 주인공이 처음에는 오해와 불가피한 해프닝으로 만나는 것도 새롭지 않은데
왜 이 드라마를 보는 나는 신선하고 재밌게 느끼는 걸까.
사실 제목이 너무 장벽이라
볼 생각도 안 했고 재밌을 거라 기대도 안 했다.
근데 사만다와 레이첼 쇼츠 영상이 너무 내 피드에 자꾸 떠서
또라이 맞선녀 설정이 뭔가 궁금해서 봤는데
이게 여기까지 이어지고
한 주 한 주 기다리다 지쳐 남배우의 예전 드라마까지 찾아볼 줄이야.
(사실 처음에는 넷플릭스 오리지널인줄 알고 몰아보기로 보려고 했는데
아뿔싸. 속았다. 매 주 기다려야 할 줄이야...)
이 드라마의 신선한 점은
시트콤을 미니시리즈로 풀어냈다는 점이다.
거침없이 하이킥을 즐겨봤던 시청자로서
특유의 개그 포인트 유쾌함 통쾌함
한 화를 넘기지 않는 고구마가
그 공식이 이 드라마에 그대로 담겨 있다.
예전에 시트콤을 보면서도 참 러브라인에 과몰입돼서
나중 되면 왜 러브라인을 좀 더 자주 길게 보고 싶은데
아쉽고 애달프고 그 부분만 모아보고 또 기다리고 그랬는데
이 드라마는 딱 시트콤의 그 부분만 빼내서
아주 한 시간 내내 보여주니까
마음이 뻥 뚫리고 재밌고 유쾌하다.
드라마의 설정과 에피소드는 클리셰지만
캐릭터의 성향은 미니시리즈에서 보기 힘든 성격인 점도 한 몫한다.
그 누구보다도 감정에 솔직한 것
과배려, 과눈치에 마음을 숨기지 않고
느낀 즉시 인정하고, 인정한 즉시 고백하는 것
그게 그동안의 미니시리즈 공식에 지쳐있던 피로도를 확 낮춰주었다.
오해하지 않는 것
정확히 선 긋는 것
믿어주고 표현하는 것
이 쉬운걸 왜 그동안의 주인공들은
매번 울고 그리워하고 애틋해했을까.
보통의 드라마를 보면 4화까지는
만남과 우연의 에피소드가 몰아쳐서 엄청 흥미진진하고 재밌다가
갈등과 각 주인공들의 태생적인 사연이 나오면서
10화쯤 되면 거의 뭐 제발 그 둘이 그냥 사랑하게 해달라고
읍소를 해야 할 정도로 감정 소모가 심해지고 지치곤 했다.
그래서인지 최근 드라마를 선뜻 시작하지 못했던 것도
한 4화까지는 재밌겠지?
그다음부터는 갈등 때문에 질질 끌리겠지?
고구마 오조오억 개 먹고 답답함에 결국 밤잠을 설치겠지?
라는 두려움에 시작하지 못했는데
사내맞선은 직관적인 제목을 닮았는지
그런 거 없이 걱정 없이 애닳음 없이 볼 수 있는
이런 게 바로 힐링이지 않을까 하는 드라마다.
주연급으로 전혀 인지하지 못했던
배우들의 매력을 이번 기회에 확실히 알게 되고 빠지게 된 게
이번 드라마의 가장 큰 수확이 아닐까 싶을 정도
참 이런 거에 설레기엔 나도 이제 양심이 쿡쿡 찔리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설레면서 볼 수 있는 게
오랜만에 느끼는 즐거움이다.
거기에 과하지 않은 대사와 연출
배우들의 만화 같은 연기가
잘 어우러지는 오랜만에 눈살 찌푸림 없이
재밌게 유쾌하게 긴장감 없이 볼 수 있는 드라마.
중간중간 메이킹이나 편집점을 보면
약간의 대사나 촬영분이 더 있는데
12부작이라 어쩔 수 없이 축소한 감이 없잖아 있었는데
꼭 나중에 감독판 사면 그 부분까지 꽉꽉 채워서 볼 수 있기를
오랜만에 소장하고 싶은 깜찍한 드라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