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그 조그만 캐릭터들이 내 마음을 그렇게 어루만지는지
언제부턴지는 모르겠다. 아마 이번 4월쯤부터였을 것이다. 버스 안에 스티커가 보이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마켓컬리였다. '내 뒤에 앉은 승객은 컬리 무료배송~!' 따위의 문구였을 거다. '되게 귀엽네.' 첫 감상은 그거였다. 어릴 때 풍선껌 불고 붙이던 판박이 같았으니까. 작년 들었던 '광고 캠페인' 수업에서 '버스 TV 광고' 등을 제안했다가 그것이 얼마인지 아냐며 욕을 들어먹은 기억이 스쳐 지나갔다. '저건 싸겠네'. 그렇게 생각하고 말았던 것 같다.
그다음엔 다양한 스티커가 우후죽순으로 생겨났다. 대기업, 중소기업 할 것 없이 스티커를 그렇게 붙여댔다.
버스에서 할 것은 많지 않다. 기껏해야 귀에 이어폰을 꽂고 멍을 때리는 정도다. 피곤이 몸을 잠식해 문어처럼 늘어져있지만 않다면, 이런 광고들은 소비자들에게 무조건 노출된다. 만드는데 비용도 싸다. 그렇다면, 이제 중요한 건 크리에이티브다.
쿠키런 킹덤 광고는 감성을 건드렸다. 출퇴근길, 혹은 등하굣길 미어터지는 버스에서 광고를 볼 사람들이 누군지를 정확히 짚었다. 저 한 마디를 듣고 싶어 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을까. 공교롭게도 대부분은 주변 사람들에게 무심하며, 우리는 가까울수록 깊숙이 칼을 꽂는다. '신경 쓰니까 하는 말이지.' 이런 사족이 붙는 말의 대부분은 상처를 동반한다.
친구가 힘들다며 연락이 왔다. 가족들은 전화로 합격 여부만을 묻는다고 한다. '대학병원에 취직해야지, 다른 덴 안 돼'. 전화 속 목소리는 30초의 통화에서 셀 수 없는 생채기를 주었다. 애써 괜찮은 척하는 목소리는 평소와 비슷했지만 나는 그 안에서 약간의 울음을 잡아냈다. '힘든 일이 있나요?' 친구가 이 광고를 봤으면 했다. 내 소중한 10년 지기가 어떤 위로라도 받을 수 있도록.
내 행복은 소설가 '한강'을 그렇게 좋아한다. 어제 예약 판매가 시작되었다며 신작을 바로 구매할 정도다. 한강 작가는 아픈 소설을 주로 쓴다. 문장 문장에 고통이 배어 있다. "그런 문장을 쓰려면, 본인도 아파봤어야 하는 거잖아요." 처음 만난 날, 나는 진지한 목소리로 그에게 이야기했다. <소년이 온다>를 읽으며 열람실에서 숨죽여 울었다는 이야기를 한 직후였다.
이 광고를 집행한 사람도 이 말이 듣고 싶었을까? 현재 많이 힘들었을까? 그래서 내 뒷사람과 나를 경쟁시키는 광고 대신, 사람들을 위로하는 광고를 하자고 주장했을까? 알 수 없지만, 그냥 고맙다. 예상치 못한 위로를 건네줘서. 일상 속 버스가 보물창고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