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 시골마을 카페 라이프

인도 보드가야에서 여는 겨울 카페

by Mango

그렇다.


2018년 10월 19일에 시작하여 다음 해인 2019년 2월 15일에 마감한,

약 4달의 나의 인도의 시골, 보드가야의 카페 라이프가 드디어 끝이 났고 나는 이렇게 방콕의 맥도날드에 앉아서 진한 롱 블랙커피와 후렌치 후라이를 씹고 있다. 이상하게 인도를 떠나면 인도 시골에서 접하기 쉽지 않은 정크푸드가 떠오른다. 그동안 꿈꾸었던 약간의 일탈이랄까. 보드가야에 맥도날드라도 하나만 있음 정말 좋을 텐데 하고 생각하곤 했으니까.

겨울 한철을 보냈던 보드가야를 떠나는 날 아침, 서둘러 미리 포장해 놓은 커피 머신과 그라인더를 안전한 숙소의 방에 넣어 자물쇠를 걸고 ( 첫해에 쥐가 머신 안의 전선을 끊어 놓은 사건 발생 후에 내린 조치), 다음 해를 기약하며 친구가 차려 준 마지막 아침을 먹었다.


예쁘게도 차려 내준 블랙커피, 오렌지 주스 그리고 오트포리지.


하자만 이상하게도 배가 고프지 않아 몇 숟가락 뜨고 돌려보냈다. 오랜만에 마시는 인스턴트 네스카페의 커피 맛이 나쁘지 않았다. 그리고는 나를 세심히 돌봐준 친구 모하메드와 평범한 이야기만 빙빙 돌려 이야기하다가 갑자기 "안녕! 또 보자" 하고 손을 내밀며 마지막 인사를 건넸다.

마지막 날 아침식사, 말끔한 포리지와 커피, 오렌지 주스

그리고는 커피 머신이 있던 자리의 데스크의 서랍에서 비스킷을 꺼내어 마당에서 잠을 자고 있던 개들을 깨웠다.


"록키, 람보!"


땅속으로 굴을 파고 들어가서 자고 있던 개들이 눈을 뜨더니 기지개를 피기 시작했다. 난 과자 봉지 소리를 내며 그들을 유혹했다. 록키는 눈을 치켜뜨고 고개를 아래로 내리고 걷는 버릇이 있어 나이가 든 중후함을 발휘하지만 평소의 어딘가 힘이 없어 보이고 피곤해 보이는 나와 닮았다. 그래서 나는 록키를 이해하고 좋아하는 것 같다. 그리고 화가 나서 으르렁 거릴 때의 그의 카리스마도 나랑 비슷하다:::.


언제나 씩씩하고 먹을 것을 단숨에 해치우던 젊은 람보는 나를 따라 산책을 하다가 식당 근처에서 개들의 공격을 받아 등과 발바닥에 큰 상처를 입었다. 항상 발로 나의 다리를 치며 '꺼억 꺼억' 소리를 내며 먹을 것을 달라고 하던 애교 많은 람보는 이제 몸이 아파서 자주 자기만의 땅굴을 파고는 휴식을 취하고 있다.


이 두 강아지들은 가끔 나를 따라 산책을 나섰다. 그리고 그럴 때마다 나는 가게 앞에 그들을 기다리게 한 후 간식을 사서 주었다. 꼭 어린아이들을 데리고 나가 간식을 사주는 어른처럼 말이다. 그들은 정말 똑똑하기까지 해서 잃어버릴 염려도 없었고, 집을 잘 찾아오기 때문에 커다란 주의를 줄 필요도 없던 착한 친구들이었다. 그들은 외로운 나의 보드가야 생활을 정말로 촉촉이 적셔주던 작은 생명체들이었다.


더러운 거리의 개들을 만진다고 내가 만드는 커피를 마시지 않겠다는 컴플레인이 하나 들어와서 이후에는 몰래몰래 숨어서 그들과 만나기는 했지만, 그들은 나의 곁을 항상 지켜 준 보드가야의 최고의 친구들이었다.


보드가야의 마지막 날이라서 평소보다 많은 양의 비스킷을 주니 그들은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얼굴을 하고는, 떠나는 나를 졸졸 따라왔다. 따라오지 말라는 나의 고함소리에 주저주저하다가 좁은 골목길에서 두 마리의 개들에게 공격을 받아 더러운 시궁창 물에 빠졌고 난 그 마지막 모습이 잊히지가 않는다. 내가 할 수 있었던 것은 돌멩이를 던져 다시 그들의 자리로 돌아가게 하는 것뿐. 인도를 떠나던 비행기에서조차 난 개들의 얼굴이 떠올랐다. 마지막까지 고개를 들고 나를 바라보던 모습. 돌을 던지자 펄쩍 뛰어가던 뒷모습...

내가 찍은 단 한장의 사진 차례로 람보, 검정개 그리고 록키

다행히 보드가야의 개들을 보호하고 치료하고 있는 미국에서 온 조이가 람보의 상처를 치료하였고 앞으로도 돌봐줄 것이라고 페이스북으로 연락이 왔다. 그리고는 나보고 보드가야에 꼭 다시 와서 자기의 친구가 되어 주어야 한다고 한다.


페북으로 보내온 건강한 록키의 모습

사실 보드가야의 카페 라이프는 아름답기도 하지만 그만큼 힘든 곳이기도 해서 매년 갈까 말까를 망설인다. 아침부터 밤까지 이어지는 장사, 30명의 소년들과 함께 하는 시간, 화날 때 소리를 질러대는 내 친구, 식당을 나와 밖으로 나오면 사원에 가서 기도 외에는 할 게 없는 곳.

하지만 이제는 다음 겨울에 다시 돌아가야할 이유가 한가지 더 생겼다. 이젠 나를 기억해 줄 강아지들 때문에 꼭 다시 가야만 하는 곳이 되었다. 물론 함께 동고동락한 30명의 인도 청년들도 보고 싶지만::::우리는 참 많이도 서로 도와주었고 함께 웃었고 그리고 자주 싸웠다. 하지만 해가 지나갈 수로 우리는 서로를 조금씩 이해하면서 가까워졌다.


떠나는 마지막 전날 우리는 파티를 열었다. 치킨 카레를 오래도록 끓여 맛있는 국물이 나오게 하였고, 거기에 인도 콜라와 전통주를 곁들였다. 디저트로는 내가 만드는 시그니처 메뉴인 갈색의 브라우니를 작게 잘라 그 위에 촌스러운 핑크색의 아이스크림을 크게 올리고는 함께 나눠 먹었다. 그리고 나는 '안녕'이라는 말도 없이 조용히 식당을 나왔다.

내가 주로 산책했던 보드가야 시골길

나는 3개월이 넘는 시간의 매일 아침 7시 반에 모하메드 식당으로 출근하였다. 일하는 소년이 미리 켜 놓은 커피 머신으로 에스프레소를 한 잔 맛본 후에 손님을 맞을 준비를 한다. 그러다 보면 차가운 공기를 뚫고 커피와 따뜻한 음식을 먹으로 이른 아침에 여행자와 수행자들이 하나둘씩 들어오기 시작한다. 풍성한 거품이 중요한 부드러운 카푸치노 주문이 들어오기 시작하고, 내 손도 바삐 움직이기 시작한다.

매일 만드는 카푸치노

그렇게 아침 장사를 마치고는 나도 따뜻한 포리지로 아침 식사를 한다. 그리고 오늘 만들어야 할 케이크를 준비한다. 보통 매일 만들어야 하는 초콜릿 브라우니와 치즈 케이크, 그리고 당근, 피넛버터, 그린 티 초콜릿 비건 케이크 중 하나를 준비해 놓는다. 생각보다 비건 디저트를 찾는 사람들은 아주 적지만 그 적은 사람들을 위해 매일 비건 디저트를 준비해 놓았다. 그리고 내가 만든 케이크는 대부분 제때 팔려 나갔다. 케이크를 준비해 놓으면 느지막이 커피를 마시는 사람이 많다. 하루 대부분의 커피 장사는 이때 팔린다고 생각하면 된다.

매일 만드는 브라우니, 비건 피넛버터 케이크, 치즈 케이크

그리고는 점심 장사에 돌입한다. 대부분 티칭을 마치고 같은 시간에 몰려 오기 때문에 정신을 바짝 차리고 주문을 받아야 한다. 점심 식사를 마치고 커피를 주문하기에 발이 안 보일 정도로 바삐 움직이는 인도 소년들에 비해 점심 식사 시간엔 난 한가한 편이다. 바쁠 때는 나도 음식 주문을 받고 음식을 나르기도 한다. 손님들이 점심 식사를 마치자마자 커피를 찾기에 나는 조금 바빠지기 시작한다.


점심 장사를 마칠 즈음 내 친구는 나의 점심을 준비한다. 내 친구이자 요리사인 모하메드는 보통은 내게 무얼 먹을 것이냐를 묻기에 난 점심 메뉴를 미리 생각해 놓아야 한다. 안 그러면 모하메드의 눈썹이 바싹 올라가기 때문이다. 대부분 나는 볶은 싱싱한 야채에 날아다니는 쌀밥을 먹는다. 간혹 아무것도 넣지 않은 플레인 달 (렌틸 수프)을 곁들이기도 한다.



점심을 부엌 뒤편의 창가에서 급하게 먹고는 들어오는 오후의 커피 주문을 받고 나는 커피 머신을 깨끗하게 정리하고 소년에게 일을 맡겨 버린다. 그리곤 홀로 시골길로 산책을 나선다. 점심 식사 이후의 한두 시간은 별일이 없는 한 자유롭게 보냈다. 그래봤자 보드가야에서 즐길 거리는 거의 없다고 보면 된다. 근처에 있는 절에 가거나 간혹 있는 카페, 혹은 시골길 산책이다. 한 겨울에는 템플 안에도 인파가 어마어마하기 때문에 가지 않았다. 카페는 정말 한 달에 한두 번 가고 대부분 난 시골길 산책을 택한다. 하지만 아주 바쁜 12월과 1월엔 이마저도 하지 못한다. 그저 방에 가서 잠깐 쉬었다가 올 뿐. 그래도 가게에서 하루 종일 일하지 않을 수 있다는 건 얼마나 행운인가. 나 대신 커피를 뽑아주는 소년 덕에 나는 한가한 오후 시간엔 휴식을 취하고 나만의 시간을 갖는다. 나만의 시간이란 일을 마치고 산책 후 침대로 쓰러져 자는 것. 창의 커튼을 쳐셔 방을 어둡게 만든 후 낮잠을 즐긴다. 평소에는 낮잠을 자지 않지만 아침 일찍 일어나 늦게까지 일을 하는 보드가야 카페 라이프 타임엔 매일 낮잠을 잤고 허둥지둥 일어나 다시 저녁 장사에 나섰다.

사실 저녁에 내가 하는 일은 많지 않다. 들어오는 몇 개의 커피나 그린 티 주문을 받고 간혹 소년들이 먹고 싶어 하는 간식을 사 온다. 그리고 간단한 저녁을 먹고 커피 머신 청소를 하고 숙소로 돌아와 거의 대부분 쓰러져 침대에 눕는다.



난 3년째 보드가야에서, 매해 4개월 정도의 시간을 이렇게 보내고 있다.

겨울이 지나고 봄이 오면 보통 서울의 집으로 돌아가는데, 샌들을 신고 이리저리 움직이다 보니 발뒤꿈치는 다 터져 있고, 손은 거칠어져 있다. 그리고 북극 곰이 겨울 잠을 자듯이 나도 일주일 정도는 아무것도 안 하고 휴식을 취한다.


그렇게 쉬고 쉬다 보면 어느덧 눈물이 날 정도로 그리워지는 보드가야의 시간.


음식을 정성스레 챙겨주는 세심한 친구 모하메드. 마지막 점심은 내가 제일 좋아하는 야채를 반반으로 나누어 밥에 얹어 주었다. 소년들은 항상 괜찮냐며 나의 상태를 물어봐 주었고, 나를 위해 무거운 커피 상자와 우유 상자를 나르는 일을 마다하지 않았다.


이리하여 나는 매년 보드가야를 가게 되나 보다. 쏜살같이 흐르는 겨울의 시간. 커피와 케이크를 만드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여유, 발과 손이 상하는 것도 모르는 체로 일을 해야 하지만, 오랜 친구들과 함께 하는 시간 역시 너무 소중한 것이다.


이렇게 2018년 겨울의 보드가야 카페 라이프는 끝이 났다.

마지막 날의 만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