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nock & Talk] 김현수&전혜정 인터뷰
내 방문을 나서면 자연스럽게 누군가와 마주치는 코리빙 하우스.
엘리베이터 안에서부터 공용 키친, 라이브러리까지
그 우연한 만남이 켜켜이 쌓여 맹그로브 안에서 연인이 된 인물들을 만났습니다.
사소한 일상 공유를 시작으로 사적인 관계로 발전하기까지,
맹그로브에서 함께 지내면서 생긴 다양하고 즐거웠던 에피소드를 소개합니다.
Q. 안녕하세요! 만나서 반갑습니다.
현수: 안녕하세요, 15년 차 요리사 김현수입니다. 결과보다는 과정을 더 좋아해서 요리를 직업으로 선택했고, 요식업으로 저만의 꿈을 이루기 위해 매일 노력 하고 있습니다. 현재는 화덕 피자를 배우고 있습니다.
혜정: 안녕하세요! 맹그로브에서 첫 독립 로망을 실현했던 전혜정입니다. 맹그로브에 살았을 때에는 전시 기획자로 일했었고, 현재는 한국어학과에 편입하여 한국어 교사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한국어를 널리 알리고 싶어 공부에 집중하고 있고, 언제나 즐겁게 제가 좋아하는 일들을 하는 삶을 추구하고 있습니다.
Q. '코리빙'이라는 라이프스타일을 선택하게 된 이유가 궁금해요. 특히 맹그로브 신설에 살기로 결심하게 된 계기가 무엇일까요?
현수: 레스토랑 창업을 해보기로 결정하면서 레시피 테스트를 위한 공간과 오피스가 필요한 상황이었어요. 그러던 중 우연히 맹그로브를 알게 되었고, 키친과 코워킹 라운지 외에도 다양한 공용 공간을 갖춘 맹그로브가 매력적으로 다가왔습니다. 그리고 평소 맛집 투어를 즐기는데, 신설동 주변의 오래된 가게들도 너무 흥미로워서 맹그로브 신설에 살기로 결심하게 되었어요.
혜정: 맹그로브 신설 오픈 당시에 열렸던 ‘Knock, Knock’ 전시를 보고 코리빙 하우스라는 주거 방식을 알게 되었어요. 그 당시 통근 시간이 길어 피로가 누적되어 독립이 절실했는데, 부모님께 마지막 카드로 맹그로브를 소개했습니다. 보증금 부담이 적고, 안전하며 개인 공간이 분리되어 있는 점이 마음에 들었습니다. 신설 지점 투어를 다녀온 날 지하 공용공간에 반해 바로 계약을 했고, 부모님도 직접 보시고 안전한 환경에 안심하셨습니다. 맹그로브가 추구하는 멤버 간 느슨한 관계 또한 저에게 매력적으로 다가왔습니다.
Q. 두 분은 어디에서 처음 만나셨나요?
현수: 제 레스토랑 가오픈 기간 마지막 날 지금의 아내가 손님으로 찾아왔죠. 그리고 그 날 저녁에는 이웃 주민이었던 M님의 퇴실을 앞두고 모인 자리에서 우연히 다시 만났어요. 그 자리에 있던 멤버들끼리 서로 인스타그램 계정을 공유했는데, 그 중에 가장 눈에 띄는 계정이 바로 아내의 계정이었어요. 잘 꾸며둔 방 사진들이 나열 된 피드가 기억에 남았죠. 그 때 저는 매장 인테리어를 고민하고 있었는데, 기회가 되면 나중에 인테리어 관련으로 꼭 한 번 이야기 해봐야겠다고 생각했어요.
혜정: 모임 다음 날 엘리베이터에서 우연히 마주쳤어요. 처음에는 가볍게만 인사를 나누었지만, 그 다음 날 저녁에는 운동 후 지하 릴렉스룸에서 엘리베이터를 한 대 놓치고 다른 엘리베이터를 탔죠. 근데 그 안에 오빠가 타고 있는거예요. 서로 반가워서 내려야 하는 층도 잊고 수다를 떨었어요. 이틀 뒤 새벽에는 또 공용 주방에서 우연히 만나 이야기를 나눴어요. 이런 반복적인 우연이 저희를 인연으로 이끌었어요.
현수: 그 주에 친구와 아내의 방을 방문해 대화를 나누었어요. 이야기가 너무 잘 통해서 놀랐고, 혜정이의 프랑스 교환학생 경험을 들으며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이야기를 나눴어요. 혜정이는 따뜻하고 경청을 잘하는 사람이었고, 저는 순식간에 혜정이에게 매료되었어요. 새벽 세시까지 메시지를 주고 받아도 얘기가 끊이질 않았죠. 이렇게 잘 통하는 사람을 만난 것이 너무 놀라웠고, 설렘이 가득했어요.
매일 얼굴을 마주치고 같은 장소에서 살아가니까
행복이 쌓이는 것 같아요.
Q. 코리빙 하우스에서 시작 된 연애는 어떤 매력이 있을까요?
현수: 우리의 일상 곳곳이 데이트 장소가 되는 거예요. 물을 마시는 키친이나, 빨래를 하기 위해 찾는 런드리룸, 심지어 집으로 들어가는 통로와 엘리베이터까지요. 매일 얼굴을 마주치고 같은 장소에서 살아가니까 행복이 쌓이는 것 같아요. 아, 처음 같이 밥을 먹으러 간 날이 웃겼던 기억이 나요. 혜정이가 머리를 말리지 못해서 어깨에 수건을 두르고 나왔었죠. 그렇게 편안하게 만나도 어색하지 않은 곳이 코리빙 하우스가 아닐까 생각해요.
혜정: 주거지가 같다 보니 매일 만나게 되는 환경이라는 게 특징이에요. '결혼하면 이런 느낌일까?' 라는 상상도 했어요. 한껏 꾸미고 차려입은 상태로 하는 데이트보다는 편한 옷차림에 대충 세수만 하고 만나는 게 더 익숙해졌어요. 눈을 뜨면 바로 아침 인사를 할 수 있고, 주말에는 성북천으로 아침 산책을 나갔어요. 저녁에는 함께 요리를 해먹고 와인 한 잔 하며 하루를 마무리하는 게 루틴이었어요. 각자 따로 살았다면 아마 쉽게 할 수 없었을 일상 공유였어요.
Q. 이웃들에게는 연애 사실을 언제 공개하셨어요? 초반에는 비밀 연애 기간도 있었나요?
현수: 저는 곧바로 공개했어요. 인스타그램에 연애 사진을 바로 올리고 부모님께도 곧장 말했습니다. 결혼하고 싶은 좋은 사람이 있다고요. 불과 사귄지 100일만에 결혼을 결심했을 정도로 너무 좋아서 자랑하느라 정신이 없었어요. 이렇게 좋은 사실을 숨길 이유가 없거든요.
혜정: 만나기 시작하고 친한 이웃들한테는 곧바로 이야기했던 것 같아요. 연애 소식을 듣고 깜짝 놀라던 이웃들의 표정이 너무 귀엽기도 했어요. 둘 다 잘 못 숨기는 성향이기도 하고, 숨겨야 할 이유도 없다고 생각했거든요. 연애 초반에는 부모님께 비밀로 했는데 결혼하고 싶을 정도로 좋은 사람을 만났다고 했을 때 부모님도 놀랐다고 하시더라고요.
Q. 결혼을 결심하게 된 계기를 알려주세요.
현수: 아내와의 첫 데이트였어요. 육회비빔밥을 먹으러 갔는데 식당에 줄이 너무 길어 웨이팅을 해야 했어요. 그때 빠른 판단력이 필요했는데, 아내가 “우리 포장해서 근처 공원가서 먹을래요?” 라고 제안했어요. 그런 결단력 있는 말 한 마디와 털털한 모습에 반했어요. 공원에서 포장한 육회비빔밥을 먹는데 날씨도 너무 좋고 밥도 맛있는데다가 이야기하는 게 너무 재미있었어요. 원래 밥 먹을 때는 말이 없이 밥만 먹는 편이었는데, 아내랑은 밥 먹을 때 대화를 엄청 해요. 그 날을 계기로 이 사람과는 결혼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결국 청혼하게 되었어요.
혜정: 오빠를 만나기 전까지는 결혼 생각이 아예 없었어요. 혼자만의 시간이 좋아서 누군가로부터 방해받고 싶지 않았는데, 연애를 하면서 저 혼자 있는 것보다 훨씬 재밌고 시간도 빨리 가는거예요. 이야기가 끊이지 않았고, 상대의 편안함에서 오는 설렘도 좋았어요. 연애를 하면 상대에게 빨리 질리는 편이었는데, 이 사람이라면 평생 재밌게 살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취향과 취미 모두 비슷하고 성향까지 비슷해서 확 끌렸던 것 같아요. 이야기를 나누면서 나와 비슷한 사람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고, 제가 힘들어할 때도 앞뒤 상황을 따지지 않고 제 힘듦에 귀 기울여주는 모습에 결혼을 결심하게 되었습니다.
Q. 한 집에 살아서 다퉜더라도 어쩔 수 없이 마주치는 일이 종종 있었을 것 같아요. 기억에 남는 순간이 있었다면요!
현수: 서로 너무 비슷해서 사소한 일로 투닥거린 적이 있어요. 그리고 잘못한 사람이 먼저 화해의 손을 내미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잘못은 항상 제가 하는 것 같아요.)
혜정: 사실 다툰다기 보다는 일방적으로 제가 잔소리하는 편이에요. 맹그로브에서 크게 한 번 다툰 적이 있었는데, 비상구 계단에 가서 한참을 논쟁했던 적이 있었어요. 물론 오빠가 잘못해서 계속 사과하는 입장이었지만, 그날이 기억에 남네요. 둘 다 울보라 엄청 울었거든요. 사람들은 저희가 하나도 안 싸우는 줄 알더라고요. 서로 다른 인생을 살아왔는데 다툼이 없을 수는 없는 것 같아요. 그래도 둘 다 회피하지 않고 감정을 표현하는 법을 서로에게 배우고 있는 중이에요.
Q. 함께 자주 이용하던 공용 공간이 있다면 소개해 주세요.
혜정: 저희는 주로 공용 키친을 애용했어요. 제가 4층에, 오빠가 3층에 살았기 때문에 4층 공용 키친을 자주 이용했죠. 요리를 직접 해 먹는 것을 좋아해서 오빠가 자주 요리를 해줬어요. 가끔 4층 키친이 붐비면 다른 조용한 층을 찾아갔어요. 각자 씻고 만나면 조용한 분위기에서 노래를 틀고 공용 주방에서 와인을 즐겼어요. 날씨가 좋은 날에는 치킨을 주문하고 맥주 한 캔을 들고 옥상 테라스로 올라가서 핸드폰을 꺼내 풍경을 바라보며 야식을 즐겼어요. 또 저는 20층에 있는 커뮤니티 룸에서 개인 작업도 자주 했는데, 고층의 그 풍경이 아직도 잊혀지지 않네요.
Q. 가장 좋아했거나, 특별히 추억이 있는 신설 로컬 플레이스가 있나요?
현수&혜정: 올덴브라운 카페는 저희가 정말 자주 다녔던 곳이에요. 주말이면 노트북을 들고 가서 각자 글을 쓰거나 책을 읽기도 하고, 결혼 준비도 했어요. 특히 추운 겨울에는 뱅쇼 한 잔으로 몸을 녹이곤 했어요. 첫 눈도 올덴브라운에서 함께 봤어요. 정말 많은 추억을 쌓은 곳이라 맹그로브를 떠나고 나서도 근처에 가면 종종 들르곤 해요. 그리고 맹그로브 주변에는 맛집도 많아서 와가리피순대국밥이나 마파두부 같은 음식을 먹으러 자주 다녔어요. 주말마다는 성북천으로 조깅을 나가곤 했는데, 맹그로브를 떠나고 나서는 그 사소한 일상들이 너무 그리웠어요.
Q. 맹그로브에서 잊지 못할 풍경을 하나 꼽아 보자면?
현수&혜정: 맹그로브 20층에서의 풍경이 너무 아름다워서 정말 자주 올라갔어요. 파란 하늘 위에 떠 있는 뭉게구름과 맑은 날의 노을이 지는 풍경을 바라보며 하루를 마무리하는 것도 정말 좋았어요. 특히 기억에 남는 풍경은 옥상에서 내려다본 서울의 야경이었어요. 이렇게 빛나고 반짝이는 도시의 모습이 참으로 아름다웠어요. 그리고 나는 이 아름다운 곳 안에 살고 있다는 사실에 감동받아서 한참 동안 그 풍경을 바라보곤 했어요.
독립 후 제 취향이나 선호하는 시간대, 집중하는 방법 등
제 자신을 더 깊이 이해할 수 있는 시간을 가졌어요.
Q. 맹그로브에서 지내보면서 얻어간 것이 있다면요? 퇴실 시 느끼셨던 감정도 궁금해요.
현수: 사랑을 얻어갔죠! 맹그로브가 없었다면 저희가 만나기까지 이토록 수월하지 않았을 거예요. 저는 늦은 저녁까지 바빠서 데이트할 시간이 부족했는데, 맹그로브에서 같이 지내서 많은 대화를 나눌 수 있던 것 같아요. 그 덕분에 서로 더 가까워지고 결국 결혼까지 한 거라고 생각합니다.
혜정: 맹그로브에서는 제 자신과 사랑을 발견했어요. 독립 후 제 취향이나 선호하는 시간대, 집중하는 방법 등 제 자신을 더 깊이 이해할 수 있는 시간을 가졌어요. 이 곳에서 느꼈던 편안함과 안락함, 따뜻함이 마음 한 구석에 계속 남을거예요. 퇴실할 때에는 복합적인 감정으로 울컥하기도 했어요. 나의 첫 독립을 맹그로브에서 시작할 수 있어서 정말 고마웠고, 이 공간이 다음 주인에게도 행복을 줄 수 있기를 바라며 나왔습니다. 그리고 인생의 소중한 동반자까지 만날 수 있게 되어 감사했습니다.
글 | 임정연
사진 | 이라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