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력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 이런 질문을 하는 친구들이 있습니다. '샘.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그런데 저도 안 해본 건 아니거든요. 노력도 해봤고 나 자신을 믿어보기도 했는데 아무리 해도 안 되는 것을 깨달았어요. 현실이 씨궁창입니다.' 일단 먼저 그동안 수고가 많았다는 이야기를 해주고 싶습니다. 그 말한 씨궁창에서 얼마나 열심히 발버둥을 쳤을까도 생각이 되니 안타깝고 미안한 마음이 어른으로서 듭니다. 이 학생의 말처럼 우리한테는 대전제가 있습니다.
'개인은 환경을 이길 수 없다.'
우리는 환경에 지배를 받는 사람들입니다. 환경에 영향을 받고 환경으로 우리는 만들어져갑니다. 근묵자흑. 검은색을 가까이하면 검은색이 묻습니다. 맹모삼천지교라고 들어보셨나요? 맹자의 어머니가 맹자를 공부시키기 위해 이사를 세 번 다녔다는 이야기입니다. 묘지 근처에 집을 구했더니 맹자가 곡소리를 하고 시장 근처로 이사를 갔더니 맹자가 장사소리를 하고 서당 근처로 이사를 가니 드디어 맹자가 글소리를 했다는 이야기입니다. 우리는 환경을 이길 수 없습니다. 만약에 여러분이 공부를 하겠다고 큰 결심을 했다고 합시다. 오늘 집에 가서 수학문제집도 풀고 영어단어도 외우고 책도 봐야지 하고서는 학교를 나섰습니다. 모든 계획을 다 세웠는데 갑자기 친한 친구가 옆에 오더니 오늘 피시방에 가자고 합니다. 노래방도 가자고 합니다. 그러면 여러분의 선택이 어떻게 될 거 같나요? 물론 갈등은 하겠지만 친구 따라 강남 가지요. 여러분의 계획은 다음으로 미루고 친구와 함께 놀 가능성이 높을 겁니다. 여러분이 새 학기가 되어 교실에 갔더니 학급에 있는 애들이 전부 공부는 안 하고 매일 싸우고 다투고 욕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그 가운데서 여러분 혼자 공부하고 좋은 말을 할 수 있을까요? 쉽지 않은 정도가 아니라 여러분도 어느샌가 물들어서 욕하고 싸우고 있을 겁니다. 우리는 환경에 영향을 받습니다. 환경이 우릴 만들어갑니다. 현실이 씨궁창이면 우리들도 그 씨궁창에 물들어 갈 수밖에 없죠. 그런데 여기서 이상한 점이 있습니다. 만약에 지금 말한 대전제. '인간은 환경을 이기지 못한다.'만 성립된다면 세상이 바뀌는 일이 없었을 겁니다. 개천에서 용 나는 일도 없었을 거고 가난을 이겨낸 성공스토리도 없을 거고 해성처럼 등장하는 영웅들도 존재하지 않았을 겁니다. 결국 '환경이 사람을 만든다. 개인은 환경을 이길 수 없다.'라는 대전제는 꽤나 유효하지만 절대적인 것은 아니란 말입니다. 가끔 개인이 환경을 지배하는 대격변도 일어납니다.
이 사실과 관련된 저의 아주 소박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제가 옛날에 담임했던 여중생이 있었습니다. 이 친구는 가정폭력에 시달렸고 학교생활은 좋지 않았습니다. 잦은 지각으로 저한테 많이 혼나고 담배와 술, 자살시도도 있던 친구였습니다. 그렇게 중학교 시절을 보내고 고등학교에 올라간 뒤 하고 싶은 일이 생겼는지 아니면 어떤 결심을 했는지 갑자기 공부를 하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고등학교 1학년 때 반장이 되었는데 이 친구 반만 쉬는 시간에 아이들이 반에서 나오지 않았다고 해요. 왜 그랬냐면 얘가 자기 공부한다고 쉬는 시간에 아이들이 떠들고 장난치는 것을 금지시켰기 때문이죠. 화장실을 가고 싶으면 자기의 허락을 받고 다녀오게 할 정도로 통제를 한 겁니다. 자기 공부하겠다고 말이죠. 그래서 이 친구는 3년 내내 전교 상위권의 성적을 유지했고 그 결과로 서울의 좋은 학교에 입학을 하게 됩니다. 개인이 환경을 지배하고 통제하고 이긴 아주 소박한 이야기입니다. 환경이 안 좋을 수 있습니다. 현실이 씨궁창일 수 있어요. 맞습니다. 제가 여러분의 환경을 모두 직접적으로 경험해보지 않았기 때문에 "괜찮아요. 여러분의 현실은 생각보다 나쁘지 않습니다."라고 이야기는 것은 말도 안되죠. 확실히 우리는 현실에 영향을 받고 지배를 받습니다. 그런데 저는 그 현실을 여러분이 이겨낼 수 있다고 진심으로 믿습니다. 개인이 환경을 이긴 사례는 아주 드물게 일어나는 그게 바로 지금 여러분이라고 생각합니다. 여러분이 자신을 믿기만 한다면 말이죠.